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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May 06. 2024

예술가들은 기가막히게 찾는다

앙티브 Antibes


“내가 보는 광경이 맞는 건가? 이게 말이 되는 풍경이야?”

“와...... 그러네. 강렬한 태양, 새파란 바다, 그림처럼 예쁜 선인장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바로 앞에 알프스 설산은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아?”

“왜 피카소가 여기에서 말년을 보냈는지 알 것 같다. 하여튼 예술가들은 아름답고 좋은 곳은 귀신같이 찾아낸단 말이지.”     


피카소는 2차 대전 직후 1946년부터 16년간 앙티브의 그리말디 성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는 그리말디 성에 그림 23점과 드로잉 44점을 기증했는데 이곳이 지금의 피카소 미술관이다.


호텔벨리브와 2024년 피츠제럴드상 후보자 공고


스콧 피츠제럴드는 앙티브에서 소설 <밤은 부드러워라>를 썼다. 그가 소설을 집필한 호텔 벨 리브 Hotel Belles Rives는 지금까지도 객실을 1930년대 콘셉트로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피츠제럴드 어워드를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올해가 13회이다.      


Jazz à Juan/ 사진출처: https://www.europejazz.net


앙티브를 좋아하던 미국의 색소폰 연주자 시드니 베쳇 Sidney Bechet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면서 재즈 퍼레이드를 열었다. 이를 계기로 1960년부터 앙티브 주앙 레 팡 재즈 페스티벌 festival de jazz à Antibes Juan-les-pins이 개최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이어져 매년 7월에 재즈 아 주앙 Jazz à Juan이 개최된다.     


이게 끝이 아니다. 매년 5월 칸 영화제가 열리면 할리우드 배우들은 앙티브에 숙소를 잡는다고 한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해안마다 호화로운 휴양지와 고급 호텔이 자리한 곳이다.      


처음에는 피카소 미술관 때문에 앙티브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리서치를 할수록 ‘도대체 이 도시의 매력은 무엇이기에 문학, 미술, 음악, 영화 각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이 작은 도시를 이렇게나 사랑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커져만 갔는데, 앙티브에 도착하니 단번에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니스역사/ 작은 사이즈의 앙티브 역


앙티브는 니스와 칸 사이에 위치한 도시로, 니스역에서 앙티브역까지 기차로 24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앙티브 기차역에 내려 해안가로 걸어가는 동안 구시가지를 지나게 되는데, 고풍스러운 중세 시대의 건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어떻게 찍어도 작품사진이 나온다. 물론 옛날 건물이다 보니 건물도 아담하고, 골목도 좁다. 그 올망졸망함이 매력이다.     


앙티브 구시가지

해안가까지 나오면 골목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웅장한 앙티브 대성당과 피카소 미술관이 나란히 서있다. 앙티브 대성당 Cathédrale Notre-Dame de l'Immaculée Conception 은 5세기부터 주교좌성당이었던 곳인데 전쟁 때마다 부서져 몇 번 새로 지은 건물이라 했다.  

성당외부/ 봉헌초 가격이 못 보던사이 많이 올랐군요? 10유로.


성당에서 나오면 바로 옆 건물에 말년의 피카소가 우리를 환영해주고 있다. 사실 피카소 미술관이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에도 ‘피카소 미술관’이라는 이름의 뮤지엄이 있으며 ‘피카소 미술관’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지 않은 모마, 구겐하임, 메트로폴리탄 같은 곳에도 그의 작품은 많이 있다. 93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작을 한 덕분이다.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이 전 시기에 걸친 작품을 소장했다면,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은 초기 청색시대와 장미시대 작품 위주이다. 반면 앙티브의 피카소 미술관은 지중해 시기라고도 부르는 그의 후기 작품이 주를 이루는데, 종종 바르셀로나보다 앙티브 미술관의 컬렉션이 더 우수하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피카소가 눈빛으로 환영하고 있다


“오늘은 관람이 불가능하니 돌아가세요.”

“네? 오늘 휴관일 아닌데요? 홈페이지에 휴관일 공지 없는 것도 확인하고 왔는데요?”

“갑자기 전기에 문제가 생겨서 관람이 불가능해요. 어제 비가 많이 왔잖아요.”     


우리는 한국에서 피카소 미술관을 보러 비행기를 타고 왔다,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뭐 이런 사정 저런 사정을 이야기해 봤으나, 미술관 경비원들이 어쩌겠는가. 그리고 이게 프랑스 아니겠나.     


기왕 이렇게 된 것, 우리도 예술가들처럼 앙티브를 여유 있게 돌아볼까?



미술관을 목적지로 찍고 부지런히 걷느라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프로방스 시장으로 향했다. 새벽 6시에 시작해서 오후 1시면 문을 닫는 시장이라 피카소 미술관 관람을 끝내면 돌아볼 수 없는 일정이었는데, 미술관이 문을 닫은 덕분에 오게 된 것이다. 과일, 야채, 육류, 생선, 허브, 향신료, 치즈가 너무나 신선하다. 오늘 하루 시간 여유도 생겼겠다, 실내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기에 아까운 풍경과 날씨이니 피크닉을 해보자!     

중세에 쓰던 우물 같은 곳에서 시장에서 산 과일 씻는 중


한국에서 잔뜩 절여진 앤초비 통조림만 먹다가 신선한 앤초비를 먹으니 눈이 확 뜨인다. 그 자리에서 잘라주는 치즈, 싱싱한 문어는 어떻고.  예상치 못한 시간이라 와인이 준비되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       


저 멀리서 요트타는 걸 굳이 발견해낸 우리

바다 위에 작은 요트들이 떠있는 걸 보니 어린이들이 요트 강습을 받나 보다. 이건 그냥 평화 그 자체!  프랑스 만화가 레이몽 페이네는 여름휴가로 앙티브에 놀러 왔다가 정착해 살았다고 한다. 우리가 점심식사를 한 곳이 바로 레이몽 페이네 그림 속의 이 자리였다.           

Raymond Peynet, <The Lovers on the Ramparts, Antibes>,


이른 아침, 멀리 칸이 보이고 오래된 요새는 분홍색과 크림색으로 빛난다. 이탈리아를 가만히 끌어안은 보랏빛 알프스는 강 위에 자기 모습을 비춰본다.

- 피츠제럴드, <밤은 부드러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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