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도면 엉덩이 기억상실증 걸릴 기세야."
엉덩이 기억상실증 Gluteal Amnesia이라는 것이 있다. 엉덩이 근육을 오래 사용하지 않아 힘을 쓰는 방법을 잊는 것을 일컫는데, 장시간 앉아있는 습관이나 엉덩이가 뒤로 빠지거나 배를 내밀고 서는 등의 골반과 관련된 좋지 않은 자세가 이를 유발한다.
발을 다쳤다는 핑계로 최소한으로 움직인 결과, 엉덩이 소멸이 시작되었다. 운동할 때는 만들어지지도 않는 것 같던 근육이 운동을 안 하니 이리 쉽게 빠지다니, 허무하다. 하긴, 매일 요가 수련을 해도 아사나는 그렇게도 늘지도 않더니만 며칠을 쉬고 나면 내 몸은 요가를 처음 하는 듯 뻣뻣해졌었다. 발전에는 인색하고 퇴보에만 관대한 몸이 참 야속하다.
엉덩이만 작아진 것이 아니라 복근도 없어졌고, 허리도 두꺼워졌으며 허벅지도 말랑말랑해졌는데 왜 엉덩이가 유독 다급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미적으로 완벽한 애플힙을 갖고 싶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 엉덩이 근육은 정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엉덩이 근육은 우리 몸에서 가장 크고도 강한 근육 중 하나인데, 허리, 골반, 허벅지를 연결해준다. 몸의 중앙에 위치하여 상하체를 연결한다는 것은 바른 자세를 잡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고 균형감에 기여한다는 말이다. 이 균형감이 맞지 않을 때 발생하는 것이 위로는 허리통증, 아래로는 무릎통증, 그리고 골반의 틀어짐과 고관절의 문제이다.
대둔근은 고관절을 바깥쪽으로 회전하는 외회전을 담당하는 근육이기 때문에 이것이 약해지면 허벅지뼈가 안쪽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고정되어 있는 정강이뼈와 다른 방향성을 띠게 된다. 그 충돌이 지속되면서 무릎에 염증이 발생한다. 애플힙의 핵심인 중둔근은 허리와 골반을 잡아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서 허리가 아픈 경우 중둔근 스트레칭이나 강화 운동이 요통을 완화시켜주는 경우가 있다.
현대무용 수업에서는 꼭 워킹을 했었다.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는 것 같기도 하고 발레리나의 워킹 같기도 한 것이었데, 포인트는 걸을 때 다리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골반을 앞으로 내밀면서, 그러니까 골반을 회전하면서 걷는 것이었다. 얼핏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걷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오른 골반이 앞으로 나갈 때 뒤에 남은 왼쪽 엉덩이에 힘을 주며 왼발바닥으로 바닥을 밀어 추진하는 원리이다. 나중에 이것이 '엉덩이 걷기'라는 이름으로 효과적인 다이어트 운동으로서 전파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걸을 때 몸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엉덩이 근육, 종아리 근육, 발바닥 근육의 협업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걸을 때 엉덩이 근육을 쓰지 않고 다리만 움직이며 걷는데, 그러면 종아리 근육을 과도하게 쓰게 된다. 저주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엉덩이는 작아지고 종아리는 두꺼워질 것이다.
<마녀사냥>이란 프로그램에서 곽정은 기자가 남자의 탄탄한 엉덩이가 섹스 시 폭발적인 파워를 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하체운동이 남성호르몬의 생성과 관련이 있다고 하던데, 그 과학적인 내용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운동을 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스태미나가 좋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남자건 여자건 엉덩이 근육이 충분히 강하고 건강하다는 것은 그 주변의 허리, 골반, 다리를 잘 연결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다양한 자세를 자유롭게, 그것도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탄탄한 힙이 주는 자신감 역시 빼놓을 수 없는데 섹스에서 스스로의 몸에 대한 자신감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요가 선생님을 만나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했다.
“선생님, 요새 운동을 못하니까 근육이 무섭게 빠지네요. 특히 엉덩이요.”
“덩키킥은 할 수 있지 않아요?”
“어? 그러네요?”
'다쳤다'라는 것 하나에만 집중한 나머지 환자가 되어 드러누워 있었던 나는 발을 다친 것이었지 다리를 다친 게 아니라서 뛰거나 다친 발을 딛고 한발로 서는 것이 아닌 이상 모든 운동을 할 수 있었다. 덩키킥은 킥백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무릎과 손바닥을 바닥에 지지하고 네 발로 기어가는 자세에서 한 다리를 뒤로 차는 동작이다. 그러니까 발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성공하는 사람의 태도에 관해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이론 중에 고정 마인드셋 fixed mindset과 성장 마인드셋 growth mindset이 있다. 스탠퍼드 대학의 캐롤 드웩 교수가 <마인드셋>에서 제안한 개념으로 고정 마인드셋은 인간의 자질이 불변한다는 믿음으로 예를 들면 'IQ가 그 사람을 규정짓는다'거나, '새로운 것을 배울 수는 있지만 지능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는 없다' 같은 것을 말한다. 반면 성장 마인드셋은 '현재 가진 자질은 성장을 위한 출발점으로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길러낼 수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언제나 내 지능 수준을 변화시킬 수 있다'라고 믿는 태도이다.
나는 내 몸에 대해 어느 정도 고정 마인드셋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큰 키, 넓은 어깨, 긴 다리 같은 것은 아버지, 할아버지, 사촌들까지 우리 친척들의 공통점이기 때문에 내가 가진 근육이나 힘도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타고난 신체 조건 덕에 무슨 운동을 해도 중간 이상은 할 수 있었는데 대신 죽을힘을 다해 노력을 해본 적은 없다. 열심히 했는데도 그저 그런 성적이 나오는 실패를 맞닥드리는 것이, 약점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약해진 몸을 보면서, 나의 몸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매일 걷고 계단을 오르고 요가를 하면서, 내 노력으로 몸을 만들어냈던 것이었다. 더구나 신체활동이 줄어든 시간 동안 의식적으로 더 많은 과일과 채소를 섭취하는 관리까지 했으니 난 건강한 몸을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마인드셋>에서는 마이클 조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완벽한 육체가 만든 위대한 선수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는 타고난 선수가 아닌 스포츠 역사상 가장 열심히 노력한 운동선수라고 말했다. 시카고 불스팀의 코치는 조던을 '자신의 천재성을 계속 향상시키려는 천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정신적 강인함과 심장은 당신이 가진 육체적 장점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나는 항상 그렇게 얘기하고 믿었습니다. "
- 마이클 조던-
“이제 내 몸은 끝이야. 나도 똑같은 축 처진 늙은 몸이 된거지.”
이건 고정 마인드셋이다. 하지만 성장 마인드셋을 장착하면 이 경험을 통해 타고나거나,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알아서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우선은 침대에 누운 채로 엉덩이를 들어 올려 브릿지 포즈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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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에디
그림: 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