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경기에는 남자 여자가 없다. 1인용 딩기요트는 남자부, 여자부가 나누어져 있지만 요트의 사이즈가 커지면서 다수의 크루가 탑승을 하게 되면, 성별에 제한이 없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팀은 남자로만 이루어져 있고, 때때로 여자 크루가 한두 명 포함되는 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트가 커지면 커질수록 컨트롤해야 하는 세일의 크기도 커지기 때문에 강하고 순간적인 파워가 필요할 때가 많은데, 아무래도 신체적 조건의 차이가 퍼포먼스의 차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자 멤버로만 구성되어 6년째 요트를 타고 있다. 우리 팀은 지난 2019년 이순신장군배 국제 요트대회 J-24 클래스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한 것에 이어 지난주에 개최된 2021년 새만금컵 국제 요트대회 J-24 클래스에서도 2위를 했다. J-24 클래스는 남자부 여자부 구분이 없고 크루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조건만이 있는데, 그것은 배 한 척당 크루의 몸무게가 400kg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은 굳이 신체적 조건의 차이를 의식하지 않고, 남자들이 5명 탑승할 때 우리는 6명이 탑승하는 식으로 파워를 보완하며 그 한계를 극복했었다.
그런데 이번 2021 보령 국제 요트대회의 J-70 클래스 요트경기에 참가하면서 남자 여자의 차이가 전혀 없지는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총 12팀이 참가하여 6위까지가 본선에 올라가게 되었는데, 본선 진출팀이 모두 남자 크루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실제로 경기에 참여했던 우리 팀원들은 악천후와 강풍 속에서 세일과 요트를 컨트롤하는데에 있어서 힘에 부쳐했다.
그런데 며칠 전 조직위원회로부터 본선 진출에 실패한 우리 팀에게 초청팀 형식으로 본선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제의가 들어왔다.
“에이, 이거 말이 ‘초청팀’이지 꼽사리네. 실력으로 올라간 게 아니잖아요.”
“‘홍보를 위하여’ 초청한다는데, 사진 찍을 때 남자들만 있으면 보기 좋지 않으니까 여자팀 넣어준 거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 팀도 성적을 잘 내면 되지 않을까요?”
“어쨌든 우리 팀은 즐거운 세일링이 목적이니까 대회 성적과 상관없이 요트를 한 번이라도 더 탈 수 있다면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팀 내에서도 이번 대회 초청에 대한 이견이 있었다. 구색 맞추기 용으로 여자팀이라서 초청한 것이니 불참해야 한다는 의견과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대회 성적이 아니라 바다에서 세일링을 할 수 있는 기회이니, 이를 활용해서 우리가 좋아하는 세일링을 즐겨야 한다는 의견이 그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일정이 맞는 팀원들끼리 팀을 꾸려서 다시 한번 J-70 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그래서 최종 참가 팀은 1~6위까지의 팀과 와일드카드인 우리 팀까지 총 7팀이며, 5대의 요트로, 5팀씩 돌아가며 게임을 진행하는 라운드 로빈 Round Robin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한다고 했다.
올림픽 역사를 살펴보면, 여자도 언제나 동등하게
요트경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여자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최초의 종목이 바로 요트였고, 1900년 파리 올림픽 요트에 크루로 참여한 스위스의 헬렌 Hélène de Pourtalès 이 그 주인공이다. 요트에 여자부가 별도로 생기게 된 것은 1988년이 되어서였다.
요트계도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대우 gender equity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의 요트 대회는 5개의 남자부, 4개의 여자부, 1개의 혼합부로 60/40의 남녀 비율로 경기가 치러지지만, 2021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50/50로 맞출 것이라고 공표한 것을 보면 말이다.
국내 요트 인구가 충분해서 남자부, 여자부를 나누어 경기를 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지금은 선수 풀 자체가 굉장히 적고, 심지어 여자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고 ‘공정하게’ 실력으로만 경기를 진행하면 여자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는 기회는 더 적어지고 영영 요트대회에서 여자는 찾아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이번 초청을 조직위원회에서 국내 요트 시장을 확대하고, 특히 여성 요트인의 비중을 늘리기 위해서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올 때까지 서포트를 해주고 투자를 해 준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이를테면 최근에 정치적 이슈가 되고 있는 ‘여성할당제’ 같은 것처럼 말이다.
흔히 ‘여성할당제’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이 제도는 1996년에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로 시작되었는데 2003년부터는 ‘양성평등 채용목표제’로 명칭과 내용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특정 성별이 전체 합격자의 30%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골자로, 어느 한쪽이 30%에 미치지 못하면 고득점순으로 '추가 합격자'를 선발해 성비를 맞추는 제도이다. 흥미로운 것은 2003년부터 2011년까지는 이 제도에 따른 여성 추가합격자가 더 많았으나, 2012년부터는 남성의 추가합격자 수가 더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이 제도에 대해 ‘남성 진입장벽 해소용’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 들은 반가운 소식은 현재 남자부, 여자부가 나눠져 있는 올림픽 종목인 470 클래스가 차기 파리 올림픽부터는 혼성으로 바뀜에 따라 국내 실업팀에 여자 선수들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조금이나마 넓어졌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이번 도쿄 올림픽에 윈드서핑 남자부, 레이저 남자부, 470 남자부, 이렇게 세 종목에 4명의 남자선수만 출전했을 뿐이다. 이제 올림픽 요트 종목에서 한국의 여자 선수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트계에도 작은 배려와 발걸음이 토대가 되어 공무원 채용과 같은 극적인 효과가 나오는 날이 있을까?
글: Edi (https://instagram.com/edihealer)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