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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Oct 13. 2023

뉴욕에서 생일파티

어퍼이스트사이드


뉴욕 맨해튼 어퍼이스트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생일파티를 하는 날이 오다니. 심지어 남자친구와 함께. 정말 로맨틱하지 않은가.


어퍼이스트는 서울의 청담동 같은 곳이니, 그곳의 레스토랑이라면 장조지나 일레븐 매디슨파크 같은 미슐랭 레스토랑인가? 싶겠지만 내가 선택한 곳은 아주 작고 허름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Sandro’s였다. 1985년에 오픈한 이곳은 팬시한 인테리어도 인스타그래머블한 플레이팅의 음식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USA Today 미국 10대 레스토랑에 선정되었던 나름 역사가 깊은 곳이다.  


레스토랑에서 준비해준 소박한 생일 이벤트

우리는 샐러드와 송아지 스테이크, 그리고 라구파스타를 주문했다. 제대로 된 라구 소스를 집에서 만들어보겠다고 소고기, 돼지고기를 갈고, 양파, 당근, 토마토, 치즈, 각종 향신료를 사서 곰탕보다 더 오랜 시간 끓이는 수고를 한 이후로 (더 이상은 집에서 만들지 않는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면 꼭 라구 소스 메뉴를 시킨다. 내 나름 셰프의 음식에 대한 진심을 확인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송아지 스테이크가 맛있다, 라구 소스가 제대로다 대화를 하던 우리는 동시에 말을 멈췄다. 엄청나게 강한 트러플 향에 마비되었다는 말이 맞겠다. 갑작스러운 트러플 향의 세례를 받자마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우리는 옆자리 커플이 각각 주문한 두 접시의 트러플 파스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플레이트가 블랙트러플로 완전히 덮여있는 것이, 트러플 한 개가 통째로 슬라이스 되어 올라가 있었다.


“트러플 파스타를 메뉴에서 왜 못 봤지?”


우리는 이번에도 동시에 말하고, 웃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차피 물가는 비싸고 팁은 줘야 하고 음식 양은 절대적으로 많은 미국에서는 트러플 파스타를 주문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미국에서 갈비탕을 먹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다. 미국 한식당에서 갈비탕을 주문하면 우리나라 특특특대 사이즈의 보울에 국물반 고기반의 갈비탕을 가져다준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나 혼자 일주일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막 찍어도 작품이 나오는 센트럴파크

어퍼이스트사이드에 묵는 동안은 이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번 뉴욕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미술관이었는데, 그 미술관들이 전부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있었기 때문이다. 구겐하임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노이에 갤러리를 매일같이 걸어 다녔고, 미술관을 다 보면 센트럴파크에 들어가서 쉬었다. 그렇게 며칠 지내니 왜 이곳이 부촌인지 알 것 같았다. 미술관과 공원을 가졌으면 다 가진 것 아닌가?


맨해튼 야경과 가십걸의 주인공들. 고등학생임.


2010년대 초반 가십걸을 보면서 자랐다. 그때도 이미 성인이긴 했으나, 발칙한 미국의 고등학생들을 보며 연애를, 파티를, 그리고 패션을 배웠다. 가십걸의 주인공들, 뉴욕의 상류층이 사는 동네가 바로 어퍼이스트 사이드이다. 그러니 뉴욕을 가는 내가 어퍼이스트에 숙소를 잡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세레나나 블레어가 살던 집 근처의 5성급 호텔은 못 가고 변두리 어퍼이스트에 묵어야 했지만, 어퍼이스트는 어퍼이스트니까!  


어퍼이스트는 넓고 한적했다. 산책나온 강아지와 견주가 종종 보일 뿐.


어퍼이스트사이드는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 같은 다운타운과는 전혀 달랐다. 도로는 넓직했고 동네는 무척 조용했다. 아침 7시쯤 베이글 가게에 가면 막 아침운동을 마친 동네 주민들이 강아지와 함께 베이글을 사러 왔다. 맨해튼에서 지내는 열흘 남짓 기간 동안 산책하는 강아지를 가장 많이 본 곳은 어퍼이스트사이드였다.  



뉴욕 여행 중에 가장 맛있었던 아이스크림 가게도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있었다. 처음에는 매장 앞에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쳐다보게 되었고, 인테리어가 눈에 띄게 예뻐서 들어갔는데, 엄청나게 맛있는 곳이었다. Anita La Mamma del Gelato라는 이름만 봐도 이탈리아 정통 아이스크림 가게 티가 났다. 너무 맛있어서 다운타운에 묵는 동안 또 가보고자 찾아봤는데 뉴욕에는 이곳 한 군데에만 있었고, LA, 마이애미와 호주, 영국 등에 체인이 있었다.


아니따 젤라또 강아지 물 마시는 곳


조금 더 대중적이고 체인이 많은 곳으로 Van Leeuwen의 아이스크림도 훌륭했다. 맨해튼 내에도 많은 매장이 있고 (어퍼이스트 사이드에도 있다) 캘리포니아, 텍사스, 워싱턴 등 미국 전역에 있는 체인이다. 비건 아이스크림 메뉴가 따로 있다는 점이 특이했는데, 우유나 크림 대신 오트밀크나 캐슈너트밀크, 코코넛 크림과 카놀라유 등으로 만드는 아이스크림이다. 나는 하루, 한 끼가 소중한 여행자였기에 비건 아이스크림의 순서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더하이라인이 생기면서 허드슨강변이나 어퍼웨스트사이드에 신축 고층 고급 아파트가 들어와 신흥부촌이 되었다고 하지만, 만약 나에게 살고 싶은 곳을 고르라고 한다면, 난 주저 없이 어퍼이스트사이드를 고를 것이다. 그것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바로 앞으로. 미술관과 센트럴파크를 내 집 안마당으로 두고 싶으니까.


Battery Park 에 위치한 팬트하우스 테라스에서 허드슨강 선셋뷰. 오느 동네이건 팬트하우스는 멋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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