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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Dec 31. 2022

영화란 무엇인가

-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와 <아사코>를 중심으로

일반적으로 영화란 무엇인가를 논할 때, 스토리와 숏의 구성, 미장센, 플롯 등에 대해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적·감정적 에너지를 응축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편집된 컷의 미학도 물론 매력적이지만 오늘날 영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픽션의 진실성을 어떤 스토리텔링으로 향유하게 하느냐, 가 아닐까. 여기에서 ‘픽션의 진실성’이란 일찍이 앙드레 바쟁이 《영화란 무엇인가》에서 말했던 ‘리얼리티’와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픽션의 진실성을 이전의 영화들과 어떻게 다르게, 더욱더 매력적인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 이제 영화는 기존의 ‘시각예술’에서 더 나아가 향유자가 해당 텍스트를 체험하게 하는 방식의 스토리텔링 전략을 구현해야 한다.


이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본고는 하마구치 류스케(濱口 竜介)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와 <아사코>를 들고 싶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오늘날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더 나아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후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일본 감독이기도 하다. 국내에선 <아사코>와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감독으로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이름을 널리 알렸다. 특히 <아사코>와 <드라이브 마이 카>는 국내 흥행 외에도 여러 면에서 문제적인 텍스트라 할 수 있다.


2018년에 제작된 <아사코>는 2019년 3월 14일 국내에 개봉했다. 시바사키 도모카의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를 원작으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연출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작품의 각본을 맡았던 타나카 사치코와 하마구치 류스케가 함께 각색했다. <아사코>의 작품성은 제작 이후 널리 인정받아 왔다. 또한 이 작품은 한국 관객과 평단이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감독에 주목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아사코>는 작은 규모로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봉 일주일 만에 국내 누적 관객수 1만 5838명이라는 성취를 이뤘다. <아사코>라는 작품의 성취와 마니악한 팬덤은 소위 말하는 ‘일본 멜로’와는 차별화되는 지점들에서 기인하며, 무엇보다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만의 독특한 스토리텔링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사코>의 서사는 간단하다.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들에서 끝없이 반복, 변주되는 ‘삼각관계’ 소재다. 그럼에도 아사코가 그저 그런 멜로물로 전락하지 않은 데에는 하마구치 류스케가 구현하는 스토리텔링 전략이 주효했다. <아사코>에서 하마구치 류스케가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전략은 일반적인 멜로물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다층적인 의미를 생산하고 있다.




한편 하마구치 류스케의 또 다른 작품 <드라이브 마이 카>는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영화다. 2022년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하여 전 세계 각국의 영화제에서 93개의 상을 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의 단편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를 비롯하여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의 몇몇 단편을 겹쳐서 만들어진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하마구치 류스케가 직접 각색하고 연출했다. 이 작품은 2021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7월 월드 프리미어 상영된 뒤 8월 18일 프랑스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개봉을 시작으로, 8월 20일 일본에, 같은 해 12월 23일 한국에 정식 개봉되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일본에서 흥행 수익 10억 엔, 관객 수 80만 명 이상을 기록했으며 국내에서는 다음 해 2월 19일까지 누적 관객 수 6만 명을 돌파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이런 성취를 바탕으로 국내외에서는 하마구치 류스케 작품에 대한 탐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이처럼 대중성과 작품성에서 모두 뛰어난 성취를 이룬 것은 단순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소설을 영화라는 장르로 잘 전환해서만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향유자들이 채우도록 설정한 빈틈과 내밀하게 채워지는 감각들, 하마구치 류스케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시간성 등이 끊임없이 의미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나가는 스토리텔링 전략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와 <아사코>는 상호텍스트성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이야기의 형식 측면에서 연결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연결성마저 겹겹이 쌓아 올려진 심층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경우, 1) 하루키의 단편소설들 2) 오토의 이야기와 오토의 두 개의 자아, 3) 체호프의 연극 <바냐 아저씨> 4) 병치서사, 5) 히로시마의 폭력성이 각각 연결성을 지니며 작품 안팎으로도 서로 연결되는 등 다른 영화들과는 차별화되는, 하마구치 류스케만이 구현할 수 있는 ‘겹의 스토리텔링’을 구현하고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구현하고 있는 연결의 겹은 서사를 추동하며 텍스트를 서사 안과 밖에서 나아가게 하는 이동성을 획득하고 향유자가 텍스트를 체험하게 만듦으로써 가치를 지닌다.



한편, <아사코>의 경우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드라이브 마이 카>와 1) 주제적으로, 2) 체호프를 포함한 연극 텍스트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3) 두 개의 자아 모티프, 4) 역사적 재난(동일본 대지진) 측면에서 연결되며 두 작품이 쌍둥이 같은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아사코>에서 하마구치 류스케가 구현하는 겹의 스토리텔링은 상처를 입었지만 상처를 입은 채로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건네며 향유자가 해당 텍스트를 체험하게 만들었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가 여타의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하마구치 류스케 스토리텔링의 연결성은 온전히 연결되지 못했던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과 대구를 이루며 또 하나의 의미를 획득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안에서 삶과 예술은 스토리텔링 안에서 연결되어 있으며 하마구치 류스케가 <드라이브 마이 카>와 <아사코> 두 작품에서 구현하고 있는 겹의 스토리텔링은 향유자들에게 기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납득시키는 색다른 체험을 제공한다.



2022년의 영화란, 과연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김미향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 과정·에세이스트·출판평론가


참고문헌     


논문

박은지, 영화에서 왜, 혹은 아직도, 바쟁이 중요한가: 영화란 무엇인가?, <한국예술연구> 제26호,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2019, p. 364.

남승석, 일본 에코시네마의 도시산보녀 : <아사코>에서 영화도시를 걷는 여인의 수행적 감수성. ≪아시아영화연구≫ 4권 1호,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2021, pp. 147-199.

한동균, 모던한 방식으로 찍은 고전적 영화 : 영화 〈아사코〉의 스토리텔링,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7권,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 2021, pp. 59-70.     


단행본

앙드레 바쟁 / 박상규 역, ≪영화란 무엇인가≫, 사문난적, 2013.

무라카미 하루키 / 양윤옥 역, ≪여자 없는 남자들≫, 문학동네, 2014.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 동완 역, 《갈매기 / 세 자매 / 바냐 아저씨 / 벚꽃 동산》, 동서문화동판, 2016.

헨리크 입센 / 소두영 역, 《인형의 집 / 유령 / 민중의 적 / 들오리》, 동서문화동판, 2016.

시바사키 도모카 / 양윤옥 역,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폭스코너, 2020.     


뉴스 자료

김지혜, '아사코', 1만 돌파…일본 멜로 안 죽었다, SBS, 2019.03.20.

여용준, '드라이브 마이 카' 6만 관객 돌파…장기 흥행 예고, <글로벌 이코노믹>, 2022.02.19.

김승진, [컬처리뷰] 일본 로맨스 영화의 공식을 바꾼, 현실 로맨스 '아사코', <넥스트데일리>, 2019.03.18.


2022년 한국영화학회 창립 50주년 기념 도서 《영화란 무엇인가?》 수록 원고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5717392&start=sl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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