지켜야 할 선이 처음 흔들리던 밤

by 엣지있는 김작가

지오가 백일을 앞두고 있던 겨울,

나를 가장 예뻐해 주던 이모의 둘째 딸,

그리고 나에게는 친동생이나 다름없던 세은이가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세은이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암세포를 가지고 태어났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암 진단을 받았다.

2년 가까운 힘겨운 투병 끝에 완치를 눈앞에 두었지만

어느 날 갑작스러운 재발로 다시 병원에 누워야 했다.


지오가 태어날 무렵에는 이미 의식이 흐릿해질 만큼 많

이 아팠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당진까

지 달려가 세은이를 보고 왔다.


그리고 12월 1일,

지오의 백일을 앞두고 세은이는 하늘로 떠났다.


그날의 공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지오를 맡길 사람도 없었고

이모들은 “백일도 안 된 아기는 장례식장에 오면 안 된

다”며 절대 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지오를 품에 안고 울었다.


한참을 울다 지쳐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신랑인가 싶어,

눈이 너무 부어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자기야?” 하고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냉장고 문이 한 번 열렸다 닫히더니

집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간신히 일어나 지오를 확인하고

집안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세은이가 왔었나…’


또 눈물이 흘렀다.


유난히 먹는 걸 좋아했던 아이.

특히 내가 끓여준 해물탕을 좋아하던 세은이.

언니 음식이 먹고 싶어서 잠깐 들렀나 싶어

미안하고, 미안해서 숨이 막혔다.


그 후 세은이의 첫 제사 날,

나는 아이들을 신랑에게 맡기고 당진으로 내려갔다.

세은이가 좋아하던 해물탕을 끓여

제사상에 올렸다.


너무 착했던 우리 세은이.

세은이가 그렇게 떠난 뒤,

내 안에 오래 숨어 있던 우울은

더 깊고 무겁게 자리 잡았다.


산후우울증과 상실이 겹친 어느 날,

신랑과 우리는 처음으로 크게 다퉜다.


매일 칼퇴근을 하던 신랑이

그날은 회식이 있다며

11시쯤 들어가겠다고 전화했다.


연년생 아이 둘을 돌보며

반지하 방 안에 갇혀 있던 나는

씻을 틈조차 없었다.

한겨울이었지만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11시가 다가올수록

1분이 하루처럼 길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쌓였다.


신랑은 11시 20분쯤 들어왔다.

많이 취해 있었고,

처음 발표한 제안서가 크게 칭찬을 받았다며

들뜬 얼굴이었다.


그 모습이, 그날은

이상하게도 너무 버거웠다.


지오를 신랑에게 맡기고 급히 샤워를 했는데

욕실 안에서도 지오의 울음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달래는 기색이 없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졌다.


급히 나와 신랑을 밀쳤다.

세게 때린 건 아니었지만

분명 폭발한 감정이었다.


신랑의 눈빛이 변했다.

내 어깨를 거칠게 잡으며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했다.


처음 보는 눈빛,

처음 듣는 욕이었다.


신랑은 장난감을 발로 차고 옷장 문을 걷어찼다.

문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 옆에 있던 효주가

다칠 뻔했다.


그 순간 내 눈이 돌아갔다.


바로 신랑의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종영 씨가 술 먹고 난동을 부려요.”


곧 시어머니와 형님, 아주버님이 도착했다.

신랑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효주와 신랑이 먼저 나갔고

나는 형님 앞에서

그제야 모든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먼저 밀쳤다는 말까지도.


그날 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아침이 되어 신랑이 집으로 돌아와

무릎을 꿇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미안하다고,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눈물만 조용히 흘렀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난 어릴 때 폭력적인 아빠 밑에서

엄마랑 싸우는 모습만 보며 자랐어.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폭력은 안 돼.

너무 무서워. 우리 이혼하자.”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