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상주 리본을 달고 있었다

by 요가언니


딸만 있는 집의 장례식장은 슬프다. 장례식장은 원래 슬픈 곳이지만 어제 다녀온 친한 동생 아버지의 장례식장은 더 그랬다. 두 딸은 20대, 아직 사회에 나오기도 전이다. 25살짜리 우리 모임의 막내가 상주 리본을 달고 서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들어와 흰 국화를 집어 들자 울음을 터뜨려 절이 끝나고 그녀를 꼭 안아줄 때까지 그치지 못했다. 하루 종일 조문객들을 맞이하다가 아는 얼굴을 보니 서러움이 북받쳤던 걸까.


재작년 나의 외할머니 장례식이 떠올랐다. 딸만 셋인 집의 상주는 맏사위인 우리 아버지였다. 세 딸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사위가 상주를 한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아버지, 이모부, 남동생, 사촌 남동생들이 서 있으니 듬직했다. 여자들은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손녀인 나는 아예 존재감이 없었다.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계시는 국립 현충원으로 들어가셨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세 딸은 출가외인으로 각자의 시댁 묫자리로 가면 되니 두 분만 이곳에 편히 계시면 된다고 사람들이 말했다.


그 해 추석 즈음에는 친가 쪽 묫자리를 정비했다. 나는 이 씨 집안의 딸이니,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내 남동생도, 작은 사촌오빠도, 종손인 큰 사촌오빠도 오지 않았지만 나는 갔다. 오랜만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뵙고 싶었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묫자리를 정리해서 비석을 세우고 아버지대 형제들의 자리와, 그 자녀세대들의 3대의 묫자리를 마련하는 구역 정비 작업을 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를 기준으로 그 아래 줄에 큰아버지들과 아버지 자리가 있고, 그 아래 줄에 내 남동생과 사촌오빠들 자리가 있다. 남동생 자리에는 몇달 전 결혼한 남동생 아내가 함께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내 자리는 없었다. 여기는 내가 어려서부터 매년 오던 곳이고, 나는 여기를 잘 아는데, 그러니까 화장실에 가려면 면사무소나 주유소를 이용해야 한다던가, 가장 가까운 구멍가게를 가려면 이 나무 샛길로 걸어 나와 지름길을 이용한다던가, 이 언덕을 넘어가면 군부대가 나온다는, 뭐 그런 것들을 술술 꿰고 있는 곳인데, 나는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 집안은 딸들도 똑같은 자식이니까, 너도 여기로 돌아오면 돼.”

큰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얼마 전에는 동갑내기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주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친구라 부고를 듣자마자 ‘이 세상에서 부모님이 모두 사라져 버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고아가 된다’는 말을 책에서 읽었을 땐 멋있다고 생각했으나, 그런 일을 눈앞에서 보자 막막했다. 아니 먹먹했다.


어제 밤 상갓집 조문이 불러온 죽음에 관한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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