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월 9일 일요일
오늘은 아빠 생신이라 빨리 일어나서 축하도 해 드리고 시어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을 데워 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내 머리가 아무리 일어나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결국 몸을 일으켰을 땐 아빠가 이미 아침상을 스스로 차려 드시고 한숨 주무시고 계실 때였다.
"아빠랑 나는 이렇게 타이밍이 안 맞는다니까. 아빠가 일어나면 내가 자고 있고 내가 일어나면 아빠가 자고 있고."
반려인에게 우스갯소리를 했다. 서울에 가기 전에 아빠에게 필요한 물건들은 반려인이 장을 봐 두었다. 동생이 와서 시어머니에게 줄 김치통을 챙겨 갔다. 함께 온 조카는 새삼 아빠 집이 낯선지 새초롬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화장실만 가도 아쉬워하던 아가가 오늘은 모르는 사람처럼 날 대한다. 아빠도 오늘은 조카 기분이 안 좋은가 보다 하고 걱정했다. 조카가 크면 굉장히 도도할 것 같다. 크하.
서울에 가기 전에 다행히 동생 얼굴까지 봐서 기분이 좋았다. 철저하게 분리수거를 한 뒤 아빠 집을 떠났다. 차 안에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많이 불러서 신이 났다. 유튜브에서 무작위로 틀어주는 '90년대 노래'를 나는 다 아는데 반려인은 거의 모른다는 게 신기했다.
금요일에 동해로 내려갈 때만 해도 공포스러운 식욕을 보여주던 나였는데 - 대게꼬치에 회오리감자에 찐빵에 콜라, 오징어까지 클리어했다 - 오늘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방앗간 같은 휴게소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그저 허리가 아팠다.
다섯 시간 이상을 달려 집에 도착했다. 저녁으로는 월남쌈을 먹으며 영화 <툴리>를 봤다. 정보가 아예 없는 채로 영화를 봐서인지 반전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새해 목표가 '나를 잃지 않기'였는데 <툴리>를 통해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는 정말이지 대단했고 맥켄지 데이비스의 에너지도 좋았다. 결혼, 임신, 출산이 한 여성의 삶을 어떻게, 얼마나 뒤흔드는지 소름 끼치게 보여준 수작이었다.
띵작을 보고 나니 기분 좋게 밤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보통 일요일엔 늘 다음 날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평소보단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