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 이 책의 강점은 솔직함이다

by 김뭉치

회사는 당연히 사람보단 업무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이고, 그 업무에 더 적합한 사람을 그 자리에 두기 위해 관리자들은 공을 들여 탁상공론을 했을 것이다. 관리자가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란 도무지 그것밖에 없으니까. 앞으로도 언제든지, 누구든지, 그런 식으로 체스 판의 말처럼 자리가 바뀌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쯤에서 회사를 그만둔 건 잘한 일 같다. 이 봐, 그걸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노력해서 네가 관리자가 되어 보지 그래? 체스 판의 말이 아니라 그 말을 움직이는 손이 되어 보지 그래? 라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다. 내 선택은 그 방 자체를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밖에서 보면 그저 하나의 작은 방이었다. 창도 빛도 없는.

- 「뒷산 도서관」, pp. 109~110


성적이 곤두박질치다 못해 그 힘든 꼴찌까지 해냈던 고3 때 나는 작문 점수만큼은 잘 받고 싶어 했는데 그냥 잘 받는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백점을 받아야 했다. 그것만 공부했다. 실제 작문 실력과는 상관없는 수업과 시험이었다. 국영수과에 비해 비중도 없고 대학입시에 별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그러고 싶었다. 뭐 하나만큼은 가장 잘하고 싶었는데 그게 작문이었다. 그랬던 내 모습이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다. 다른 것도 좀 잘하지 그랬어, 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내 소리가 그곳에 닿진 않겠지.

- 「안녕, 어린이자료실」, p121


그중 한 권을 고르면 "그 책 좋아요." "이 작가님 정말 글 잘 쓰지요?"라며 다정하게 건네주는 책방 주인의 한 마디가 좋았다. 무슨 대화든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그 한 마디. 어떤 경우에는 이런 말도 들을 수 있었다. "그 작가님 작업실이 이 근처인데 같이 가보실래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작가를 만난 적도 있다. 세상에! 숨고 싶은데 책방이 너무 작아서 숨을 데가 없다! 어찌할 줄 모르고 코앞에서 작가와 인사를 한다. 이런 일들의 연속. 동네의 작은 책방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 「도서관과 독립출판물」, p140


출간 간격이 짧은 탓에 권수가 많아졌지만 모두 나에게 필요했기 때문에 만든 책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책이라면 좋겠지만 일단은 나에게 먼저 필요했다.

- 「두 번째 출판」, p143


그게 좀 희한한 게, 이듬해 6월에 결혼식장을 예약해 놓은 상태였거든요. 상견례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저 혼자 재미삼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예식장 대관을 해준다는 기사를 보고 한번 예약해봤거든요. 거기서도 취소할 거면 한 달 전에 말해달라고 했으니 여차하면 나중에 취소하지 뭐, 그런 생각으로 했는데 그때까지 취소할 일이 딱히 없었어요. 그러던 중에 신혼집을 E구에 얻으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어요. 거기가 신혼부부가 살기에 싸고 넓다는 이야기를 또 어디서 주워들어가지고. E구에 신혼집을 얻을 거니까 일하는 곳도 E구에서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 해서 검색해보니까 정말 구립도서관이 있더라고요? 며칠에 걸쳐 몇 번 더 들어가보니까 신기하게도 계약직 채용공고가 뜨더라고요. 넣어봤죠. 그래서 일하게 됐어요.

- 「부록1 사서 인터뷰」, pp. 157~158


Q. 새똥에 잘 맞는 편인가요?

A. 지금까지 세 번쯤 맞아본 것 같아요.

- 「부록1 사서 인터뷰」, p. 160


혼자 출판사 차려서 자기 책만 내는 대학 동창이 있는데 그 애가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나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대요. 너무 좋아하는 일이어서 쉬지도 않고 잠도 안 자고 하니까 어느 순간 자기 몸으로부터 그런 신호를 받은 모양이죠. 야, 그만 해,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 저는 이제 나이도 있고 그 정도로는 못해요. 건강도 생각해야죠. 엄청 열심히는 하는데 제작물이 별로라거나 내용이 시시하면 그것도 슬픈 일이니까.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이 쓴 글, 만든 책도 많이 보면서, 그들의 삶의 방식에 늘 매료되면서, 최대한 즐기면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 「부록1 사서 인터뷰」, p. 164


꿋꿋한 건지 뻣뻣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독립출판만큼은 제 자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에게도 간섭 받고 싶지 않은 그야말로 독립적이고 사적인 영역이라고요. 근데 도서관 다니면서 그 자유를 계속 누릴 수 있는지, 위에 계신 분들은 제 생각과 다른 건 아닌지 슬슬 고민이 되긴 해요.

- 「부록1 사서 인터뷰」, p. 165


그리고 한 명이 더 있어요. 독립출판계의 성공한 작가, 바로 임소라 작가예요. 지금껏 제가 가지고 있던 작가나 작품에 대한 틀을 완전히 깨부순 혁명과도 같은 작가라고 할까요? 그분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바로 쓰고 바로 책으로 만드는 거예요. 만들고 싶은 방식으로.

- 「부록1 사서 인터뷰」, p. 167


Q. 도서관 사서로서의 계획은 없나요?

A.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잘 그만두는 거요. 그게 제 계획입니다. 그날이 오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그런 생각이 힘들 때마다 버틸 수 있게 해주고, 또 그날 하루를 열심히 살게 해주더라고요.

- 「부록1 사서 인터뷰」, p. 168


보통 책 좋아하는 사람이 도서관도 좋아하고 사서랑 왠지 어울릴 것 같고 그렇잖아요? 근데 사서는 책보다 사람을 더 좋아해야 한다고들 해요. 책보단 사람을 많이 만나고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일을 많이 하니까요. 사람과 부딪히고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도 많아요. 반면에 책은 말이 없어요. 자신을 찾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죠. 그런 책이 좋아서 도서관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사람에 질려 그만두는 분이 대다수죠. 맞아요. 책 좋아하는 사람은 그냥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 골라 읽으면 돼요. 거기서 일을 할 게 아니라요. 근데 제 생각은, 이제부터는 저도 자신 없으면서 말만 번지르르한 말을 좀 하겠습니다. 제 생각은, 그래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사서로 오래 남았으면 해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안으로만 숨어들지 않으면 좋겠고, 사람에게 쉽게 상처받지 않으면 좋겠고, 일터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도서관은 분명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어요. 도서관이니까 당연히 그런 사람이 많을 거야, 라는 기대가 번번이 깨지는 게 아니라 와, 역시 도서관이라 정말 그러네! 였으면 좋겠어요. 도서관은 그 자체로 좋은 곳이에요. 그 안에서 자신의 안위보다는 책과 사람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서들도 분명히 있고요.

- 「부록1 사서 인터뷰」, pp. 170~171


걱정할 것 하나 없다고, 그건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가만히 있었다. 상대의 상태를 보아가며 대화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가를 먼저 파악한 다음에 입을 떼려다 보니 나는 늘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러니까, 여기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글 쓰려고 그만둔다는 거죠?"

"네."

자리로 돌아와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에게는 이전에 몇 차례 말한 적이 있었다. 갑자기 결정해도 놀라지 않도록.

- 「부록 2 퇴사 지평선 : 사건 에세이」, p. 179


사서과장에게 말했다.

"왜요?"

첫 대답이었다.

"좀 쉬고 싶어서요."

나의 대답이었다.

"뭘 했다고?"

이어진 대답.

(중략)

나는 그가 싫다. 살면서 싫은 사람을 만든다는 건 내가 더 괴로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그가 하는 말, 그의 크고 작은 행동들을 견뎌낼 수가 없다. 인간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그래요.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과장이라면, 한 조직의 중간관리자라면, 인간이라면, 하는 기대들이 너무 컸던 탓일까. 하지만 어떤 형편없이 최악인 사람의 기준에 맞춰 모든 기대가 하향평준화 되도록 할 수는 없다.

- 「부록 2 퇴사 지평선 : 사건 에세이」, p. 180


남편은 축하해주었다. 또 다른 세상이 시작된 것을 축하한다고 했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일단은 좀 길게 쉬라고 했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차차 해나가면 된다고.

- 「부록 2 퇴사 지평선 : 사건 에세이」, p. 193


도서관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는 어쨌든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만 한다.

그러기로 결심했으니.

- 「부록 2 퇴사 지평선 : 사건 에세이」, p. 200


사과 하나를 들고 아삭아삭 먹었다.

아침에 사과 하나는 보약이라고 했던가.

그동안 이거 하나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출근했었지.

아삭아삭.

- 「부록 2 퇴사 지평선 : 사건 에세이」, p. 201


책방 주인은 좋은 분이었다. 내가 일부러 노력해서 들여다보지 않아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많은 경우 노력을 해야만 했다. 저 사람은 그래도 좋은 사람일 거야, 어느 한 부분은 좋은 사람일 거야, 다른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일 거야...... 그렇게 스스로 주문을 걸어야만 오랜 시간 함께 일할 수 있었다.

- 「부록 2 퇴사 지평선 : 사건 에세이」, pp. 205~206


'사건 지평선'이라는 말이 있다.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어떤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 외부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경계면을 말한다.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이미 크게 벌어지고 있지만 경계면 바깥에서는 안에서의 일을 전혀 알 수 없다. 블랙홀 주변이나 먼 우주의 경계면을 말할 때 주로 이 용어를 사용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수많은 사회적 편견과 경계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중략) 사회나 우주까지 나갈 필요도 없이, 한 사람의 내부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내부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으며,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주변은 알지 못한다. 심지어 본인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사건 지평선을 가지고 있다. 한 발자국 더 깊숙이 내딛었을 때에라야 경험할 수 있는 기막힌 이벤트를 모두가 가지고 있다.

- 「부록 2 퇴사 지평선 : 사건 에세이」, pp. 208~209


강민선,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임시제본소, 2018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