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다 겉이 중요해
다른 술병들은 모을 일도 없을뿐더러, 생기면 바로 팔러 가기 땜에 집에 남아있는 게 없다. 쓰봉으로 바꿔오기 제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병은 화병으로 쓴다거나 인테리어용으로 스리슬쩍 모아 왔다. 안 버린 게 아니고 예뻐서 못 버린 거다.
와알못이지만 희한하게 맛과 와인병의 디자인은 비례하는 듯한데 (내 눈에) 감각적인 라벨들이 유달리 맛있게 느껴진다. 어떤 쇼비뇽블랑은 마시면서 니스 해변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을 상기시킨다. 왠지 태닝 하면서 마셔야 할거 같고 엎드려서 한숨 때려야 할거 같다. 또 어느 피노누아는 이게 물인지 와인인지 헷갈릴 정도라 꼭 한 병 더 마시게 되어 내가 샌프란에 있구나 하며 취하게 만든다.
이것들이 다 라벨들이 예뻐서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비싼 와인들은 껍데기도 못 생겨서 안 사게 되니까 오히려 이득이다. 맛이 중요하냐.
착각도 금물. 이제 더 이상 놔둘 자리가 없다. 꽃병으로 쓰고 싶지만 주둥이가 너무 좁아 거베라 한송이 겨우 꼽는다. 보내줄 때가 된 것이다. 그 핑계로 화병을 살 수 있으니까...ㅎ 여러 떨기 아리따운 와인병들아, 잘 가라. 그리고 또 다른 아이들아, 곧 만나자. 조속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