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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다운 어른, 스승다운 스승

by 요가언니



하루에 겪은 이 두 가지의 일은 ‘어른’에 대한 상반된 생각을 하게 했다.


2021년은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과 더불어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이 필수인 시대이다. 2020년대가 아닌 1980년대를 살고 계신 것 같은 분께

“방금 하신 말씀은 부적절한 발언이고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자 그분은

“아이고, 내가 죽을죄를 지었네.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할까?”

라고 대답해 나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했다.


오후에 만난 분은 나이가 더 많으셨는데,

“혹시 그 사람과의 대화가 유쾌하지 않았더라도, 나를 봐서 한 번만 참아줘요. 내가 에디씨보다 조금 오래 살아보니까 때에 따라서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시기가, 감내해야 할 때가 있더라고요.”

라며 당신 입에서 나오지 않은 말까지도 직접 사과를 하셨다.


우리나라 1세대 국제회의 통역사 최정화는 <첫마디를 행운에 맡기지 마라>에서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과의 일화를 언급하며 ‘나이를 먹었다고 어른인 것은 아니다. 그에 걸맞은 경험뿐 아니라 어른에 맞는 언어가 필요하다.' 고 말한 적이 있다. 어른에 맞는 말이란 타인의 기운을 북돋워주고, 지금 그에게 필요한 내용을 담은 말, 사람의 마음을 덥힐 수 있는 말이라고 했다. 오늘 두 어른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어른이 다 똑같은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그건 요가도 마찬가지여서 요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다 똑같은 스승은 아니다.


나는 요가 선생님들이 감내하는 수련의 시간과 끊임없는 자기 계발에의 노력을 존중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을 존경하고 배울 점을 찾는다. 통증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를 위한 테라피에 대한 태도는 근육학 선생님으로부터 배웠고, 비건에 대한 관심은 아쉬탕가 선생님과의 대화 덕분이었다. 육감적인 몸매와 화려한 외모만 보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하타요가 선생님의 진심 어린 호흡 수련과 명상 수련을 보고 명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가 만난 모든 스승들은 나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분들 덕분에 ‘요가하는 에디’라는 자아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간혹 불쾌한 분위기로 수업을 끌고 가는 강사를 만나기도 한다. 한 번은 유명한 선생님이 특강을 하신다기에 토요일에 요가원을 찾았다. 선생님의 명성에 걸맞게 수강생들이 몰려온 터라 최소한의 간격만 확보한 채 매트를 촘촘히 깔아 수련실을 빽빽하게 채워야 했다. 그러다 보니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고, 문을 닫고 있는 수련실은 금세 열기로 사우나가 되었다. 벽면의 거울만 목욕탕처럼 뿌옇게 된 것이 아니라 공기가 무거워지고 시야가 가려지기 시작했다.


“왜 요즘 사람들은 평소에 수련을 안 하고 주말에 특강만 쫓아다니나요? 유명 강사와의 인증샷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은 진정한 요가가 아닙니다.”


격앙된 톤으로 말씀하시는 선생님을 보며


‘저런 생각을 갖고 계시다면 주말 특강을 열지 말았거나 인원을 제한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평소에는 여건이 되지 않아 주말에 시간을 할애해 수련을 온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가혹한 말이 아닌가?’


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의 아사나는 훌륭했고 말씀의 의도도 이해했으나, 선생님 뒤를 비추던 아우라는 이미 사라졌다.


다큐멘터리 <비크람- 요가 구루의 두 얼굴>의 이야기는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심각했다. 유능한 요기이자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서 거대한 요가 스튜디오 프랜차이즈를 거느렸던 그는 요가 지도자 자격증, 프랜차이즈 허가권을 쥐고 간절히 요가 강사가 되고 싶어 했던 제자들을 강간, 학대했다. 비크람 요가는 우리나라에서는 핫요가로 알려졌었는데, 그와 관련된 여러 건의 소송 등의 이슈로 프랜차이즈에서 비크람요가 대신 핫요가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쉬탕가 요가계에서의 미투 운동도 꽤 떠들썩했다. 2009년 아쉬탕가 요가의 창시자인 파타비 조이스의 사망 후 2010년부터 그에 대한 성추행 폭로가 시작되었고, 거의 10년이 지난 2019년에서야 파타비 조이스의 손자이자 현재 인도 마이소르에서 아쉬탕가 요가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샤랏 조이스가 인스타그램에 사과를 올려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다.


아엥가요가의 창시자 B. K. S. 아엥가의 경우는 폭력적인 언어 사용이 문제시되었고 쿤달리니 요가를 서구에 전파한 요기 바잔도 성추행 추문이 있었다. 아가마 요가의 창립자 스바미는 앞선 구루들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언웰: 웰빙의 배신>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탄트라 에너지를 바로잡기 위한 요니 마사지라는 이름으로 제자들을 강간했다고 한다.


이쯤 되니 순수하고 초월적인 이미지의 요가계에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두 가지 생각을 했는데 그 첫 번째는 개인적인 차원의 것으로, 많은 이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프고 약할 때 요가를 찾게 되는 것에 주목을 해봤다. 취약하고 연약한 상태에서는 잘못을 바로 잡거나 저항하기가 쉽지 않다. 두 번째는 구조적인 차원으로 섹스 스캔들의 본질은 섹스가 아니라 권력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헌신적인 수련자 사이의 위계에서 발생한 권력의 문제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요가 수련자가 다 같은 수련자는 아닌 것이다. 어른이라고 다 어른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나는 어떤 수련자이며 어떤 어른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최정화가 말했던 '어른에 맞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말을 되새겨본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중에서)





매주 월요일에 만나요


글: 에디

그림: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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