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에 갤러리
남자친구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다 가도 된다고 말했지만 일주일 내내 미술관만 가자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코스가 뉴욕을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답게 모마, 구겐하임, 메트로폴리탄 세 곳이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뉴뮤지엄, 디아비컨, PS1을 몰라서 여행 스케줄에 넣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일주일만 더 뉴욕이 허락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도저히 마음을 거둘 수 없는 곳이 하나 있었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이 있는 곳, 노이에 갤러리. 심지어 리노베이션을 하기 위해 2023년 여름시즌 세 달간 문을 닫았다가 9월 1일에 재개관을 했다고 한다. 바로 우리가 뉴욕에 도착하는 그날이다. 이 정도면 운명 아닌가? 심지어 재개관 기념으로 한 달간 입장료가 $25에서 $10로 할인된다고?
재개관전은 AUSTRIAN MASTERWORKS FROM THE NEUE GALERIE라는 특별전으로 1890-1940 시기의 미술을 선보였다.
19세기말 유럽의 중심지는 오스트리아, 그중에서도 수도인 빈이었다. 정신분석학 분야의 프로이트, 음악 분야의 쇤베르크, 미술 분야의 클림트가 그 전성기를 이끈다. 하지만 그 전성기가 나치 점령에 의해 오래가지 못했다는 사실은 영화 <우먼 인 골드>를 보고 알았다. 영화의 제목이자 한동안 <Woman in Gold>라 불렸던 이 작품의 그녀는 도대체 누구일까?
한 오스트리아의 재력가는 당대 최고의 화가 클림트에게 아내의 초상화를 주문했다. 금과 은장식이 당시의 화려한 빈의 모습과 그들의 부를 과시라도 하는 듯하다. 이 작품의 원제는 <아델 블로우 바우허의 초상>으로 이곳 노이에 갤러리의 대표작이다. 아델이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져서일까, 그녀가 클림트의 연인이었다는 설도 있으나 진실은 알 수 없다.
<Woman in Gold> vs <아델 블로우 바우허의 초상>
여러 점의 클림트 작품과 스트라디바리의 첼로, 홀바인의 그림, 크리스털이 박힌 와인잔, 그리고 초상화 속 아델 바우허의 목에 걸려있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진귀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은 20세기 초 모두 그녀의 집에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쳐들어온 나치는 그 가치를 알아보고 모든 것을 몰수해 갔다.
전쟁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 벨데비어 미술관으로 넘어온 이 작품에, 그러니까 몰수한 작품에 차마 ‘아델 블로우 바우허’라는 원 주인의 이름을 붙일 수 없기에 <Woman in Gold>라는 모호한 제목이 붙게 된다. 그리고는 곧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대표작이 되었다.
나치 시기 목숨을 부지해 캘리포니아에 정착,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던 아델의 조카 마리아는 초상화 속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물려받았던 장본인이다. 그녀는 2004년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예술품 환수 소송을 제기하였고, 아델의 집에 걸려있던 클림트 작품 5점을 돌려받았다.
그렇다면 이 그림이 어떻게 뉴욕에 오게 된 것일까?
대중에게 공개해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 달라는 마리아의 조건을 받아들인 로널드 로더는 무려 1300억을 주고 이 그림을 구입한다. 그렇다. 노이에 갤러리는 에스티 로더 창업자의 아들로 현재 에스티로더 사의 회장인 로널드 로더가 전시기획자 서지 사바스키와 함께 설립한 19~20세기 독일, 오스트리아 미술 전문 갤러리이다.
요즘 많은 미술관이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사진을 찍는 것에 너그러운 것에 반해 노이에 갤러리는 그렇지 않았다. 사진에 대해 굉장히 엄격했고, 특히나 <아델 블로우 바우허의 초상>만 전담으로 지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20년 전에 1300억을 주고 구입했다고 하니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클림트와 실레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것 역시 영화에서였다. 당시의 나는 한창 존 말코비치라는 배우에 푹 빠져 그가 나오는 영화를 섭렵하고 있었고, 클림트의 예술이 아니라 존 말코비치가 좋아서 <클림트>라는 영화를 봤다. 그래서 내게 클림트는 배우 존 말코비치처럼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퇴폐적인 느낌으로 말하는 예술가이다.
에곤 실레는 클림트를 통해 알게 되었고, 역시나 영화 <에곤 실레>를 통해 배웠다. 오스트리아 배우 노아 자베드라가 에곤실레를 연기했는데, 결핍이 가득할 것만 같은 존 말코비치와는 다르게 대리석 조각상처럼 완벽한 외모 덕에, 에곤실레라는 미술가를, 나아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다. 실레는 28살에 요절하였기에 예술가로 작업한 시기는 10여 년 밖에 안 되지만 천여 점의 회화와 2천여 점의 데생을 남겼다. 그중에서 자화상이 100여 점이다. 그의 작품은 생전에 퇴폐 미술로 낙인찍혔지만, 후대에는 근본적인 인간의 실존, 그러니까 삶과 죽음의 문제에 접근한 작가로 평가받게 된다.
그 밖에도 이곳에는 오스카 코코슈카, 파울 클레, 바실리 칸딘스키, 에른스트 키르히너의 수준 높은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기는 하나, 내가 방문했던 리노베이션 직후에는 안타깝게도 전관이 공개되지는 않았다.
기대보다 짧았던 관람이었지만 카페 사바스키 덕에 아쉽지 않았다. 설립자 사바스키의 이름을 따 화려했던 전성기의 20세기 풍 실내장식으로 꾸며놓은, 갤러리 1층에 위치한 카페이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에, 마치 유럽의 귀족이라도 된 듯한, 혹은 그 시대의 예술가나 컬렉터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노이에 갤러리의 작품들은 블룸버그사에서 제공한 Connects라는 앱에서 무료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노이에 갤러리뿐 아니라 MoMa, The Met, Guggenheim 등등도 마찬가지다. 블룸버그 재단은 전 세계 250여 개의 뮤지엄, 갤러리 등 예술과 관련된 모든 곳의 수준 높은 해설을 무료로 제공한다. 카페 사바스키에 앉아서 블룸버그 재단의 예술에 대한 후원,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향유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도 저런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