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진료가 가져다준 것

by 김뭉치
확실히 그 젊은 의사의 말도 옳았지만 너무도 불친절하고 귀찮은 듯한 태도였다.

- 미야모토 테루/이지수 역, <공황장애가 가져다준 것>, 《생의 실루엣》, 봄날의책, 2021, p. 76


얼마 뒤 진료실에서 아까의 의사가 젊은 간호사 몇 명을 모아놓고 목 위에 엑스레이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이 양쪽 광대뼈에 있는 조그맣고 하얀 점이 뭘 것 같아?"
하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간호사들 뒤에서 그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봤다. 과연 목 위는 해골 마크와 똑같구나, 감탄하며.
"이건 말이지, 안면신경이 지나가는 구멍이야. 어지간히 두꺼운 신경이라는 걸 알겠지?"
오호, 저런 데서 안면신경이 나오는 건가, 나는 의학실습을 받는 기분으로 그 엑스레이 사진 윗부분에 시선을 던졌다. MIYAMOTO라는 글자가 있었다.
이 자식, 내 해골을 안줏감 삼아 젊은 간호사들과 시시덕거리다니!
나는 진료비를 내고 병원에서 나온 뒤 방금 받은 비염 약을 버렸다.
그 뒤로 내 불안발작은 계속 악화되어 회사에 가는 데는, 말하자면 사지로 향하는 것과 같은 각오가 필요한 지경이 되었다.

- 미야모토 테루/이지수 역, <공황장애가 가져다준 것>, 《생의 실루엣》, 봄날의책, 2021, pp. 77-78.


미야모토 테루의 《생의 실루엣》을 읽다가 위의 문장들을 발견하곤 회상에 빠졌다. 테루가 병원에서 겪었던 불쾌한 일들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지방 병원 의사들의 하나같이 "너무도 불친절하고 귀찮은 듯한 태도", 환자의 "해골을 안줏감 삼아" 환자와 보호자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시시덕거리"는 그 태도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경악했다. 일부 간호사들의, 환자와 보호자는 무조건 틀렸고 자기들만 옳다는 편협하고 안하무인적인 태도는 병원이라는 폐쇄적이고 공포스러운 공간 속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을 얼마나 작고 초라하게 만드는가. 친절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존중'이라는 게 있었으면 한다. '스마트함'이라는 포장 뒤에서 그들이 하는 일의 어쭙잖음이 혀를 차게 한다. 예약일 이틀 전까지 환자는 어느 시간에 진료를 받을지도 알 수 없으며 심지어 예약 당일이 되어도 예약 시간 알림 문자가 오지 않을 때도 잦다. 그에 문제가 있지 않냐고 물으면 본인들이 그런 실수를 할 리 없다며 일갈하다가는 본인들의 실수를 확인하고 나면 사과 한마디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얼마나 힘들지, 얼마나 바쁠지, 그리고 그들 외에 세상엔 좋은 의사와 좋은 간호사들이 더 많다는 걸 알기에 매번 손에 땀을 쥐어가며 그 끔찍함을 참아내지만, 돌아서면 울화통이 터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왜 나는 그들 앞에서 언제나 불효녀가 되고 마는가. 공무원처럼 쉴 생각 말라는 회사의 눈치를 봐 가며, 마감일을 피해 가며 어렵게 연차를 쥐어짜내서 지방에 있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면 이렇게밖에 아버지를 돌보지 못하느냐고, 더 자주 와서 아버지를 살펴야 하지 않느냐는 의사의 힐난을 감내해야 한다. 왜 모든 돌봄 노동이 딸 개인에게 전가되는가. 나는 개인적인 생활과 일을 다 포기하고 프리랜서 직업인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직장인인 나는 정해진 연차 안에서 쓰는 휴가마다 왜 그리 자주 쉬냐고 회사의 욕을 들어야 하고 딸인 나는 그 얼마 안 되는 휴가일마다 왜 이렇게 짧게밖에 휴가를 내지 않느냐며 욕을 들어야 한다.


회사와 의사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만약 내게 아이라도 있었다면 친정 부모와 시댁 부모를 어떻게 다 돌볼 수 있었을지 아찔해진다. 결국 국가적 대비책 없이 저출산 운운하며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낳으면 좋다고 권유할 게 아니라, 일하라고, 직장에 다니면 좋다고 역설할 게 아니라, 돌봄 노동이 개인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사회적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야 한다. 또한 서울과는 달리 시설과 서비스 모두에서 낙후된 일부 지방 병원에 대한 개혁 및 관련 지원책,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 편의책이 마련되어야 할 테다.


혹자는 한 가정의 돌봄은 개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지 국가적인 소관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나아지지 않는 사회라면 어떻게 우리의 아이들을 이 나라에서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지옥은 계속될 것이다. 가정에서, 회사에서, 병원에서 고통받는 사람은 늘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지옥에 살고 있는 개인은 국가도, 사회도, 회사도, 가정도, 종국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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