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한국에도 있는데 그동안 이탈리아 포르토피노나 나폴리만 그리워하고 살았던 거야?”
첫 통영 여행이었다. 굴, 멍게, 전복 등 온갖 맛있는 해산물과 욕지도, 비진도 등 아름다운 섬으로 유명한, 말로만 듣던 통영을 이번에 개최되는 요트 대회 덕분에 오게 되었다.
공식 대회가 열릴 수 없는 상황이 1년 가까이 지속되자 열정적이고 젊은 세일러들이 J24 동호인 비공식 대회를 개최하였고 우리 팀도 참여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언택트 레가타 Untact Regatta’. ‘각자의 요트에서 즐기는 비대면 레이스’라는 주제로 바다 위에서 독립적으로 경기를 진행한다는 영리한 콘셉트의 대회였다. regatta는 보트 경기, 요트경기라는 뜻인데 요트를 타기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였지만 이제는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그런 단어이다.
비공식 대회이긴 해도, 이제 J24를 탄지 6개월이 막 지난 나로서는 실상 처음으로 참여하는 바다 위에서의 레이싱이자, 항상 연습하는 요트학교 수역 밖에서 처음 해보는 경기이기도 했다. 시합 전날 통영항에 도착해서 크레인을 사용해 요트를 바다로 내렸고, 세일을 펼칠 때 지지하는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마스트를 설치했다. 이번 통영 대회를 위해 차터 한 요트가 꽤 오랫동안 세일링을 나가지 않았던 터라 선실 안팎을 스펀지로 열심히 닦아내서 회색빛이 나던 요트를 새하얗게 만들어주었다.
이 대회를 주최하는 통영 베이스의 요트클럽은 신선한 감각과 패기로 꽤나 유명한 팀이었는데, 경기 운영인력이 별도로 지원되지 못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내내 전문적인 드론 촬영이 계속되었고, 사진과 영상 촬영을 했으며 GPS 장치로 각 요트들의 코스를 기록으로 남겼다. 언택트 레가타의 시합 코스는 통영 마리나에서 출발, 파도가 출렁이는 통영 앞바다에서부터 시작하는 오프쇼어 레이스 Offshore Race였다. 바다 저 멀리까지 긴 코스를 세일링 해서 띄워놓은 마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용초도 등대를 돌아오는 코스 말이다.
'세상에, 바다에 있는 진짜 등대를 돌아오는 것이 경기라니, 이건 너무 멋지잖아!'
멋지긴 했는데 항상 단거리에서 마크를 여러 번 도는 레이스만 하다가 장거리를 달리는 것이, 그것도 바람을 읽고, 파도와 조류를 감안하고, 또 들이닥치는 바닷물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세일링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더구나 이건 진짜 시합이고, 경기 깃발만 올라가면 평소에 그렇게 순하고 평온하던 사람들이 아드레날린을 폭발시키며 승부욕에 이글이글해지는 우리 팀 멤버들과 한 배에 타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용초도 등대는 언제 나오는 거야? 저거 빨간색인데 그 등대 맞겠지?"
처음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용초도 등대를 찾느라, 등대를 찾은 후에는 주변 수심이 어떤지 몰라 만일에라도 배가 손상될까 봐 코스를 손해 보면서 등대를 멀찍이 돌았다. 두 번째, 세 번째 경기를 하면서부터는 바람도, 파도도, 코스도, 지형도 감을 잡았고, 차터 하여 처음 타보는 요트에 조금씩 익숙해진 우리 팀은 비로소 레이싱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힐을 잡고, 메인 세일과 제노아 세일 트리밍을 하고, 각을 조절하며 그렇게 첫날 마지막 경기를 1등으로 마쳤다.
둘째 날 경기는 조금 더 우리 팀에 익숙한 연안 경기, 인쇼어 레이스였는데 바다 멀리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바다에서 마크를 띄워놓고 짧은 코스를 여러 번 도는 게임이었다. 아무리 인쇼어 경기라지만, 평소 우리가 훈련하던 수역과는 비교도 안되게 넓은 통영 바다에서의 경기라 첫 경기는 코스를 파악하는데 집중했고, 이번에도 마지막 경기에서야 비로소 1등을 할 수 있었다.
"첫 날도 1등, 둘째 날도 1등을 한 번씩 했다면, 다른 순위도 나쁘지 않으니 우승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대회 경험이 많은 스키퍼 언니와 D는 열심히 계산을 시작했다. 언택트 레가타답게 결과 발표와 시상식 행사가 없었던 이번 대회는, 순위도 각 팀이 해산한 이후에 단톡 방에서 발표될 참이었다. 순위 발표의 기대감을 높이기 위해 드론 촬영 영상이 먼저 공개되고, 시합 영상이 공개되고, 수많은 사진이 공개되고, 통영에서 출발한 차가 서울에 거의 도착할 즈음에 되어서야 순위가 발표되었다.
"우리 팀 1등! 꺄아!"
올여름에 있었던 첫 시합, 동호인 대회에서 꼴찌를 하더니 결국 1등을 해내다니! 경험이 많았던 멤버들은 그들대로 이제야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는 듯 기뻐했고, 신입 멤버들은 그들대로 처음 경험하는 바다에서 흥분과 1등의 즐거움을 맛봤다. 그렇게 모든 팀 멤버들과, 팀 코치님과 기쁨을 나누고 밤 12시가 다 되어 집에 돌아오니 새로운 메시지가 와 있었다.
"경기운영위에서 계산을 잘못했습니다."
요트경기에서 순위는 가장 나쁜 순위를 제외한 각 레이스의 순위의 합으로 정한다. 우리 팀을 포함한 세 팀이 동점이었는데, 이 경우에는 1위를 한 횟수로 다시 순위를 매긴다. 우리 팀과 C팀은 1위의 횟수도 똑같았는데, 이때 운영위는 마지막 경기의 순위가 높은 우리 팀을 최종 우승이라 발표하였지만, 요트경기규칙 부칙 8.1에 따르면 1위의 횟수가 동점일 경우에는 2위의 횟수를 카운트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결국 우리 팀은 최종 2위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충분히 기쁜 시간을 보냈고, 다다음주에 있을 올 시즌 마지막 요트대회에 나갈 에너지를 충분히 얻었는걸!
이게 바로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노는 법이다. 드넓은 바다에서 충분한 거리를 두고 요트 시합을 즐기면서 말이다. 각자의 요트를 타고 있어 물리적으로는 떨어져있지만 온라인으로는 충분히 가깝게 연결될 수 있다. 옆에 붙어 서서 사진을 찍지 않아도 같이 참여한 경기의 사진과 영상을 모아 함께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무전기와 핸드폰이 있으니 비대면 요트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코로나도 우리의 세일링 열정을 막을 수는 없다.
글: Edi (https://instagram.com/edihealer)
그림: Samsa (https://instagram.com/y.sam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