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는 부안과 보령 두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세계지도를 펼쳐 다음 휴가를 어느 나라로 갈지를 찾던 내가 지금은 속속 국내 여행에 재미를 붙여 다니고 있다. 해외에 나가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나는 잘 적응했고 국내 여행은 생각보다 더 흥미롭다.
이번 부안과 보령으로의 여행콘셉트이자 매개는 요트였다. 두 도시에서 열린 두 개의 요트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부안에는 격포항과 부안 변산 요트경기장이 있고, 보령에는 대천해수욕장과 보령시 요트경기장이 있다. 보령 요트경기장 같은 경우에는 보령 해양레저복합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비교적 최근에 지어져서인지 지자체에서 인프라와 행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모든 기준이 변화하고 있는 요즘, 요트 대회 역시 코로나로 인해 여러가지가 바뀌었다. 그중 하나는 매 경기마다 선수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아 음성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긍정적이라 생각되는 변화는 요트경기를 유튜브로 생중계해준다는 사실이었다. 요트는 인기 종목도 아닐뿐더러 일반적으로 요트 대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알려져 있지도 않고 대중의 관심도 없으니 굳이 중계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나마 있던 소수의 관중도 이제는 경기장에 접근할 수가 없으니(경기장은 코로나 검사를 마친 선수들만 입장 가능), 유튜브로 중계를 해주는 것이었다.
중계를 보다보니 요트는 일찌감치 생중계를 했어야 하는 종목이었다. 경기 수역이 방대해 관객이 한눈에 경기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 미디어정으로 사용하는 모터보트가 바로 옆에서 촬영하는 영상이 있어야 그 생동감을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에 참여했던 우리 팀이 숙소에 돌아와서 유튜브로 시합을 다시 보며 그 박진감을 느낄 정도로 생생했다.
대회에 참가하면서 알게된 것 중 하나는, 요트는 경기 시작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경기위원회가 체계적이지 않거나 준비성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탈 수 있는 것이 요트이기 때문이다. 요트는 모터를 사용하지 않고 돛에 받는 바람의 힘을 동력으로 삼기 때문에, 바람과 조류라는 자연현상의 조건이 딱 맞아떨어져야만 움직일 수 있다. 바람이 있더라도 조류의 힘이 더 강하면 요트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류에 밀려 떠내려가기 때문에 조류의 힘보다 더 강한 바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정말 까다로우면서도 자연의 일부가 되는 자연 친화적인 스포츠가 아닌가!
어느 정도로 대기를 해야 했냐 하면, 아침 9시에 스키퍼(각 팀에서 요트의 운전대를 잡는 주장) 미팅을 시작으로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대기를 시작했는데, 점심시간이 되도록 시합을 시작할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그리고도 바람이 오지 않아 오후 2시가 넘을 때까지 기다려서야 시합을 시작해서 해가 뉘엿뉘엿 질 때가 되어 끝나곤 했다. 기다리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지난주의 폭염은 만만치 않았다. 난민처럼 그늘에 모여 앉아 바람이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령에서 하루는, 도저히 시합을 시작할 수 있는 바람 상황이 아니어서 경기수역 주변 모래사장에서 태닝도 하고 파도타기도 하고 머드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머드 샤워도 하면서 놀았다. 그러다가 바람 상황이 나아져서 경기를 시작하게 되자 바닷물에 그대로 머드를 씻어내고 젖은 몸으로 요트를 타기도 했다. 요트 경기를 즐길 수 있으려면 대기시간을 괴로워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즐길거리를 찾아서 재미있게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재미있게 놀았기 때문에 이번 대회가 나에게 휴가로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부안에서는 조개구이를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조개구이는 아무래도 사이즈가 크고 살이 많은 가리비가 가장 맛있었지만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것은 백합찜이었다. 일반 조개보다 껍데기가 크고 하얗고 튼튼한 백합을 하나하나 쿠킹포일로 싸서 쪄주는데, 그걸 한 개 잡아 은박지를 조심스럽게 풀어 안에 고여 있는 즙을 호로록 마시면, 술안주로 먹었던 조개탕 국물과는 차원이 다른, 진한 조개 육수가 나온다. 그 한 모금의 국물이 너무 시원해서 몇 개를 까먹었나 모른다. 친구들은 백합찜을 처음 먹어보는 나를 신기해했지만, 이태원에서 이국적인 음식점 찾기에 으뜸인 나는 정작 우리나라 각 지역의 대표 음식은 잘 모른다. 조개구이도 이번에 처음 먹어본 것이니까 말이다.
국내에 스무 개가 넘는 마리나가 있다고 한다. 요트를 타면서 다음 휴가지가 어디가 될지 기대된다. 속초? 목포? 완도?
글: Edi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