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해외이동봉사
뉴욕에 가기로 결정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캐나다 체크인’이었다. 강아지 해외이동봉사라는걸 대중에게 알린 이효리의 프로그램 말이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 나도 드디어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고, 그것도 강아지들이 가장 많이 입양을 가는 국가인 미국행 비행기표를 구매했으니 이 기회를 활용하고 싶었다.
“내가 강아지 해외이동봉사를 해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함께 여행을 가는 친구에게 입을 뗀 것은 그런 생각을 품고도 몇 달이 지나서였다. 출국을 겨우 3주 정도 남겨놨을 때의 일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친구가 싫다고 거절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고민하느라였으나, 실은 내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두려웠다. 미국은 입국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괜히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갔다가 입국 거부가 되면 어쩌지? 그럼 예약해 놓은 호텔이랑 내 일정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굳이 리스크를 짊어지고 갈 필요는 없지 않나?
“오, 그거 너무 좋지. 강아지들 해외입양 가는 거 말하는 거지? 나도 전에 유튜브에서 봤어.”
그의 흔쾌한 대답에 괜히 나 혼자 몇 달이나 고민했구나 싶었다. 우리는 함께 유튜브에서 해외이동봉사에 대해 찾아봤다. 가수 이효리가 했던 것뿐 아니라 배우 유연석이 강아지들을 데리고 간 것도 있었다. 정말 간단했다. 진작 그에게 물어보고 함께 찾아봤으면 이런 마음고생은 안 해도 됐을 텐데......
시간이 3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인스타그램에서 ‘해외이동봉사’ 해시태그로 검색을 하니 여러 계정이 나왔다. 카라, 케어 같은 큰 동물보호단체뿐 아니라 개인 계정으로 된 것도 여럿 있었다. 인스타그램 DM을 보내거나 구글폼에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해서 한 군데 넣어봤다. 그때가 일요일 밤이었으니 다음날 아침이면 연락이 올 줄 알았다.
월요일이 되었는데 아무 연락이 없자 조급해진 나는, 다른 해외이동봉사 단체 서너 군데에 신청을 하기 시작했다. 기관에 따라 달랐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자세한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이를테면 내 출국 편명과 이름, 여권번호 같은 것들. 워낙에 걱정과 의심이 많은 나로서는 반감이 들기 시작했다.
‘내 개인정보 도용하는 것 아닐까?’
화요일이 되자 동물행동권 카라의 한 활동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에 두 명이 함께 출국하는데 두 명 같이 신청할 수 있나요?”
“제가 항공사에 아침에 문의했을 때 출국 예정이신 비행 편에 반려동물 탑승 가능자리가 두 자리 밖에 안 남아서, 이번에는 한 분만 진행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강아지가 담긴 켄넬이 실릴 수 있는 자리가 사람들이 앉는 좌석처럼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한 명당 두 마리의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 있다고 해서 나와 내 친구가 총 네 마리를 데려갈 생각에 들떠있었는데...... 나의 우물쭈물함이 강아지들의 새로운 가정을 찾을 기회를 빼앗아버린 것 같아서 가슴이 쓰렸다.
안내받은 대로 채팅방은 출국 하루 전날 열렸다. 나와 처음부터 연락을 주고받은 카라의 활동가, 미국의 동물구조협회인 KK9의 활동가, 그리고 내일 강아지를 데려다 주실 훈련사 선생님이 채팅방에 모였다.
“프리는 강릉보호소에서. 한승이는 홍성보호소에서 구조되어 온 아이입니다.”
두 장의 사진이 채팅방에 올라왔다. 내 항공 티켓에 풍산개라고 예약되어 있을 때 나는 굉장히 늠름하고 큰 아이들을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딱 봐도 작고 삐쩍 마른 진도믹스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버려지는 진도믹스.
프리와 한승이가 어떻게 구조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걸 묻는 대신에 새 입양처가 정해졌는지, 그곳이 맨해튼인지 뉴저지인지, 그러면 새 입양가족이 공항으로 나오는지 그런 것들을 물었다.
프리와 한승이는 뉴욕에 도착하면 임보처에서 지내면서 입양준비를 시작한다고 했다. KK9이란 단체는 미국 내에 있는 아이들만 입양 신청을 받을 수 있어서 한국에 있는 아이들의 미국 입양을 직접 진행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임보처에 입양된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평소 출국 수속하시는 시간에 약 20여분 정도 더 시간이 걸릴 수 있어요. 그 시간 감안하셔서 공항 도착시간 편하게 정하셔서 알려 주시면 맞춰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6시 반에 만나도 괜찮을까요? 저희가 면세점과 라운지를 이용할 계획이어서요.”
아침 6시 반은 나에게도 이른 시간이라 강아지들을 데리고 나오시는 훈련사 선생님께 미안했지만, 처음 해보는 이동봉사라 불안한 나는 일찍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다. 설명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수속이 잘못되거나 해서 우리의 여행이 지장을 받으면 안 되니 말이다.
6시 반이 되기도 전에 켄넬 두 개를 실은 카트를 끈 선한 얼굴의 훈련사 선생님이 나타났다.
전날 미리 사진으로 받았던 것보다 더 예쁘게 생긴 천사들이 캔넬 속에 있었다. 덩치는 우리 슈렉이보다 컸는데 몸무게가 8킬로 밖에 나가지 않는다니...... 유기견이었고 보호소에 있었으니 마음껏 먹지 못했던 걸까. 비행의 무게제한 때문에 살이 찌지 않도록 관리했을 수도 있겠지.
“아이들 아침에 밥은 먹고 출발했나요?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어제저녁 먹었습니다. 아침은 안 먹였고요. 혹시 비행 중에 구토를 해 음식물이 기도에 걸리면 아이들이 호흡곤란으로 죽을 수도 있어서요.”
“아, 그렇겠네요. 그렇지만 너무 오래 굶는데요.”
프리와 한승이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벌벌 떨고 있었다. 공항이 추워서 떠는 건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실려 와서 무서워서 떠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가느다란 몸뚱이를 켄넬이 흔들릴 정도로 떠는 것을 보는 것은 퍽 가슴이 시린 일이었다. 슈렉이가 병원에 갈 때마다 사시나무 떨 듯이 떠는 것이 오버랩되어 더 감정이입을 했던 것 같다.
공항에서 내가 할 일은 없었다. 체크인을 하고 내 캐리어를 부친 후, 강아지를 위탁 수화물로 보내는 것에 대한 추가비용 결제를 하러 다른 카운터에 한 번 더 들렀을 뿐이다. 그마저도 훈련사 선생님이 결제하는 동안 옆에 서 있기만 하면 됐다. 아이들은 그렇게 수화물 칸으로 보내졌다.
라운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이렇게 따뜻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강아지들은 어제저녁을 먹고 지금껏, 아니 미국에 도착하는 오늘 밤까지 24시간이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나는 비행기를 타자 기내식을 두 번, 간식을 한번, 그리고 컵라면까지 싹싹 먹어치웠다.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하자 강아지들이 담긴 켄넬들이 하나둘씩 들려 짐 찾는 곳에 놓였다. 한 케이지에서 우렁찬 짖음이 들렸다. 주인이 다가가자 신경질적이면서도 앙칼진 짖음이 들렸다.
“엄마, 빨리 꺼내줘요. 나를 왜 여기 가둔 거예요? 힘들단 말이에요.”
주인은 켄넬 안으로 손을 넣으며 조금만 참으라고 강아지를 달랬다.
반면 프리와 한승이가 담긴 켄넬은 조용했다. 잔뜩 겁에 질린 그들은 끽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아니 내지 못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어리광을 부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낯선 곳에 버려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안쓰러움에 심장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프리의 켄넬을 보니 물통의 물이 하나도 줄지 않았다. 14시간, 아니 대기시간까지 포함해서 17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나 보다. 다만 프리는 배가 고픈지 케이지에 달려있는 빈 밥그릇을 하염없이 핥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간식이라도 챙겨 올걸...... 나는 강아지를 10년 넘게 키웠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
한승이의 켄넬에서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깔려있는 배변패드는 전체가 노랗게 물들어 축축해져 있었고, 한 구석에는 이게 저 작은 몸에서 나온게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의 똥이 있었다. 공항 전체에 냄새가 퍼질 정도이니 그 캔넬 안에 들어있는 한승이는 얼마나 불편하고 답답했을까. 그래도 낑낑거림 한마디 없었다. 그냥 그렁그렁한 눈으로 사방을 살필 뿐이었다.
내 캐리어를 찾자마자 포터를 불러서 아이들을 세관으로 옮겨달라고 했다. 입양단체에서는 포터에게 줄 팁까지 달러로 준비해 주셨다. 내가 할 일은 미국 세관에게 훈련사 선생님이 주신 파일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미국농림부에서 받은 허가증과 뉴욕 세관에 미리 신고하고 받은 서류들이다.
공항을 나와 프리와 한승이를 태우러 온 KK9의 직원을 만나 아이들을 전달했다. 그분은 캔넬 좌우를 안정적으로 잡고 들어서 차 뒷좌석에 실었다. 한국과 미국의 공항에서는 캔넬 위의 손잡이를 번쩍 드는 바람에 강아지들이 중심을 못 잡고 한쪽으로 쏠렸었는데 미국 보호단체 직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차에 실려서 떠났고 나는 나의 여행을 떠났다.
프리야, 한승아, 영어 빨리 배워서 새 가족한테 사랑 많이 받아~ 미국 강아지들처럼 고기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렴! 행복하게 살아!
PS. 뉴욕에서 돌아와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KK9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봤다.
“Adopted”
한승이는 입양이 되었다. 내가 데려갔던 그 한승이가 맞나 싶어서, 공항에서 찍었던 사진과, 프로필로 받았던 사진과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을 몇 번이고 비교해 보고서야 한승이가 맞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 도착한 후 한승이는 양껏 먹을 수 있게 되었나 보다. 공항에서 쭈그리고 있을 때는 상상도 못 한 늠름한 자태와 밝은 표정에 안도했다.
반면 프리의 입양공고는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 준비가 안 되어서겠지? 적응하지 못하고 잘못된 건 아니겠지? 아니면 벌써 임보가정에 입양이 되었을 수도 있을 거야. 나는 이제 수시로 KK9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프리의 소식을 체크하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