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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Apr 22. 2024

남프랑스 어디까지 가봤니?

구흐동 Gourdon 과 발본느 Valbonne

알프스 눈이 녹으면 이 정도 물살이 되나봅니다.


“최근 알프스에 눈이 2미터가량 왔거든요. 봄이 되니 눈들이 녹고 있는 거예요.”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는데 돌연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가 차창을 뚫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빙하 녹은 물이 폭포 사운드를 만들어낸다는 이곳은 룹강 Loup River. (loup은 프랑스어로 늑대라는 뜻) 프랑스 사람들은 이곳에서 래프팅도 한다는데, 목숨을 걸고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력한 물살이다.  


우리는 현지인 가이드 안느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니스 근교의 작은 마을을 여행하고 있다. 모나코를 비롯하여 남프랑스 사람들은 모두가 카레이서. 삐끗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이 길에서 절대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카레이서 뺨치는 운전 실력의 안느는 60대입니다. 딸들이 이미 대학도 졸업했답니다.) 프랑스 레이서들이 그렇게 밟아도 한참을 구불구불 올라가야 하는 길을 도대체 2000년 전 로마인들은 어떻게 만들었으며, 또 어떻게 올라 다닌 것일까. (이 길을 로마인들이 만들었다고 안느가 설명해줬습니다.)



구흐동 Gourdon

웰컴투 구흐동/ 건물에 붙어 자라는 신기한 나무조차도 낭만적인 마을


구흐동은 프랑스어로 성 castle이라는 뜻이다. 안느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프리알프 Prealps 절벽 가장자리에 위치한 50 가구가 전부인 아주 작은 마을이란다. 잠깐, 알프스는 알겠는데 프리알프는 뭐지? 알프스산맥이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까지 걸쳐있는 거대한 산맥을 지칭한다면, 그중 프랑스 지역에 위치한 곳을 별도로 프렌치 알프스라 부른다. 프리알프는 프렌치 알프스 바로 서쪽에 위치한 긴 산맥이다. 아, 여기가 이렇게 높은 곳이니 내 귀가 먹먹할 수밖에.....


구흐동을 검색해 보면 트레일 러닝이나 하이킹, 사이클링 코스로 각광을 받는 여행지임을 알 수 있다. 험난한 산세를 즐기는 다이내믹한 사람들 같으니...... 등산하듯 프리알프를 올라 구흐동에 도착한다면, 어느 산 정상 부럽지 않은 장관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저는 걷지 않았습니다…차를 타고 이동......) 코트다쥐르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파노라마이다.


날씨가 흐려 너무 아쉽지만…. 산 정상뷰 느낌이 오죠?


반면, 마을 자체는 아기자기하다. 비누, 유리공예, 보석, 향수 등을 판매하는 작고 귀여운 부띠끄들과 소박한 성당을 둘러보며 한 바퀴 걷고 나면 그게 전부이다. 소박한 성빈센트 성당 Eglise Saint-Vincent de Gourdon 을 간단히 돌아보고 나면 바로 옆에는 La Taverne Provencale이라는 레스토랑이 있다. (테라스 파라솔에 가려서 성당이 잘 안보입니다….) 이곳 테라스에 앉으면 멋진 파노라마뷰를 즐기며 식사를 할 수 있다. 비 오는 날 방문한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남프랑스는 1년에 300일이 맑다고 하던데, 하필 오늘은 그 300일에 속하는 날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프랑스 여행 내내 먹었던 것 중 최고의 바게트를 먹었다. 갓 구워낸 뜨거운 바게트가 헝겊 바구니에 무심히 담겨 나오는데, 와, 이건 알아주는 빵순이인 내가 처음 먹어보는 클래스의 바게트이다. (바게트가 이정도이니 요리는 말할 필요 없겠죠?)


소박한 성빈센트 성당과 그 옆 레스토랑의 잊을 수 없는 수준급 바게트


구흐동의 경치는 압도적이었고 끊임없는 감탄사를 내뱉게 했지만, 사실 우리를 긴 시간 동안 붙잡아 놓은 곳은 구흐동 가는 길의 Pont du Loup에 위치한 플로리안 콩피세리 Confiseries Florian였다. 콩피세리는 제과점이라는 뜻이니까 플로리안 제과점쯤 되겠다. 니스, 구흐동, 그라스 등 남프랑스 지역에만 매장이 있는 제과점인데 지역 특산물, 그러니까 프로방스의 귤과 각종 꽃으로 과자를 만드는 곳이다. 확실히 쇼핑은 풍경보다 자극적이다.


(좌) 클레멘타인 콩피 (귤 시럽 절임)/ (우) 끝없이 펼쳐진 맛있는 것들


대표제품 중 하나인 클레멘타인 꽁피 Clémentines confites 는 한국에서 유행하는 탕후루와 비슷해 보이지만 생과일은 아니고 프로방스산 귤을 시럽에 절여서 귀여운 탁구공처럼  만든 것이다. 공장 견학을 마치고 나오니 큰 매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마음껏 시식을 하란다. 과일, 캔디, 초콜릿, 잼, 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맛보았는데, 어느 것 하나 훌륭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예전에는 여행을 하면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귀한 식품들을 사 오느라 수화물 무게를 초과하기 일쑤였는데, (의외로 옷이나 가방은 안 샀고 오로지 먹을 것들……) 이제는 한국에서 못 구하는 것이 거의 없기에 구매를 자제하는 편이다. 이고 지고 다니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하지만 이 크리스털 플라워는 데리고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설탕으로 코팅한 바이올렛, 장미, 버베나 잎인데, 드라이한 샴페인 한 잔에 꽃잎을 한 두 개 넣으면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면서 샴페인에 장미나 바이올렛, 버베나 향이 퍼진다고 한다. 아직 샴페인에는 넣어보지 않았는데 상상만 해도 아름답다. 시각적으로도, 후각적으로도, 미각적으로도.

 

(좌) 장미, 버베나, 바이올렛 크리스탈 플라워들/ (우) 초콜렛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 초콜렛 러버가 인정!



Valbonne 발본느

막 찍어도 예술인 아름다운 도시 발본느

구흐동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오면 발본느라는 도시가 있다.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계곡, beautiful valley라는 뜻이다. 안느는 스스럼없이 이곳을 16세기의 작은 도시라고 불렀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왜 이곳을 500년 전인 16세기의 도시라고 부르는 것일까?


철기시대부터 마을을 이루고 있던 이곳이 전성기를 맞은 것이 바로 16세기에 이르러서라고 한다. 대수도원장이었던 오귀스탱 그리말디가 수도원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구축하며 지금의 마을의 형태를 이루었고, 그 후로 수백 년이 흘렀지만 16세기의 매력을 여전히 간직한 곳이다.


우리가 서 있는 이곳 중앙 광장이 바로 발본느의 중심이고, 레스토랑이 모여 있다.


발본느의 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16세기의 매력을 지닌 올드빌리지와는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소피아 앙티폴리스 첨단기술센터 Sophia Antipolis 가 발본느에 있다. 1,000개 이상의 회사에 25,000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커뮤니티이다 보니, 그 면적이 방대하여 발본느뿐 아니라 주변의 비오, 앙티브, 무젱에 걸쳐있다. 그러니까 발본느의 북서쪽에 올드 빌리지가 있다면 동쪽으로는 첨단 테크 커뮤니티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안느는 이 단지 내에 위치한 소피아 앙티폴리스 대학이 프랑스의 수준 높은 공과대학 중 하나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랭킹은 잘 모르겠지만 매우 아름다운 원칙은 확실히 있었다. 건물을 나무 높이 이상으로 지을 수 없다는 것. 지나가며 쓱 둘러본 캠퍼스였지만 건물과 나무가 조화로워보이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발본 소피아 앙티폴리스 전경/출처: https://www.ville-valbonne.fr/


니스의 와이너리


돌아오는 길에는 니스에서 처음으로 AOC 등급을 받은 와이너리에 들렀다. (1941년) 아무래도 이곳 지형이 지형이다 보니, 차가 자꾸만 구불구불한 골목으로 올라갔다. ‘이곳에 와이너리가 있는 곳이 맞나? ’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만약에 가이드가 체구가 작은 할머니인 안느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무섭게 생긴 남자였다면 차에서 뛰어내려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 와이너리에서 유기농으로 재배되는 포도의 종류들/ 하지만 포도는 없고 가지만 보이는 포도나무들, 그리고 선인장!


와이너리 입구는 작은 가정집 같았지만 집 뒤쪽으로 들어가자 널따란 와이너리가 펼쳐졌다. 그렇다고 해서 보르도의 광활한 포도밭을 기대하면 실망감이 크지만…… 1980년에 심은 포도나무들로 3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가고 있고 철저하게 유기농으로 재배한다고 했다. 3월 중순, 막 봄이 되었을 때 방문한 터라 포도를 볼 수는 없었다. 포도는 8월 중순부터 9월까지 수확하니까. 심지어 날씨까지 흐려서 햇빛이 쨍한 포도밭의 모습은 사진에 담기지 않았다.


이곳은 1년에 2만병만 만드는 가내수공업의 현장/ 와이너리 주인 까린느


면적이 작고 패밀리 비즈니스로 운영하는 곳이라 연간 생산량은 2만 병 정도라고 했다. 오크통과 라벨링 하는 곳은 내가 그동안 견학했던 와이너리, 위스키 양조장, 맥주 부루어리들과는 확연히 사이즈가 달랐다. 귀여운 규모의 와이너리.


꼭 보르도가 아니더라도 프랑스의 와인은 지역별로, 포도 품종별로 매력이 있으니, 엄마 아빠 선물로 화이트 와인을 한 병 샀다. 5가지 와인을 시음해 보고 골랐는데, 내가 고른 와인이 2022년에 상을 받은 와인이라고 했다. 요즘 거의 와인을 마시지 않는데 아직 혀는 기억하나보다.



남프랑스의 소도시들


여행 시작 전에 마르시아 드 상티스의 <프랑스와 사랑에 빠지는 인문학 기행: 빛과 매혹의 남부> 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는 미국 ABC, CBS, NBC에서 뉴스 프로듀서로 일하다 여행작가로 변신하여 프랑스를 빠짐없이 여행한 사람이었는데, 프랑스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여행하고 생활하면서 모든 것을 기록해놓은 책이다. 워낙 글솜씨가 좋아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솔직히 '프랑스가 같은 프랑스지, 이렇게까지 도시마다의 매력을 극찬할 일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가이드북에도 나오지 않는, 그래서 관광객, 특히 한국 관광객이 없는 도시들을 여행하고 보니 왜 사람들이 남프랑스 남프랑스 하는지, 그리고 긴 휴가 기간 동안 차를 빌려서 이곳을 꼼꼼히 여행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미처 캐지 못한 금광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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