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뭐예요?”
“요새는 요트에 푹 빠져있어요”
“골프, 승마, 그다음에 한다는 럭셔리 취미의 끝판왕 그 요트요?”
“아.......”
보통은 대화가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맞는다고 할 수도 틀리다고 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지만, 왜 이런 편견이 생겼는지는 잘 알겠다.
요트는 고가이다. 석유부자 만수르의 요트는 5,800억이다. 할리우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수영장, 영화관, 노천탕을 갖춘 이 요트를 빌려서 파티를 했다고 한다. 첼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1조 5천억 원짜리 요트를 소유하고 있다. 부자들은 곧잘 호화요트에서 휴가를 보내고, 호화요트의 가격은 실로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제가 취미로 세일링을 하는 요트가 5,000억짜리의 그 요트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대중적인 스포츠가 아니다 보니, 어떻게 요트를 시작하게 됐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요트를 타는지 궁금해하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휴가 가는 며칠을 빼고는 일 년 내내 서울, 그러니까 도시에서만 산다. 도심 한가운데 높은 아파트에 살고, 지하철을 이용해서 이 빌딩에서 저 빌딩으로 이동한다. 자연과는 거리가 먼 일상이다.
2년 전 부산 여행을 하면서 해운대에서 요트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비로소 바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해운대의 화려한 고층빌딩을 배경으로 아무 동력장치 없이 순전히 바람의 힘만으로 세일을 조종해서 움직이는, 인공과 자연의 묘한 대비가 신선했다.
“시트 당겨요!”
선생님의 디렉션만 듣고 시트를 당기자마자 세일은 바람을 받았고, 요트가 전진하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의 스릴이 잊히지가 않았다.
서울에 돌아와 요트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지만, 실제로 강습을 받기로 마음을 먹기까지는 1년이 더 걸렸다. 그렇게 요트학교에서 1인용 딩기요트와 다인승 킬보트 강습을 받다가 요트조종면허도 땄고 요새는 6인승 킬보트를 타고 있다.
요트를 탄 시간이 길지 않아서 요트인들을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함께 세일링을 하는 우리 팀 멤버들의 경우는 이렇다. 팀 멤버가 전원 여자라, 의도치 않게 어떤 '여자'들이 요트를 타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다.
직장인이라면 회사-집을 오가는 단순하고 소모적인 삶에 활력이 되는 취미가 필요하다. 그것이 달리기, 수영, 요가, 춤 같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건, 합창, 피아노, 그림처럼 예술적인 활동이건 말이다. A언니는 이미 십수 년 전에 취미로, 지금의 나처럼 요트학교에서 요트를 배우기 시작하고 요트조종면허도 땄다. 배운 것을 연습하지 않으면 까먹기 마련인데 세일링이 러닝만큼 접근성이 좋은 취미가 아니다 보니, 여름휴가를 이용해 프라이빗 크루징(10명 이내의 인원이 요트 한 척으로 일주일 가량 여행하는 것)을 하거나, 아메리카스 컵을 참관하러 다녀오는 등 무리해서라도 그 아쉬움을 달래고 요트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나와는 킬보트 수업에서 만나서 알게 되었다.
오랜 경력을 가지고 바람과 파도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대학교 요트 동아리 출신이 많다. B와 C는 대학 요트 동아리 회장을 지냈던 친구들이다. 남녀공학 대학의 스포츠 동아리라 하면 아무래도 남학생 수가 많고 주도적일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이 친구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성고정 관념을 멋지게 깨 주었다. 요트 동아리는 대학연합회도 활성화되어있는 것 같고 대학별로 OB 모임이 활발하게 운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요트는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이 쌓여 더 잘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보니 선후배가 섞여 팀을 이루어 세일링을 즐긴다. 그 모습이 퍽 부럽다.
체육을 전공해서 어떤 운동이건 잘하는 D와 E도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취미로 세일링을 하고 있다. 요트는 처음 타지만 그들은 타고난 운동 신경과 체력을 기반으로 취미생활도 훈련처럼 밀도 있게, 그리고 즐겁게 한다. 체육 전공자들은 몸, 그러니까 근육과 힘쓰는 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자주 이 친구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따라 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선수 출신들이 있다. F는 중학교에 요트부가 생기면서 호기심으로 요트를 시작하게 되어 대학생인 지금까지도 선수 활동을 하고 있다. G와 H는 고등학교 때까지 선수 생활을 했고 지금은 취미로 세일링을 즐기는데, 바람과 파도와 함께 성장한 그들은 바람이나 코스를 읽는 능력, 경기를 진행하는 감각, 또 팀 활동을 하는 태도가 남달라 배울 점이 많다.
요트를 타게 된 계기는 조금씩 다르고, 요트 실력은 많이 차이나지만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대학생이건 직장인이건 주말이면 쉬거나 데이트를 하고 싶을 만도 한데, 우리는 주말마다 이곳에 나와서 배를 정비한다고 드릴을 들고 다니거나, 배에 부딪혀서 팔다리에 멍을 잔뜩 만들고 간다. 연습이 끝나면 공평하게 발언권을 가지고 그 날의 연습에 대해 리뷰를 하고, 철저하게 실력에 따라 멘토 멘티가 정해져서 가르침을 주고받는다. 주말이 아쉬워서 평일에는 각자 세일링 기술을 공부한다며 유튜브를 찾아보거나 매치 레이스 룰을 공부한다.
우리가 바로 요트 타는 여자들이다.
글: Edi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