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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Apr 15. 2024

프랑스 다식원

남프랑스의 미식

아침 7시의 흔한 풍경. 가득 채워져있는 크로와상과 바게트를 보라

여행지의 숙소를 결정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주변의 빵집 검색이다. 영업시간을 체크하고 메뉴를 살펴본 후 사진을 훑어보고, 사진이 마음에 들면 도보로 몇 분 거리인지 동선까지 체크한다. 언제든지 눈을 뜨자마자 바로 찾아갈 수 있도록. 아침형 인간인 데다가 눈 뜨자마자 빵과 커피를 꼭 먹어야 하는 사람이다 보니(가끔은 내가 군인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루틴을 지키는 것에 자신있어서……) 갓 구워진 빵이 나오는 베이커리가 근처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서부터 시리얼과 우유, 혹은 식빵과 우유를 먹던 습관이 지금까지도 이어진다는 게 나도 신기하다. 우유가 카페라테를 거쳐 아메리카노로 바뀌었을 뿐.     


숙소에서의 우리의 아침식사는 대략 이런 모습

약 열흘간의 여행 동안 누구랄 것 없이 먼저 일어난 사람이 나가서 빵과 커피를 사 왔다. 우리는 프랑스에 왔으니까 크로와상, 팽오쇼콜라, 팽오아망드, 팽오레젱  같은 버터가 듬뿍 들어간 패스추리류를 꼭 하나 포함하고 잠봉뵈르 같은 바게트 샌드위치나 피스타치오 타르트 등 그때그때 맛있어 보이는 것을 골라왔다. 커피는 모두 카페크렘. 이탈리아식으로 카페라테라고 부르는, 커피에 우유를 섞은 것 말이다. 고등학교 불어시간에는 카페오레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메뉴에 카페오레는 보이지 않기에 가장 라테 같아 보이는 카페크렘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카페라테보다 약간 진해서 좋았다. 아메리카노는 카페 알롱제라고 말하면 된다.      


그냥 카페라고 말하면 에스프레소 같은 진한 커피가 나온다.

확실히 예전의 프랑스가 아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를 못한다거나, 혹은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프랑스 여행을 하려면 불어를 꼭 배워야 한다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옛날 생각만 하고 이번에 프랑스 음식에 관한 책까지 따로 읽으며 불어로 음식을 주문하는 연습을 해갔다. (일상대화 말고 식당 불어만…) 내가 또박또박 불어로 주문을 할 때마다 그들은 친절히 영어로 대답을 해줬다. 한국인은 불어로, 프랑스인은 영어로, 뭐 이런 상황. 그들이 아무리 영어를 알아들을지라도 나는 꿋꿋이 불어를 말하고 다녔다.      


봉주르 Bonjour
멕시부꾸 Merci Beaucoup
오흐부아 Au revoir     



“막상 시키면 또 다 먹게 되어있어.“


<텐트 밖은 유럽- 남프랑스 편> 배우들이 다식원에 입소한 듯 끊임없이 먹던데, 우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다식원장 라미란 배우 같은 언니가 있다. 미식과 와인에 관한 조예가 깊은 데다가 손도 크고 지갑도 잘 여는. 한 번은 메뉴 주문을 마친 후 직원에게

“우리 넷이 먹기에 좀 많이 시킨 것 같나요?”

라고 묻자 기다렸던 듯

“음, 내 생각에는 잠봉요리 하나는 빼도 괜찮을 것 같아요. 사실 좀 많아요.”

라는 대답을 들은 적도 있다.     


(좌) 꼬꼬뱅 (우) 가지그라탕

그래서 암묵적으로 동의한 주문 메뉴와 양은 4명이 앙트레 1개, 고기요리 1개, 생선요리 1개, 파스타 1개, 디저트 1~2개, 그리고 탄산수 1병과 와인을 나눠먹는 것이었다. 남프랑스에 왔기 때문에 신선한 해산물을 한 끼도 포기할 수 없었다. 프랑스식 가자미 구이, 송어구이, 그리고 해산물 스튜 같은 것들 말이다.      


푸아그라, 라따뚜이, 니스와즈 샐러드, 부야베스, 꼬꼬뱅 등 프랑스 요리를 열심히 먹었다. 니스와즈 샐러드는 이름 그대로 니스식 샐러드인데, 토마토, 오이, 올리브, 앤초비 등이 들어가는 것에 꼭 삶은 달걀이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나를 놀라게 했던 메뉴는 고트치즈 샐러드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살 수 있는 그 하얀 고트치즈가 썰어져 올라간 샐러드이려니 하고 주문을 했는데 세상에! 수프 보울에 차원이 다른 꼬리꼬리한 향을 풍기는 녹인 고트 치즈가 한 가득 담겨 나오는 것이 아닌가? 녹인 고트치즈를 처음 본 치즈 러버는 샐러드에도 뿌려먹고, 빵도 찍어먹고 숟가락으로도 열심히 퍼먹었다. 메인 메뉴들을 뒤로한 채.     


(좌) 니스와즈 샐러드. 삶은 계란이 포인트 (우) 맨 앞 보울에 담긴 것이 바로 녹은 고트치즈. 혼자 다 먹은 것 같음.

메뉴를 달라고 하면 옆 테이블 손님들이 보고 있던 칠판을 들고 올 때가 몇 번 있었다. 처음에는 ‘아니, 메뉴 좀 인쇄해서 준비해 놓지, 프랑스 사람들 참 게으르군?’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칠판 메뉴판이 일종의 비스트로의 자부심이었다.     


프랑스의 음식점을 나눠보자면 가장 고급으로 레스토랑 restaurant 이 있다. 흔히 말하는 미슐랭 같은 ‘미식’을 위해 찾는 곳 말이다. 한 번 식사를 하면 3~4시간 지속되는 그런 곳. 그다음이 비스트로 bistro인데 브레이크타임이 있고 점심, 저녁시간에만 영업을 한다고 한다. 제철 재료를 사용해서 가정식으로 만들어내기에 요리 종류가 많지 않고, 그때그때 신선한 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칠판에 적는 것이란다. 마지막이 브라세리 brasserie로 브레이크 타임 없이 항상 동일한 메뉴를 파는 곳, 더 정확히는 간단한 식사와 술을 파는 곳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내가 대학생 때 갔었던 ‘좋은’ 곳이라 생각했던 식당들은 비스트로였을 것 같다. 가격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브라세리가 좋은 식당이었다면 평소에는 뭘 먹었냐고? 대학생 배낭여행의 기본은 길거리에서 먹는 바게트 샌드위치, 혹은 바게트 그 자체이다.     

비스트로의 칠판 메뉴판과 그곳의 훌륭한 제철 요리들

열흘간 그렇게 잘 먹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첫 끼는 오모리 김치찌개 라면이었다. 그 후로도 일주일간은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오징어볶음 등 빨간 음식만 먹었다. 아직까지도 크로와상은 먹지 않는다. 적어도 1년 동안은 안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 최고급 크로와상을 하도 먹어서......               


지중해에 왔으니 문어샐러드와 해산물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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