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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화장의 중요성 (feat. 요트)

돌아온 팀요트, 새로운 시즌 시작

by 요가언니



“화장이 잘 먹으려면, 매끄러운 피부가 기본이잖아? 그러니까 ‘샌딩 작업’으로 각질 제거를 하는 거야. 그다음에는 기초화장을 해야겠지? 스킨, 로션, 베이스를 바르는 게 ‘프라이머 작업’이야. 파운데이션으로 마무리하는 게 ‘AF 작업’이라고 할 수 있지!”

“아하~ 바로 이해됐어!”


요트를 타보기만 했지 관리를 처음 해보는 멤버들을 위해 C가 눈높이 교육을 해줬다. 겨우내 육상에 올려서 잘 말린 팀요트에 AF 칠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AF, Anti-Fouling은 부식방지 작업이라 생각하면 된다. 배가 물속에 오랜 시간 몸을 담그고 있다 보면 이끼도 생기고 따개비도 붙고, 미세한 틈이나 따개비가 떨어지는 부분은 부식되기 시작된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잘 건조된 배에 코팅막을 입히는 것이다.


배 작업을 하기로 한 날, 꼼꼼한 주장 언니는 올인원 방진복에 고글, 공사장 마스크, 라텍스 장갑과 목장갑까지 완전무장 용품을 준비해왔다.


“아주 옷만 보면 전문가들이야.”

보는 사람들마다 놀렸지만, 철저한 준비를 마친 우리는 자신 있게 샌딩기를 들고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샌딩이란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섬세한 작업이어서 36방, 80방, 320방, 600방과 같은 숫자가 쓰여 있는 샌딩 페이퍼를 바꿔가며 선체의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었다. 숫자가 클수록 미세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샌딩 페이퍼라, 처음에는 36방 샌딩 페이퍼를 부착해서 갈아내다가 표면이 부드러워지면 600방으로 마무리 작업을 하는 식이다.


육상에 올려놓은 요트를 둘러싸고 샌딩 작업을 하는데, 옆면을 맡은 멤버는 팔을 번쩍 들거나 사다리에 올라가야 했고, 하단을 맡은 멤버는 쭈그리고 앉아 눕다시피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작업을 해야 했다. 샌딩만 안 해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불편한 자세 유지하기’도 해본 적이 없는 우리는 목과 어깨가 너무 아팠고, 날리는 가루를 온몸으로 맞는 것도 쉽지 않았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 천지창조를 그리면서 허리가 뒤로 휘어지고 목이 굳어서 움직여지지 않았으며 흐르는 물감에 피부병이 생겼다고 하던데 잠깐 미켈란젤로가 된 기분을 느꼈다.



샌딩 이후 작업에 직접 참여는 못했지만, 옆에서 본 칠 작업은 퍽 정교한 일이었다. 셀프 인테리어가 유행하며 페인트를 직접 칠해본 사람들이 많아졌던데, 난 그쪽에는 영 관심이 없어서 모든 게 새로웠다. 하지만 기본 개념은 내가 잘 아는 메이크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질 제거와 피부결 정돈을 했으니 다음 단계는 컨실러로 모공을 막는 것이다. 소위 ‘빠데’라 부르는 작업인데 조금씩 패인 구멍, 그러니까 넓어진 모공 같은 곳을 채워 넣어 달걀흰자 피부를 만들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한다. 빠데를 발라 넣어 표면이 마르면, 샌딩기로 다시 한번 매끈하게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에 프라이머를 한차례 도포하고 나서야 본격적인 AF 칠을 시작할 수 있다.


널찍한 통에 AF페인트와 시너를 적당히 섞어서 농도를 조절한다. 음식을 할 때도, 인간관계에서도 결코 쉽지 않은 ‘적당히’라는 이 개념은 페인트를 섞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너무 묽으면 선체에 페인트가 달라붙지 않아 줄줄 흐르게 되고, 되면 딱딱하게 굳어져 바르는 것 자체가 힘이 든다고 했다. 몇 번의 페인트 추가, 시너 추가, 페인트 추가, 시너 추가의 과정을 반복한 후에 만들어낸 완벽한 비율의 AF를 묻혀 롤러를 굴려가며 페인트칠을 한다. 롤러를 굴리는 것에도 노하우가 있으니, 선체에 세로로 붓질을 하면 배가 전진하는데 미세한 저항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가로로 칠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저렇게 육중한 배가 나가는데 그깟 붓질 방향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데, 요트는 그렇게나 예민하다.


이렇게 선체 칠 작업을 시작한 것이 딱 한 달 전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야 완성된 배에 오를 수 있었다. 칠 작업이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는 것이냐 묻는다면, 칠하고 말리고 칠하고 말리는 작업의 반복이기 때문에 며칠이 소요되는 것이 맞긴 하다. 하지만 우리의 팀요트에는 또 하나의 큰 작업이 남아있었으니, 그건 마스트 작업이었다.



“마스트가 부러졌다고?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스프레더가 좌우로 뻗어있는, 그러니까 십자가 모양으로 교차되는 부분이 똑 두 동강 난 마스트 사진을 친구에게 보여줬다. 딱 우리 팀요트와 같은 크기인 24피트의 요트를 소유하고 있는 캐나다 친구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이건 말이 안 된다는 제스처를 했다. 80kg 이상의 남자가 메달려도, 아니 그보다 더 강한 바람의 저항에도 끄떡 안 하는 마스트가 부러지는 것이 가능하긴 한 일인가?


요트학교에서 요트를 차터(대여)할 수 있다. 요트조종면허가 있고 킬보트 교육을 받았고 한강에서의 세일링 실습도 해 본, 그러니까 자격이 충족되는 교육생들이 차터를 신청해 우리 팀요트를 대여했다. 듣기로는 세일링을 하던 중 우뚝 솟은 마스트의 길이를 계산하지 못하고 한강 다리를 지나는 바람에 마스트가 다리에 걸려 부러졌다고 했다.


그 상황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절단된 마스트를 보며 상황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약 8m 높이의 마스트가 요트 위에 잘 서있기 위해 사방에 지지대가 있다. 굵은 와이어의 지지대를 통틀어 스탠딩 리깅이라 부르고, 각각은 방향에 따라 포어스테이, 백스테이, 사이드스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스트가 넘어지면서 옆에서 지지하는 사이드스테이가 뽑혔고, 선체 상단이 함께 뜯겨 나갔다. 뜯겨 나간 잔해만 보면 영화에서나 보던 난파선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인명사고가 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으로 감사할 일이면서도 신기할 정도였다.


“어떻게 기본 지식도,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요트를 내어줄 수 있어? 자격이 안 되는데 운항을 한 사람도 문제이지만 조종을 허가해준 사람의 잘못이기도 해. 생명이 달린 심각한 문제라고!”


캐나다 친구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어려서부터 별장 앞 호수에서 1인용 요트인 레이저 딩기를 타며 자랐고, 성인이 된 후에는 여름마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요트에 읽을 것과 먹을 것, 그리고 강아지를 태워 밴쿠버 앞바다로 나가 휴가를 보내는 친구는 요트의 관리와 안전에 관해 매우 민감했다. 그러니까 나는 무지하기 때문에 상황의 심각성을 크게 인지하지 못하는데 반해, 친구는 잘 알기 때문에 직접 보지 않고도 이만큼 흥분하고 있는 것일 테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이 상황에서 요트를 잘 알기도 하고 경험도 많고 심지어 그 요트와 추억까지 깊은 요트학교 선생님들과 주장 언니는 내 친구보다도 더 많이 속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마스트 사고는 작년 가을에 발생한 일이다. 그리고 올봄이 되어서야 마스트는 부러진 부분에 철갑 깁스를 두르고 돌아왔다. 이렇게 수리해서 써도 되는 것인지, 그러니까 무게가 증가해서 항해에 불리해진다거나 두꺼워진 마스트가 바람의 저항을 더 많이 받는다거나,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는지 등이 의심스럽고 걱정되긴 하지만, 어쨌든 살아 돌아왔다. 도대체 몇 번의 수술을 거친 것인지 마스트에는 여러 개의 재단선이 그어져 있었고 교통사고 후 이곳저곳을 이어 붙인 환자를 보는 것과 같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마스트는 다시 세워졌고, 사이드스테이가 뽑혀나간 선체도 수선이 되었으며 AF칠도 새로 했지만, 6개월 이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 방치되어 있던 요트는 여기저기가 낡고 벗겨지고 상했다. 작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양손에 매직블록을 들고 닦아 새하얗게 만든 후 논슬립 테이프까지 야무지게 붙여 놓았던 팀요트였는데......


“작업이 너무 크니까 오늘은 큰 것들만 정리하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우리는 다시 품 안에 돌아온 팀요트를 보며 이렇게 말했지만, 어느새 세일을 꺼내 말리고, 선체에 물을 뿌리고 꼼꼼히 손 걸레질하고, 콕핏의 물을 퍼내는 등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내기 위한 작업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2021년 요트 시즌이 시작되었다.





글: Edi (https://instagram.com/edihealer)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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