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월 10일 월요일
1.
성신여대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50대 아저씨로 추정되는 괴한이 나를 덮쳤다. 괴한이 나에게 폭력을 휘두르려 해서 나도 지지 않고 그에 맞섰다. 그는 내 가방을 탐내고 있었다. 갈색 퍼 바탕에 흰색의 앙증맞은 무늬가 있는 백이었다. 몸싸움 끝에 초록불이 켜졌고 가방이 횡단보도로 떨어졌다. 괴한은 황급히 달아났다.
괴한과의 싸움에서 가방은 지켜냈지만 몸과 마음 모두 지쳐 버린 기분이었다. 온 대로 다시 되짚어 걸어가는 길에 중학교 때 친구 B를 만났다. B를 만나자 나는 주저앉을 것 같은 마음에 방금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다. B가 초등학교 때 친구 M이 우리 뒤에 있다고 속삭였다. 뒤를 돌아보니 정말 M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괴한을 만나기 전의 나는 M과 같이 다니던 학교에서 어디론가 가는 길이었다는 게 떠올랐다. M이 나를 위한 이벤트를 준비한다는 소문이 들려와서 부담스러워하며 학교를 나왔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친구 B와 걷는데 친구 B가 갑자기 주저앉았다. 그의 앞에는 커다란 냉장고가 있었다. B가 냉장고 문을 열고 안에 있는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냉장고 문에 가려 B의 얼굴이 보이질 않았는데 다시 보이는 얼굴은 반려인의 모습이었다.
나는 반려인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이상한 일에 대해 전부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꿈의 끝은 현실의 시작이기도 했다.
2.
자고 있는데 유리 지붕 위로 누군가의 형태가 보였다. 그는 우리 지붕 유리를 계속 두드리더니 급기야는 방 안으로 떨어져 버렸다. 놀라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다가 얼굴을 자세히 보니 이웃이었다. 가족들(아빠, 엄마, 반려인과 나, 시어머니까지 있었다)이 따뜻한 차라도 대접하라고 해서 커피 한 잔 하겠냐고 하니 본인은 이미 마시던 커피가 있다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자신의 커피잔을 들어 보인다. 흰색 배경에 파란색 페이즐리 무늬가 있는 빈티지한 잔이었다.
가족들이 그를 상대하는 사이 내 방 문을 열자 방 안은 한겨울이었다. 놀란 나는 이게 뭐지 싶어서 다시 문을 닫았다가 열어 봤다. 그랬더니 방 안은 원래의 내 방이었다가 다시 한겨울이었다가를 반복하는 것 아닌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방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며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택배가 왔다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현관에서 택배를 정리했다. 택배를 뜯는 나를 내려다보며 아빠와 엄마가 대화를 나눴다. 일본에 대한 얘기가 들려왔다.
꿈에서 깨어 이를 기록하다 보니 엄마가 꿈에 등장한 것이 반갑게 느껴진다.
3.
[요즘 나를 즐겁게 하는 것]
1) 돌체구스토 전용 스타벅스 캡슐 커피.
2) <그해 우리는>.
본방을 보고 또 보고 자꾸 본 뒤에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사람들의 댓글을 읽는다. 요즘엔 이게 진짜 제일 재밌다. 좋아하는 것 하나를 중심으로 모요 랜선으로 감상회에 참여하는 기분이랄까.
4.
오늘은 일이 정말 잘 됐다. 아침 7시부터 새벽까지 내내 회사 일을 했다. 나도 이런 내게 놀랐다. 요즘 들어 최고의 집중력과 몰입도로 일한 것 같다. 오늘 같은 날만 계속되면 혼자서 잡지 두 권도 만들겠는데?
물론 과장이다.
하루 웬종일 일을 했더니 양 손목이 너무 아프다. 열심히 일한 대가가 손목 통증이라니요? 울고 싶다.
5.
[오늘 내가 산 것]
1) 디올 뉴 컬렉션 한정판 립스틱.
케이스가 하운즈투스 패턴인데 그게 너무 예뻐서 안 살 수가 없었다. 솔직히 레드 립스틱 30개는 있는 것 같은데 난 이걸 왜 또 산 걸까. 하지만 오늘은 일이 너무 잘 됐고 일기도 썼고 책도 한 권을 다 읽었고 영화도 한 편을 봤다. 그냥 오늘 하루 너무 잘 살아낸 내가 대견해서 주는 선물이었달까.
2) 무스탕과 점프수트와 레더 원피스.
디올 립스틱을 샀으면 됐지 싶겠지만... 솔직히 무스탕이랑 레더 원피스는 그렇다 쳐도 점프수트는 지금 당장 입을 것도 아닌데 왜 샀는지 모르겠다. 이미 한 소비라면 자괴감에 빠지지 말고 그나마 모두 반값에 산 걸 잘한 일로 치자. 그리고 더욱 열심히 살자...
^^;
6.
(비밀)
7.
어릴 땐 나쁜 일이 있으면 일기를 썼다. 지금은 나쁜 일은 되도록 쓰고 싶지 않다. 나쁜 일에 대해 기록하면서 나쁜 일을 다시 한번 곱씹는 일을 피하고 싶어서다. 이건 일종의 회피일까? 오히려 어릴 때의 내가 더 용기 있는 건가?
나쁜 일에 대해 쓰면 나중에 글의 소재가 될 것 같다. 나쁜 일은 대개 갈등일 테고 갈등은 글에 있어 주요한 사건이 되니까.
그렇지만 도통 나쁜 일에 대해 쓰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그냥 나쁜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예.
8.
반려인이 두 권의 책을 읽어줬고 두 편의 영화를 추천해줬다.
그중 버지니아 울프의 ‘여성의 직업’(<why> 수록잘)이라는 글이 인상깊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시절의 영국에선 여성들이 닭다리를 먹었다고 한다. 여성의 위치를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쓰인 문장이었고 그 뒤엔 우풍이 부는 쪽에 앉아야만 했던 여성의 서러움에 대한 문장이 따른다. 여성의 희생에 대해 이야기하며 닭다리를 거론한 건 그 시절 영국에서 닭다리가 그만큼 하찮은 부위였기 때문일까? 살코기가 아닌 뼈가 있는 부위라서? 닭다리가 대접받기 시작한 건 근래 한국에서만인 건가? 그도 아니면 잘못된 번역? 혼란스럽다.
나는 혼자 세 권의 책을 읽었다.
9.
일기를 쓰다 보니 채식짜장면이 먹고 싶어진다. 내일은 반려인과 가원엘 간다.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hl=ko
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인터파크 http://asq.kr/PH2QwV
예스24 http://asq.kr/tU8tz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