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아직 몰랐다.

by 엣지있는 김작가

이혼하자는 한마디에

신랑의 얼굴은 순식간에 사색이 됐다.


무릎을 꿇고 내 손을 잡으며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아이처럼 흐느꼈다.


원래 손과 발이 유난히 따뜻한 사람인데

그날 내 손을 잡은 신랑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걱정이 될 만큼 덜덜 떠는 모습도

창백해진 얼굴도 차갑게 식은 손도

다 걱정이 되었다.


그걸 보면

나는 아주 완전히 떠날 마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신랑은 한참을 용서를 빌었고

나는 결국,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혼을 한다고 해서

내 삶이 더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어린 아이들이 있었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동안 신랑이 잘해온 모습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라면

용서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신랑은 정말로 술을 끊었다.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더

나를 살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이후

내 우울증은 더 깊어졌다.


가만히 있어도

이유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이를 안을 때도

밥을 할 때도

빨래를 갤 때도

눈물은 예고 없이 흘렀다.


그럴 때마다 신랑은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내가 너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울지 마, 자기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신랑은 퇴근할 때마다

꼭 전화를 했다고 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혹시 내가 잘못되었을까봐

너무 불안했다고 했다.


우울증이 더 심해지자

신랑은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했고

오후 4시에 퇴근해

나머지 시간은 재택근무를 했다.


지금 돌아보면

나를 놓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텨준 신랑이

고맙기만 하다.


나는 조금씩 웃음을 되찾았고

우리는 2년 만에 반지하를 벗어났다.


비록 오래된 상가 건물 2층이었지만

1층이 커피전문점이라

매일 향긋한 커피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좋았다.


전 세입자가 낡은 집을

예쁘게 리모델링해 둔 곳이라

더 마음에 들었다.


이사를 한 뒤

신랑의 일도 잘 풀렸다.


회사에서는 팀장이 되었고

인스타그램 강의를 시작했고

책까지 출간했다.


모든 것이

술술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가

효주가 네 살,

지오가 세 살이 되던 해였다.


그 해 지오가 21개월 무렵,

어린이집 선생님에게서

의미심장한 말을 듣기 시작했다.


연세가 많으신 분이었고

유독 지오를 예뻐해 주셨다.


하지만 하원하러 갈 때마다

지오가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우리 집 아이들은

전반적으로 느린 편이었다.


효주도 걷는 것, 말하는 것이

또래보다 늦었지만

말문이 트이자 또렷하고 분명했다.


혼자 노는 것도 좋아했고

떼를 쓰거나

크게 울지도 않는 아이였다.


그래서 지오도

그저 그런 성향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21개월이었으니까.


순하고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아기였는데

갈 때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국 어느 날,

울먹이며 물었다.


“저한테…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신 건가요?

지오가 어린이집에

적합하지 않다는 뜻인가요?”


선생님은 손사래를 치며

그건 아니라고 했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분명하게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그 애매함이 더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키나와 가족여행을 다녀온 뒤

일주일 만에 등원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지오 반은 2층이었는데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쯤에서

지오가 갑자기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적응 기간에도

엄마를 찾지 않던 아이였다.

너무 이상했다.


아이를 떼어 놓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곧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

지오가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요…”


태어나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나도 당황스러웠다.


곧바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그 이후 며칠 동안

지오는 계속 울었다.


이건 단순한 등원 거부가 아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까지 우는 건

뭔가 불편한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혹시 친구들이 밀었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을까요?”


선생님은

아이들 모두 순하고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죄송하지만…

CCTV를 좀 볼 수 있을까요?”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