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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Jul 20. 2023

한국대표 선발전에 나갔습니다

2023 아시안컵 보령국제요트대회 예선전


금요일 아침, 비를 뚫고 보령요트경기장에 도착했으나, 강풍과 폭우로 예정되었던 요트 세팅은 못하고 기약 없는 대기 중이었다. 2023 아시안컵 보령 국제요트대회 한국대표 선발전을 위해서다.


눕혀져있는 검정색 마스트를 이제부터 세워야해요.

비가 잦아든 틈을 타 밖으로 나와 9m에 달하는 마스트를 들어올리자 바람에 휘청인다. 이번 대회의 요트 J70은 2012년 처음 등장한 최신 요트 모델로 헐은 유리섬유로, 마스트는 카본으로 만들어져 있다. 카본 마스트의 장점은 가벼운 무게인데, 크레인 없이 사람의 힘으로 들 수 있을 정도다.  


아무리 가볍다 해도 여자 5명이 마스트를 세워서 요트에 꼽는 것은 무리였던 것 같다. 심지어 강풍까지 불고 있으니. 분명 시작은 우리끼리 했는데, 불안 불안하게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팀 선수들과 운영진이 하나 둘 달려와 결국 10명 정도가 우리 요트에 와서 함께 마스트를 세우는 것을 도와주셨다.


마스트 세우기

대회 첫날.

아침을 든든히 먹고 스키퍼 미팅장에 모였으나 그치지 않는 폭우로 경기는 연기되었다. 보령까지 온 김에 대천 해수욕장 앞 스타벅스로 이동해 한가로이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매주 모여 훈련하느라 바쁜 우리 팀에게 이렇게 여유롭게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다.


“아시다시피 오늘은 경기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오늘 푹 쉬시고 내일 아침 일찍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점심시간을 지나 2시에 다시 모이니, 경기운영위원장께서 공지하신다. 모두 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며 수긍했다. 기상상황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인간은 절대로 자연을 이길 수 없으니까. 그 누구도 위험한 상황에서 무리해서 요트를 탈 생각이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된다.


유일하게 아쉬운 사람은 우리 팀 O 언니.

O 언니는 개인 일정 상 이틀 대회 중 하루만 참석하기로 하고 보령에 왔다. 일반적으로 요트대회는 첫날 최대한 많은 수의 경기를 하고, 둘째 날 경기를 안 하거나 최소한으로 한다. 시상식도 해야 하고, 운송을 위해 요트 해체작업도 해야 하니까. 경기장에 와서 하염없이 대기만 하다가 결국 폭우를 뚫고 서울로 올라가야만 했다.


대회가 연기되었으니 맛있는거 먹으러

이제 남은 팀원은 4명.

J70대회의 선수 정원은 원래 4명인데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팀에 한해 힘과 체중 등을 고려하여 5명까지 허용해 주었던 터라 이제 다른 팀과 동일한 조건이 된 셈이었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 4명은 지난 3년 간 여러 번 합을 맞춰왔기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 내가 가장 늦게 들어온 멤버이니 나만 잘하면 될 뿐. 그래도 나는 출석률과 성실성 면에서 1위니까, 우리 팀이 나갔던 모든 대회는 지난 3년간 다 출전했으니까, 잘할 수 있을 거야!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내일은 새벽 5시 반까지 집합해 준비를 하시고, 6시부터 차례로 요트를 바다에 띄우겠습니다. 첫 경기 예고신호는 7시 55분입니다. NOR에 명시되어 있는 마지막 경기예고신호 18시까지, 최대한 7경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경기운영위원장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5시 반 집합이면, 숙소에서 5시에 출발해야 하고. 그러면 4시 반에 일어나야 하는데... 9시부터 자야겠네.”


흐렸지만 비는 잠잠해졌던 둘째 날

대회 둘째 날 일요일.

정말로 4시 반에 일어났고 5시에 숙소에서 출발해서 6시에 바다에 들어갔다. 경기수역까지 이동해서 한 차례 세일링까지 마쳤을 때다.

 

“이제 다 됐다. 우리 요트 문제없는 것 확인했으니 됐고. 지금 몇 시야?”

“6시 반이요.”

“몇 시라고?”

“6시 반!”

“내 요트 인생에 연습까지 다 했는데 6시 반인 적은 처음이네.”


이미 멀미로 한바탕 공복토까지 마쳤는데도 새벽 6시 반. 잠자리가 바뀌어 제대로 잠을 못 잔 C는 새벽 6시부터 멀미를 시작했다.


한 방을 쓴 나도 함께 잠을 설쳤다. 수면이 충분하지 못하면 컨디션이 떨어지는 나는 ‘망했다‘ 싶었다. 컨디션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팀에 피해를 주면 안 되는데 어쩌지. 부족한 에너지를 열량으로라도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뜨자마자 새벽부터 냉장고를 열어 자두를 한 알 입에 넣었다. 드립커피를 내려 카페인으로 정신도 깨웠다. 요트를 타자마자는 초콜릿바를 까서 입에 욱여넣었고 얼마 후 경기 운영정에서 아침으로 나눠준 샌드위치를 뚝딱 해치웠다. 열심히 먹을 것을 찾아 넣고 있는 나를 다른 멤버들은 신기하게 쳐다봤지만, 내 몸을 챙기고 내 컨디션을 최상으로 올리는 게 팀을 위한 길이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구나 나는 트리머로서 힘을 쓰는 포지션이니까. 점심으로 나눠준 김밥도 한 줄 뚝딱.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경기가 끝나면 나는, 아니 우리는 꾸벅꾸벅 졸거나 탈진을 해서 쓰러져 깜빡 잠들었다. 다음 경기까지 그 짧은 시간에 10분간의 숙면.  


대기 중에는 먹거나 자거나

6시부터 해상에 나와 있던 우리는 진짜로 7경기를 했다. 4경기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는 3경기를 더했다. 그랬는데도 오후 3시가 넘었을 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마어마한 강풍이라던 예보가 틀려 요트를 타기에 적당한 4~9m/s의 바람이 불어와 줬다는 것이다. 대회 첫째 날인 토요일만 해도 9~15m/s 의 바람이 불었다. 아무래도 체중이 적게 나가는 우리 팀은 바람이 세면 요트를 컨트롤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5, 6번째 경기 때는 식곤증이 몰려와 괴로웠다. 졸음운전만큼이나 무서운 졸음항해.


“언니, 혹시 조는 거 아니죠?”

“어, 나 멍하니 텔테일만 보면서 가고 있어.”


잠이 쏟아져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피트맨과 바우맨 포지션의 다른 멤버들 눈꺼풀도 한없이 무거워 보인다. 꿈뻑꿈뻑. 눈꺼풀이 올라가 있는 시간보다 내려가 있는 시간이 더 길다.



“어차피 한국대회 대표 세 팀은 확정되었는데.....”

마지막 경기를 포기하고 들어가면 안 되냐고 팀 막내가 돌려 물었다.

“마지막 코스는 짧게 잡겠지.”

스키퍼 언니 역시 돌려 대답했다.


드디어 마지막 7번째 경기.


“어? 우리 앞에 두 대 밖에 없는데? 우리 3위로 피니쉬 했나 봐?”

“설마~ 경기 벌써 마치고 다 들어간 것 아니야?”

“아니야, 우리 뒤에 배가 진짜 많아.”


우리는 7번째 경기에서 3위를 했다. 아니, 진작 했어야 하는 3위를 마지막 경기에서야 비로소 했다.


본 대회가 한국대표팀 선발전이어서였을까? 대표팀으로 선발 되는 것이 중요한 엘리트 선수들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스키퍼 언니는 공격적으로 스타트를 끊었던 평소와는 달리 소극적인 태도로 경기에 임하는 것 같았다. 내가 평소와 다르다고 인식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스타트를 1진이 아닌 2진 쪽에서 하니 순위가 하위권에 머물렀다. 11팀 중에 10위를 한 경기도 있었다. 이건 절대로 우리 팀의 실력이 아니다.


7번째 경기를 시작하며 팀원 모두가 입을 모아 공격적인 스타트를 주문했다. 그리고 우리의 전략이 통했던 것이다.



하루 안에 끝났지만 사실은 이틀이었던 대회 일정을 마치고 3팀의 한국대표팀이 선발되었다. 이들은 다음 주에 있을 본선에 진출하며 10여 국의 해외 팀과 함께 경기를 펼친다. 보령머드축제와 더불어 진행된다니 다음 주에 이곳은 축제의 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 팀 성적은 7위. 우리는 모두 환호했다. 왜냐하면 11팀 중 엘리트 선수로 이루어진 팀이 6팀, 동호인 팀이 5팀이라 7위는 동호인 중 1위라는 뜻이니까.


“이 팀 트리머가 누구에요?”

“여기 이 언니요.”

“제네커 트리밍이 아주 훌륭해요. 너무 좋아요.”

“아...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대회가 마무리되고 단체사진을 찍을 때 다른 팀에서 칭찬을 해주셨다. 아침부터 잘 먹고 힘을 낸 보람이 있다.


새벽에 배를 내리며 나갈 때만 해도 부슬부슬 비가 내리더니,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니 해가 쨍했다.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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