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따지자면 나는 크루아상파이다. 화려한 모양으로 부풀어 올라서는 예민한 겉껍질을 뽐내며 ‘나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빵이야.’라고 말하는 듯 한 고고함과 패스츄리 사이에 층층이 들어간 질 좋은 버터의 풍미.
반면 남자 친구는 베이글파이다. 순수하게 밀가루, 이스트, 소금과 물로만 만든 반죽을 심지어 물에 대처 낸 후 굽는 담백함의 대명사인 유대인의 빵. (요즘은 버터도 넣고 꿀도 넣는 것 같긴 하지만) 베이글은 생긴 것도 소박하다. 동그라미 가운데 구멍만 뻥 뚫어 무심하게 일렬로 걸려있는 베이글을 보라. 정말 크루아상과는 정반대의 맛과 모양을 하고 있다.
평소 우리가 베이글 가게에 가는 건 일요일 아침시간이었고, 나는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니까 자주 가는 곳은 이태원의 로컬빌라 베이글이거나 압구정의 뉴욕라츠오 베이글스였다. 이 두 곳은 아침 일찍 문을 연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웨이팅이 길어도 너무 길어 자주 갈 수 있는 곳이 못 되었다. 세 곳 모두 베이글을 좋아하는 내 친구가 추천하는 맛 집이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뉴욕에 도착한 이후 우리의 아침은 쭉 베이글이었다. 뉴욕에서 베이글로 유명한 집을 꼽으라면 Ess a Bagel, H&H Bagel 등이 있지만 우리는 철저히 호텔에서 가까운 가게로 갔다. 어퍼이스트 사이드에 머무는 동안은 그곳 주민이 된 기분을 내보고자 Bagel Shop이라는 3rd Ave에 위치한 작은 동네 가게로 갔고, 센트럴파크 바로 아래, 콜럼버스 서클 근처에 묵는 동안은 Broad Nosh Bagels라는 동네 가게에 다녔다. (이 두 곳은 우리가 먹어본 베이글 중에 최고만을 뽑은 곳이니 혹시 뉴욕에 가신다면 자신 있게 추천합니다!) 처음에는 연어와 크림치즈가 듬뿍 든 Lux나 햄, 치즈, 에그가 들어간 베이글을 주문하다가 나중에는 베이직으로 돌아와 각자 좋아하는 크림치즈만 발라서 소박하게 먹었다. (그러나 뉴욕의 물가는 소박하지 않았다는 사실.)
며칠 후에는 다이너에 푹 빠졌다. 내가 아는 다이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밤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전형적인 미국의 식당이다. 다이너에서 우리는 아메리칸 브랙퍼스트라고 부르는 팬케익, 와플, 토스트에 베이컨, 계란요리, 감자요리 등을 먹었다. 우리가 자주 가는 이태원의 오리지널 팬케이크하우스가 딱 미국의 다이너라면서 말이다.
뉴욕을 여행하는 동안 세계 각국의 이국적인 요리를 맛보던 점심 식사도, 와인 한잔을 곁들여 스테이크를 먹던 저녁식사도 좋았지만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이미 문을 활짝 열고 우리를 맞이하는 베이글집이나 다이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시차적응에 실패한 우리를 실패자가 아닌 아침운동을 마치고 식사를 하러 들어온 부지런한 사람으로 맞아주는 것 같았다. 어떤 날은 너무 일찍 일어나서 아침에 센트럴 파크를 한 시간쯤 걷다가 다이너에 들어간 적도 있으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