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계속 짖어라, 나는 생각을 비우련다. 두 눈을 또렷하게 떳지만 아무 데에도 초점을 맞추지 않았고. 귀로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평등하게 관심을 분배했다. 입으로는 기계적으로 죄송합니다란 문장을 연속 출력했다. 잠시 감각의 가사 상태에 빠지기.
- P. 66
눈앞에서 온갖 개소리를 늘어놓던 아저씨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다 사라졌다. 분노의 배출이 끝나서 물러난 것 아닐까 하고 현은 생각했다. 그 아저씨는 자신이 매우 화났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랐을 뿐일 테다. 유아적이다.
- P. 66
김현은 일주일 중 이틀만 살았다. 그 이틀은 금(67)요일 오후 6시에 시작되어 일요일 오후 6시 즈음에 끝났다. 평일에는 살아 있다고 하기 힘들었다.
- P. 66
근추동과 그에 인접한 동네들은 모두 직장인들에게 악의를 품은 어떤 도시 계획 전문가가 한 땀 한 땀 세심하게 짜낸 듯한 난개발의 정수였다. 한 블록 건너마다 있는 교차로의 신호등은 주기가 교묘히 엇갈리도록 조작되어 보행자의 정신을 으깨 버렸고, 1차선에서 5차선까지 변화무쌍한 도로 폭은 운전자의 영혼에 깊게 남을 흉터를 새겼다.
- P. 67
분명히, 분명히 어제는 금요일이었는데. 김장 행사 때문에 하루 종일 김치를 날랐는데.잘 때마다 시간이 6일씩 흘렀다. 금요일 밤에 잠들었다가 일어나면 다음 주 금요일 아침이었다. 세 번의 연속된 금요일과 두 번의 시간 도약을 경험하고서야, 현은 그 비현실적인 현상이 실제임을 받아들였다.
- P. 74
무인 민원 발급기는 몇몇 식당에 있는 무인 주문기와 일촌 관계에 있는 기계들이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고통을 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말이다. 등본 하나 뽑는 데에만 열 개 정도의 과정을 거쳐야 했고, '이전 화면'과 '첫 화면으로' 버튼이 교묘히 붙어 있어 그간의 노력을 곧잘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그것들은 시민들이 행복센터 직원에서 민원을 청할 통로 자체를 차단하여 행정력의 효율적 활용을 꾀하는 목표로 제작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계는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 사항을 다 들어주고 대응하지 못한다. 아직 인간은 무인 발급기보다 훨씬 우월했다.
- P. 77
(82)평일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월요일에서부터 목요일까지 그의 모습은 너무나 똑같아서, 언뜻 비치는 창문 바깥의 풍경으로만 서로 다른 날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P.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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