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달 전쯤 정규연습 중에 모의 레이스를 한 적이 있다. 마침 J-24 세네척이 수역에 나오게 되어서 성사된 이벤트였다. 시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였지만 팀원들이 아드레날린을 내뿜으며 좋아하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취미로 하는 운동에 승부욕을 발동시켜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아니 승부게임을 하는 취미 운동을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우리는 시합을 하는 팀이야”라고 말했던 스키퍼 언니의 말은 인상적이었다. 평상시 우리 크루들은 침착하고 온화하고 친절한 사람들인데 레이스 때 보니 대단한 승부욕을 가지고 있었다.
예년이면 이미 상반기에 몇 차례 진행되었어야하는 요트 대회들이 코로나로 인해서 연기되고, 그나마 확정되었던 대회도 하루하루 달라지는 코로나 상황 때문에 취소되고 있다. 요트도 축구, 야구와 다르지 않다. 축구, 야구 동호인들이 다른 팀과 시합을 잡고 게임을 하는 것을 중요시하듯, 요트 동호인들도 대회를 목표로 꾸준히 연습을 한다. 그래서 정식 시합은 아니지만, 요트학교 동호인들끼리 하는 비공식 대회가 열렸다. 나에게는 첫 시합이다.
첫 시합이라 긴장되었다거나 가슴이 벌렁벌렁했다고 말하고 싶은데, 사실 떨리지 않았다. 원래 시험이나 시합에 긴장하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듯하다. 그저 지금까지 숙지한대로, 연습한 대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태라 첫 시합이 그냥 신기하기만 했다.
오후 1시에 시작하기로 한 첫 라운드는 한 시간이 지나도록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바람을 동력으로 가는 요트의 특성상, 바람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경기는 한없이 지연된다. 바람은 없는데 햇볕은 눈치 없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고, 목은 바싹바싹 탔다. 그 와중에 나는 태닝하기 좋겠다며 신이 나서 요트위에 드러누웠고, 다른 크루들은 타는 것이 싫다며 세일 아래로 들어가 햇빛을 피했다.
3시가 다 되어서야 경기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첫 스타트를 일등으로 했다. 그런데 바우맨이 뒤 따라 오던 배들이 돌아간다며 전체리콜된 것 같다고 말했다. 레이싱 룰에 따르면 여러척의 요트들의 스타트 절차에 잘못이 있을 경우, 스타트가 취소될 수 있다.
“우리 이전 시합 기억나? 스타트 1등으로 했는데 무효 된 후로 경기 말아먹은 것?” 스키퍼가 말했다.
‘언니,,,...그런 이야기는 왜 하는 건가요... 저는 말의 힘을 믿는 사람인데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김없이,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이번 대회는 이틀간 진행되는 8라운드의 경기로 순위를 매기게 되는데, 우리 팀은 꼴찌를 했다. 스스로에게 관대한 나는 첫 시합이었고, J-24팀에 크루로 들어온 지 3개월 만에 출전한 시합이니 꼴찌를 해도 괜찮았지만, 기존 크루들은 누적된 기록과 평소 유지하던 실력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진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팀에 해를 끼쳤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대회에서 꼴찌를 한 것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약한 바람에서 배의 방향을 바꾸다보면 거리의 손해를 보게 되는데,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크루의 무게를 이용해 배를 흔들어서 방향을 바꾸는 롤택 Roll Tack이라는 기술을 사용한다. 우리 신입들은 이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훈련하지 않은 것을 시합에 적용할 수 없으니 스키퍼는 본인이 직접 몸을 움직여 배를 움직이면서 동시에 바람을 읽고 코스를 잡아 요트를 조종하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 팀 스키퍼는 지시하기 보다는 솔선수범하고 헌신하는 서번트 리더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 많은 역할을 하다가 스키퍼는 발을 헛딛었고, 이내 “악”하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요트에 부딪혀서 여기저기 멍드는 것이 일상인 우리는 스키퍼가 그저 무릎을 세게 찐 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때 스키퍼의 발목이 골절되었다. 스키퍼는 쓰러지며 러더를 놓쳤고 배는 코스를 놓치고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스키퍼는 티를 안내고 게임을 진행하고자 했지만 당연히 그 게임은 DNF (Do Not Finish)를 했고, 크루가 부족한 우리 팀은 남은 경기를 기권하여 DSQ (Disqualified)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계획에 없던 새로운 이벤트가 생겼다. 감독님께서 기권한 우리 배에 올라오셔서 직접 러더를 잡으셨고, 함께 코스를 다니며 즉석 레슨을 해주신 것이다. 감독님의 점검 덕분에 변명을 하자면, 그리고 그것으로 위안을 좀 삼아보자면, 크루의 역량 문제만은 아니었다.
지난 3개월간 연습을 하면서 평균 한 주에 한 개꼴로 부품에 문제가 생겼었다. 우리가 타는 요트는 1995년에 제작되었고, 우리 팀이 이 요트를 탄지도 벌써 5년이나 지났다. 모든 부품을 최상의 것으로 사용하면 좋겠지만 수천만원대로 넘어가는 세일을 비롯해서, 세일을 묶는 줄인 시트 하나만해도 백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대이니, 못쓰게 되지 않는 이상 부품 교체는 언감생심이다. 직접 보완하고 수선해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올 해에는 부품들이 교체해달라고 항의하기로 담합이라도 했는지 돌아가면서 문제를 일으켰다. 그러니까 지난주에는 스핀 헬리어드가 터져버려서 스피네이커 다운을 못했고, 그래서 강풍에 날리는 스피네이커를 잡으려다가 크루가 물에 빠지고, 세일이 찢어지고, 이번주에는 제노아 시트가 끊어져서 제노아가 풀려나가는 식이었다. 하네스를 착용하고 마스트까지 올라가는 것이 일상이 될 정도였다.
이번 시합은 그 모든 것의 결정체였는데, 전문가인 감독님이 스키퍼를 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 요트는 똑같이 출발한 다른 요트에 비해 현저하게 속도가 떨어졌다. 하나하나 배를 점검하며 찾아주신 문제들을 모으니 총체적 난국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마스트가 맞지 않고, 트레블러가 고정이 안 되고, 대부분의 클리트는 고장 났고, 러더의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배 바닥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아, 대회 중간 시합과 시합 사이에 임시로 배 바닥을 훑어 이끼를 제거할 정도였다.
이번 대회에서 배운 것은, 요트를 조종하는 스킬만큼 중요한 것이 요트의 관리이고, 그것이 곧 실력이라는 것이다. 스킬만 좋다고 훌륭한 선수가 아니라 몸 관리, 컨디션 관리를 잘 하는 선수가 최고 기량을 낼 수 있다는 간단한 원리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하루에 네 라운드씩 이틀 동안 진행된 시합은 결코 쉽지 않았다. 네 라운드가 끝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들어올 때 시합에 참가하지 않은 팀원들이 우르르 나와서 밝은 목소리로 “수고했어!”라고 격려해주고, 접안을 도와주고, 함께 세일을 내려주고 해장(요트의 시스템을 다 풀어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는 것)을 도와줄 때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며 피드백을 해줄 때는 마음이 든든했고, 힘내라며 챙겨준 과일과 빵과 커피 덕에 배도 든든했다. 4~5시간 동안 한 배에 올라 합을 맞추고, 중간중간 수다도 떨면서 전우애, 동지애가 생긴 것은 물론이다.
어쩌면 올해 마지막 시합이 될 수 있는 첫 시합. 새삼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제 요트를 배운지 꼭 1주년이 되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곳까지 참 멀리도 왔다.
글: Edi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