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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Apr 29. 2024

샤넬을 위한 장미는 따로 있다

그라스 Grasse

돼지, 소 등의 지방 위에 꽃잎을 올려 향을 추출. 이 과정을 3~40차례 반복하여 포마드를 생산합니다.


“꽃을 펼쳐놓고 말리는 건가?”

“이 하얀 지방이 향을 흡수한대. 영화 <향수>에 보면 여자 몸에 이 기름을 덮어서 향을 채취하더라고.”


18년 전에 본 영화가 떠오르다니 그 영화가 인상 깊긴 했나 보다. 영화 <향수>(2006)의 주인공 그루누이는 후각이 유난히 예민한 사람으로 최고의 향을 만들어내기 위해 아름다운 여인들의 체취를 수집한다. 문제는 다음날이면 그 여인들이 시체로 발견된다는 사실. 결국 24번째 처녀가 살해된 후 덜미가 잡힌 그루누이는 살인혐의로 공개 처형장에 서게 되는데, 처형 직전, 자신이 만든 최고의 향수를 몸에 뿌린다. 그 순간 군중이 돌연 그에게 반하고 황홀경에 빠져 집단으로 사랑을 나눈다. 이 판타지 같은 장면이 괴이하면서도 이상하게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군중들이 향이 뭍은 손수건을 향해 열광 중 - 영화<향수> 중에서 -


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가 바로 ‘향수의 수도’ 그라스 Grasse이다. 2월에는 미모사, 4~5월은 장미, 6~7월은 라벤더가, 8~9월은 재스민, 9~10월은 튜베로이즈,  이렇게 1년 내내 꽃이 만발한 도시로, 50,000명 주민 중 무려 10,000명이 향수 관련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샤넬의 대표적 향수 샤넬 No.5에 들어가는 꽃이 그라스의 재스민과 장미라는 것은 유명하다. 샤넬로즈라 부르는 꽃이 있을 정도인데, 정식 명칭은 센티폴리아 로즈이다. 심지어 샤넬 향수를 위한 장미는 같은 장미 중에서도 일정한 향을 내는 꽃잎만을 채집해야 하므로, 전문가들이 하나하나 향을 맡으며 선별하여 딴다고 한다. 디올과 샤넬은 이곳 그라스에 향수를 위한 전용 농장을 보유하고 있다.


사진속의 분홍 꽃들이 그라스의 장미, 센티폴리아 로즈.

지중해의 태양과 풍부한 물, 325m의 분지가 꽃 재배에 적합하다는데 그래서인지 그라스의 꽃에 대한 자부심은 프랑스 와인 뺨친다. 와인을 이야기할 때 태양과 떼루와를 논하는 것처럼 이곳 그라스에서는 꽃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라스의 장미는 이집트나 모로코의 것과는 다르다고 말하는 근거가 여기에서 나오는 것 같다. 실제로 2018년 식물재배, 천연원료, 향수 기술로 그라스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향수의 도시 그라스에서 할 일은 향수 공장 견학, 향수 박물관 관람, 향수 쇼핑이다. 공부보다는 쇼핑이 재미있으니, 쇼핑 먼저. 그라스에 3대 향수 브랜드가 있는데 갈리마르, 프라고나르, 몰리나르가 그것이다. 도시가 작고 향수가 주 업종이다 보니 세 곳의 매장을 모두 방문했다.


갈리마르 매장/ 약국처럼 줄세워져있는 병들

갈리마르는 1747년부터 프랑스 왕가에 올리브 오일, 향수 등을 납품한 가문인데 가장 먼저 향수, 더 정확히는 향수 장갑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라스는 16세기까지만 해도 가죽을 만드는 도시였다. 동물의 원피를 가죽으로 만드는 무두질이라는 공정을 하다 보니 도시에는 죽은 동물들의 악취가 넘쳐났다. 가죽 장갑에서 나는 냄새를 잡아보고자 지방에 향을 입힌 포마드를 도포한 가죽장갑을 프랑스 여왕 카트린 드 메디치에게 선물한 것이 향수 산업의 탄생이라고 한다. 16세기 중반의 일이다.   


프라고나르에서는 산 게 없어서 사진이 없음. 출처 https://cotedazurfrance.fr/

프라고나르 매장은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이곳은 향수뿐 아니라 비누, 샤워젤, 샤워가운, 나아가 수건, 베딩 같은 패브릭, 프로방스풍 의상, 주얼리 컬렉션이 함께 진열되어 있고 패키지도 예뻐서 자꾸만 집어들게 되는 곳이다. 1782년에 시작된 브랜드이다.  


몰리나르 매장

몰리나르는 1849년에 시작되어 5대째 전통을 잇고 있는 곳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향수 공장 견학을 했다. 세 브랜드 모두 공장 견학 프로그램이 있으므로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공장 견학 후에는 아뜰리에에서 1시간 반 코스의 향수 워크숍에 참여했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향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향을 맡자마자 직관적으로 좋은 것을 선택하시면 돼요. 좋아하는 향을 탑노트, 미들노트, 베이스노트에서 3~4개씩 골라 적어보세요.”


90개의 향 원료가 담긴 테이블인 오르간 앞에 앉자, 조향사가 안내를 해줬다.

처음에는 남자친구에게 선물할 향수를 만들어보겠다고, 어떤 향이 어울리려나 머리로 계산을 하며 향을 고르기 시작했으나, 90개의 향을 맡는 과정에 이성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즉각적으로 끌리느냐 끌리지 않느냐로 판단하여 골라내야지, 생각을 하다가는 도저히 90개의 향을 다 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워크샵 장소의 오르간. 90개 향이 준비되어 있다.


그렇게 고른 향의 표를 보고 조향사가 조화를 이루기에 적합한 향들을 고른다. 그리고 고객과 대화를 나누며 어떤 향을 메인으로 쓸지 결정하여 비율을 정해준다. 고객은 조향사가 만들어준 레시피에 맞게 원료를 개량해 병에 담으면 향수가 완성되는 것이다.


함께 참여한 우리 네 명의 향이 어느 것 하나 겹치지 않았다. 누구는 오션, 누구는 시트러스, 누구는 플로럴. 내 향수는 처음에는 남자친구용으로 만들다가 나도 모르게 내 취향으로 고르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신기한 향이 되어버렸으나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다.


그나저나 원료만 보고도 어떤 향이 조화를 이루는지 상충되는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옛날의 ‘코’ 의 작업대

조향사라는 직업이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장인이 제자에게 도제식으로 전수해 주던 숨겨진 영역이기 때문이다. 1940년대에 최초의 향수 학교가 설립되었으나 여전히 1년에 2명~12명을 뽑는 소규모의 교육을 하다 보니 조향사의 숫자가 많지는 않다고 한다. (학비도 비싸다고 함) 커리큘럼을 보니 단기코스부터 4년제, 5년제까지 다양한 코스가 있던데, ‘코’가 되기 위해서는 10년까지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코?


‘코’라 부르는 ‘le nez’는 일반 조향사와는 구별되는 사람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1,000명의 조향사가 있지만 그중 50명 미만이 진정한 창의성과 독창성을 지닌 조향사인 ‘코’라고 한다. 실험실에서 원료에 둘러싸여 정밀한 저울로 실험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과학자이자 기술자이면서 향으로 한 곡을 완성해 내는 작곡가, 예술가이다.  


양손에 쇼핑백 들고 신난다


1년 내내 향기로운 도시 그라스를 3월에 방문한 덕에 어떤 꽃도 보지 못했으나 아로마만큼은 원 없이 맡고, 또 양손 가득 들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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