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평소에 운동 좀 하라고 했잖아. 너는 근육에 힘만 없는 게 아니라 뻣뻣하기까지 해. 근력운동도 해야 하고 스트레칭도 잘해야 안 다친다고.”
친구가 등에 담이 왔다거나, 디스크가 터졌다거나 발목을 접질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운동을 안 해서라고 귀에서 피가 나도록 잔소리를 해대던 내가 깁스를 했다. 인대도, 근육도, 뼈도 관리를 잘해왔는데 사고가 나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으니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게 넌 왜 그렇게 순발력이 떨어지냐? 그거 하나 못 피하고. 운동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네.”
친구들은 아무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다친 것도 아픈데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속상하겠다는 생각이 들고나서야 나의 태도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경험하지 않고도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참 좋으련만......
오른 다리를 못 쓰니 왼다리에 과부하가 걸려 땅땅해지고 저리기까지 하다. 다친 다리가 붓지 않도록 위로 올리고 앉아있으니 골반이 삐뚤어졌는지 허리도 아프다. 운동도 안 했는데 복근은 왜 당기는 건지. ‘몸과 마음의 발란스’, ‘균형과 조화’ 등 균형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요가의 언어인데 매일 듣고 말하던 ‘균형’이란 것이 맞지 않으니 아주 힘들다.
앉아서 하는 스트레칭 동작 위주의 힐링 요가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깁스를 하니 무릎을 꿇고 앉는 자세도 못하고, 발바닥을 마주대고 무릎을 벌려내는 나비 자세도 되지 않았다. 발을 사용해야 하는 동작을 다 못하게 되고 나서야 발이 보이기 시작했다. 발은 우리 몸의 토대이자 뿌리여서, 뿌리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줄기인 몸통과 가지인 어깨, 목까지도 불안정해진다. 발을 제대로 딛지 못하면 무릎, 골반, 어깨, 목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인데 그건 결국 척주가 안정적이지 못해서이다.
척주의 안정성을 위한 첫걸음은 엄지발가락의 안정성이다. 엄지발가락을 단단히 지지하고 발볼로 바닥을 정확하게 밀어내면 발 안쪽 아치가 확보되고, 허벅지 안쪽에 힘이 들어가 척주가 안정적으로 세워진다. 엄지발가락과 발볼의 지지를 신경 쓰며 걷다 보면 과연 그 안정감이 굳건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 발 아치, 혹은 족궁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요가 수업에서였다. 그 전에는 이런 부위가 존재하는지도 몰랐고 신경 조차 쓰지 않았었다.
발 안쪽의 움푹 들어가 있는 이 아치는 우리가 걸을 때 생기는 충격을 흡수하고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아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종아리 근육이 과도하게 사용되어 여자들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알이 박힌 종아리가 되거나 균형이 틀어지면서 골반이 삐뚤어진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의 로봇들이 허리를 약간 구부린 채 뚜벅뚜벅 걸었던 것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사람처럼 다리와 가슴을 쭉 편채 걸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비밀이 바로 발의 아치였다. 이전 로봇의 발은 평발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발을 들어 올리고 내리는 알고리즘만을 사용했었다면, 아치형 발을 가진 로봇은 뒤꿈치로 땅을 딛고 앞꿈치로 땅을 차는 방식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발바닥의 세 지점으로 매트를 잘 누르세요.”
요가 선생님이 말하는 세 지점이란 엄지발가락 아래, 새끼발가락 아래의 통통한 발볼과 뒤꿈치의 가운데 지점이다. 세 지점으로 잘 지지한 후에는 발가락을 활짝 펼쳐 매트를 움켜잡듯이 발가락에 힘을 주라고 하셨다. 요가를 하면서 발가락을 손가락만큼이나 넓게 펼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앉아있다가도 종종 활짝 벌려보는 습관이 생겼다. 발가락끼리 깍지를 끼기도 하는데 좁은 구두 안에서 쭈그려져 있던 발가락이 기지개를 켜는 듯 아주 시원한 느낌이다. 활발한 발가락의 활용 연습은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음? 구두가 안 들어가네?”
몇 년 만에 하이힐을 신으려니 넓어진 발이 도통 들어가지 않는다. 넓은 지지기반이 중요하다며 펼치기 연습을 꾸준히 한 발은 날렵한 하이힐과는 먼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어머, 어떻게 하지? 이 예쁜 구두가 안 들어가.”가 아닌, “더 이상 신지 않는 하이힐을 정리해야 할 때가 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구두가 패션의 완성이라며 캐리 브레드 쇼처럼 하이힐을 진열해놓고 살던 사람도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게 스스로도 참 어색하다.
요가 수업이 항상 대단한 아사나를 하는 것만은 아니어서 마사지볼을 발바닥 아래에서 굴리면서 발바닥 마사지를 하는 시간도 있다. 무릎을 꿇고 앉은 후 발가락을 매트에 꺾어서 발가락 뼈에 체중을 싣는 토스쿼트로 족저근막 스트레칭을 하기도 한다. 족저근막은 발바닥의 충격을 흡수하고 아치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데 하이힐을 오래 신거나, 반대로 바닥이 아주 얇은 플랫슈즈를 많이 신는 여자들이라면 한 번쯤 족저근막염진단을 받아봤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지난 몇 년간 내가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배웠던 내용이다. 잊고 있었던 내용들이 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하자 후드득 튀어나왔다. 매일 만보 이상 걷고, 틈만 나면 산에 올라가고 가끔 달리기도 하는 나는 건강한 발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발을 못 쓰게 되어서야 깨달았다. 어쩌면 내 발은 신호를 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건 발만의 문제는 아니다. 반평생 고장 한 번 난 적 없는 튼튼한 신체를 선물 받아 건강하게 살아왔는데, 이에 대해 감사를 한 적도, 이유를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스키, 스노보드, 서핑, 클라이밍 등 익스트림 스포츠들을 끊임없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잔병치레도 한 번 안 하고 컸네.’라는 생각을 했다가 아차 싶었다. 어려서 나는 꺼멓고 쓴 한약과 초콜릿이 식사의 일부인 것처럼 쭈욱 보약을 먹고 자랐다. 할아버지의 기사 아저씨는 출근 전에 유명한 소아과에 진료 접수를 하고 집에 오셔서는 할아버지와 나를 태워서 소아과로 출발하시곤 했다. (지금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때는 그랬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건강은 부모님의 관심과 정성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반평생의 건강은 누가 만들어야 할까? 나는 부모님이 내게 신경써 주셨던 만큼 내 몸을 아끼고 돌보고 살아왔던가? 몸이 아우성을 치기 전에 미리 관심을 갖고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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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edi
그림: jess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