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가 가져다준 것

- 미야모토 테루

by 김뭉치

확실히 그 젊은 의사의 말도 옳았지만 너무도 불친절하고 귀찮은 듯한 태도였다.

- 미야모토 테루/이지수 역, <공황장애가 가져다준 것>, 《생의 실루엣》, 봄날의책, 2021, p. 76


얼마 뒤 진료실에서 아까의 의사가 젊은 간호사 몇 명을 모아놓고 목 위에 엑스레이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이 양쪽 광대뼈에 있는 조그맣고 하얀 점이 뭘 것 같아?"

하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간호사들 뒤에서 그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봤다. 과연 목 위는 해골 마크와 똑같구나, 감탄하며.

"이건 말이지, 안면신경이 지나가는 구멍이야. 어지간히 두꺼운 신경이라는 걸 알겠지?"

오호, 저런 데서 안면신경이 나오는 건가, 나는 의학실습을 받는 기분으로 그 엑스레이 사진 윗부분에 시선을 던졌다. MIYAMOTO라는 글자가 있었다.

이 자식, 내 해골을 안줏감 삼아 젊은 간호사들과 시시덕거리다니!

나는 진료비를 내고 병원에서 나온 뒤 방금 받은 비염 약을 버렸다.

그 뒤로 내 불안발작은 계속 악화되어 회사에 가는 데는, 말하자면 사지로 향하는 것과 같은 각오가 필요한 지경이 되었다.

- 미야모토 테루/이지수 역, <공황장애가 가져다준 것>, 《생의 실루엣》, 봄날의책, 2021, pp. 77-78.


그 일류 문예지의 권두를 장식한 단편소설은 대부분의 사람이 이름 정도는 아는 저명한 작가의 최신작이었다. 아마도 400자 원고지로 30~40장짜리 작품이었을 것이다.

서점 통로에 선 채로 읽기를 끝마친 뒤, 나라면 이 글들보다 백배는 더 재밌는 소설을 하룻밤 만에 쓸 수 있겠다 생각하며 그 문예지를 책장에 되돌려놓았다. 그 순간 나는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소설가가 되면 전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 매일 집에서 일할 수 있다. 북적이는 곳을 걷지 않아도 된다. 이제 이것 말고는 내가 처자식을 먹여 살릴 길은 없다, 하고.

그때의 이야기를 하면 백이면 백 웃음을 터뜨리지만, 나는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고바야시 히데오小林英夫(근대 일본의 문예평론을 확립했다고 일컬어지는 평론가)는 「모차르트」에서

"생의 힘에는 외적 우연을 곧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갖춰져 있는 법이다. 이 사상은 종교적이다. 그러나 공상적이지는 않다"

라는 말을 남겼다.

'느끼는感ずる'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観ずる' 것이다. 이 한 글자 차이가 가지는 의미는 깊고도 크다.

나는 곧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소설 쓰기에만 매진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꺼림칙한 기침을 종종 했다. 저녁이 되면 미열이 나서 권태감으로 30분 가까이 누워 있어야만 하는 상태가 매일 이어졌다.

이런 소설보다 백배는 재미있는 글을 하룻밤 만에 써 보이겠다고 생각했건만 일은 그리 간단히 흘러가지 않았다. 써도 써도 신인상 1차 예선도 통과하지 못한다. 집에 있어도 공황발작은 덮쳐온다. 실업급여도 앞으로 석 달이면 끝난다. 수입은 한 푼도 없다. 게다가 폐결핵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왠지 지옥 밑바닥으로 떨어져가는 듯한 나날을 보내던 중, 내 안에서 내가 미치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가 시작되었다.

이 공포는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공황발작의 공포 같은 건 그나마 귀여운 수준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 더해 숨 쉬는 것조차 괴로울 정도의 권태감.

- 미야모토 테루/이지수 역, <공황장애가 가져다준 것>, 《생의 실루엣》, 봄날의책, 2021, pp. 82-83


두 어린 아들의 귀여움이 힘없이 드러누워 있는 나를 책상으로 이끌 때도 많았다(정말이지 어째서 이럴 때 연년생이 태어나버리는 걸까).

저쪽의 높은 봉우리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계곡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만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있다. 그것은 사물의 이치다, 라고.

나는 그 계곡의 밑바닥에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절망적인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아내도 확신했기 때문이다. 반드시 작가를 향한 길이 열릴 거라고.

부부가 나란히 천하태평인 낙천가라고 비웃겠지만, 그 하나에 관해서만은 나도 아내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대체 무엇을 근거로 한 확신이었는지 지금 와서는 잘 모르겠다.

생과 사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느 시기에 '자연'과 '풍경'과 인간 그 자체의 진실한 아름다움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살아가자, 멋진 소설을 쓰자, 하는 필사적인 일념이 내게 가져다준 최초의 보물이었다.

같은 때 나는 문학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인물을 만나 하나부터 열까지 정성 어린 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 사람 덕분에 소설이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말로써 직조해나가는 것이라고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나라는 인간의 안에서만 나오니까, 나라는 인간을 크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이 병은 그 때문에 내 내부에서 솟아난 것이다.

잘 쓰고 못 쓰고는 나중에 따라온다. 마음속에 있는 풍경과 자연과 인간이 하는 다양한 일을, 애정을 담아 소설로 쓰자.

- 미야모토 테루/이지수 역, <공황장애가 가져다준 것>, 《생의 실루엣》, 봄날의책, 2021, pp. 84-85


정신과 의사는 온화한 미소로 말하며 신경안정제를 줬다. 천재 운운은 나를 격려하기 위한 말이었을 터다.

그 약이 나의 상비약이 된 지도 벌써 30년이다. 복용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 말하자면 부적 같은 것이다.


그나저나 내가 공황장애라는 병으로 얻은 수많은 보물에 대해 말하자면, 이제는 그것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듯하다. 타인의 아픔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하나 더, 마음의 힘이라는 것의 대단함을 몸소 깨달았다는 점도 덧붙여둔다.

- 미야모토 테루/이지수 역, <공황장애가 가져다준 것>, 《생의 실루엣》, 봄날의책, 2021, p.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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