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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Nov 21. 2018

읽기의 과학, 왜 책인가

- 함께 읽는 2018 책의 해 제8차 책 생태계 비전 포럼

지난 10월 25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2018 책의 해 제8차 책 생태계 비전 포럼이 열렸다. ‘읽기의 과학, 왜 책인가'를 주제로 진행된 이번 포럼에는 심리학자 레이먼드 마 캐나다 요크대 교수, 교육학자 마거릿 머가 호주 에디스코완대 교수, 뇌생리학자 사카이 구니요시 일본 도쿄대 교수, 진화학자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가 참여했다. 이들의 주제 발표 이후에는 김은하 책과교육연구소 대표,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최희수 푸름이닷컴 연구소장의 지정토론이 이어졌으며 청중 질의 응답을 거쳐 포럼은 마무리됐다.      


책을 읽으면 인기도 많고 돈도 잘 벌고 장수한다?

요크대 심리학 교수인 레이먼드 마는 독서를 하면 언어 능력이 상승되고 학습 기술도 향상되며 취업도 잘한다는 캐나다 통계를 발표했다. 당연하게도 뛰어난 학업 성취는 더 나은 경제적 성취를 담보하며 1만 1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7세 때의 독서 능력을 바탕으로 42세 때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예측한 결과, 실제 독서 능력이 뛰어났던 이들이 40대가 되어서도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오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소설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어 능력의 향상뿐만 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을 상상하는 것이 현실 세계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어 사회적 능력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레이먼드 마 교수는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얘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 것이냐? 시를 가지고 (이야깃거리를) 이끌어낼 수도 있고, (사회를) 관찰할 수도 있고, (사회의 병폐를) 원망할 수도 있다. 그리하면 가까이로는 부모를 섬길 수 있고 멀리로는 임금을 섬길 수 있노라”는 『논어』 17편 9장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이야기꾼 기질이 있는 남성은 여성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거나 남성에 한해 매일 독서를 하면 사망률이 떨어진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마 교수 연구의 대부분은 필연적으로 상호 연관성이 있으므로 인과 관계를 추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 교수의 마무리 멘트처럼 “그렇다고 소설을 안 읽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 2018 책의 해 조직위원회 제공


다음으로 에디스코완대 부교수인 마거릿 머가 박사가 독서가 왜 중요하며 어떤 유형의 독서가 가장 이로운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책을 더 읽게 만들 수 있는지, 선행 연구로 증명된 어린이와 학생들의 독서 관심도를 증진시키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와 독서에 대한 관심을 지원하기 위한 가정과 학교 간의 협력에 대해 발표했다. 마거릿 머가 박사 역시 레이먼드 마 교수와 마찬가지로 소설책 읽기가 감정이입 능력 향상과 긍정적인 대인관계 형성에 이점이 있다고 밝히며 꾸준한 독서는 수학과 같은 다른 분야에서의 성취 역시 향상시켜주고 인지활성화 및 노화 방지, 장수에까지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또한 머가 박사 본인은 책을 읽지 않으면 공허하고 자신감이 없어지며 불안해지고 삶의 의욕이 사라진다며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내가 떠안은 문제들을 잊을 수가 있기 때문에 독서는 내게 크나큰 휴식”이라고 밝혔다. 특히 종이로 된 책을 읽을 때는 독해력이나 어휘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그중에서도 소설책), 전자메일이나 온라인상의 매체를 읽는 것은 독해력 향상과 부정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또한 아이들이 책을 더 읽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먼저 책을 열심히 읽는 등 모범이 되어야 하며, 편리한 접근성을 제공하고 즐거움에 초점을 둬야 한다며 책을 고르는 방법 역시 제대로 잘 알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 2018 책의 해 조직위원회 제공


일본 도쿄대 교수인 뇌생리학자 사카이 구니요시는 독서가 상상력과 사고력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두뇌를 만든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의 익명 콘텐츠는 진실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품질 면에서도 종이책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언어 능력과 두뇌 능력 향상을 위해 종이책 읽기를 권했다.  


ⓒ 2018 책의 해 조직위원회 제공


마지막으로 진화학자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의 발표가 이어졌다. 독서의 기원은 6000년 전 수메르 문명에서부터였으며 이와 같은 텍스트의 출현은 문명 축적을 가속화시켰다. 만약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린랜드 북서쪽 이누이트족의 사례처럼 문명이 전승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독서를 통한 가르침의 축적은 매우 중요하다. 집단 학습은 문명 건설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서는 사회적 학습의 형태로 진화한 것이며 문명(축적)의 엔진으로 작동했음을 알 수 있다. 독서력의 차이는 집단의 수준을 결정한다. 특히 독서는 공감력을 높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아주 유용한 행위다. 독자들의 유능함뿐만 아니라 따뜻함도 제고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독서를 하게끔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서는 우리에게 힘든 노동이다. 그러나 운동이 신체를 단련시키듯 독서는 뇌를 단련시키기에, 훌륭한 개인을 위해서도 필요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다. “무슨 책을 읽어왔는지가 그 사람이다”이라는 마틴 발저의 말대로 책을 읽는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읽는 사회가 되면 

주제 발표 후 이어진 지정토론 시간에는 유의미한 질문과 답변이 쏟아졌다. 김은하 책과교육연구소 대표는 레이먼드 마 교수의 발표를 듣고, 독서를 하면 성공한다는 것은 일리 있는 말이지만 혹 독자들이 개인적 성공에만 치우쳐 독서하게 될 것을 우려했다. 마 교수는 소설을 중심으로 발표한 본인의 연구 결과를 다시 한번 피력했다. 사람들에게 소설을 읽게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말은 아니라고 했다. 대신 그는 스토리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기회인 것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이 더 깊은 생각을 하고 공감하고 언어 기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마 교수는 자발적으로 여가에 하는 독서를 강조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독서 효과가 좋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디오나 영화, 티비쇼나, 게임을 통해 내러티브를 봤을 때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냐, 하는 질문은 실증적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고 했다. 


ⓒ 2018 책의 해 조직위원회 제공


김은하 대표는 독자를 대변해 마거릿 머가 박사에게 호주에서는 어떻게 질적으로 독해를 측정하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마거릿 머가 박사는 호주에서는 다양성을 중요시 여긴다고 답했다. 아이들은 관심사나 성격이 다 같지 않기 때문에 독서 취향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마거릿 머가 박사는 그런 것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독해력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물론 사지선다형 문제풀이 방식도 있지만 다양한 시험 방식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10대 후반인 아들 이야기를 하며 아들이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재창작하라는 과제를 받아왔다고 했다. 『맥베스』의 플롯을 완전히 이해해야만 수행할 수 있는 이 과제는 『맥베스』에 공감했던 것을 바탕으로 영감을 얻어 새로운 소설을 한 편 써내는 것이었다. 마거 박사의 아들은 미식축구를 소재로 해 『맥베스』를 재해석했다. 레이디 맥베스는 치어리더로 등장하며 주인공은 야심 때문에 파멸하는 것으로 썼다. 이런 식의 과제를 통해 호주에서는 『맥베스』라는 소설 한 편을 잘 읽어냈는지 테스트한다는 것이다. 


ⓒ 2018 책의 해 조직위원회 제공


사카이 구니요시 교수에게는 공통 질문이 쏟아졌다.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여도 뇌가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그의 발표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사카이 구니요시 교수는 얼마나 많이 읽느냐보다 독서의 질이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책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 생각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중에 나온 많은 책들 중에서 나에게 맞는 책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내가 무슨 책을 읽을지 찾는 것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카이 구니요시 교수는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는 것을 추천한다. 서점에서는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책을 찾는 일을 뇌가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표지와 내지를 직접 보고 만지고 읽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꽂히는 분야가 있을 텐데, 그것이 바로 뇌가 골라준 책이란다. 당신은 몰라도 당신의 뇌는 알고 있으니 뇌를 쫓아가라는 게 사카이 구니요시 교수의 주장이었다.


왼쪽부터 레이먼드 마 교수, 마거릿 머가 박사 ⓒ 2018 책의 해 조직위원회 제공


장대익 교수는 특히 독서를 하는 소년들이 과연 인기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우리가 단순히 책 읽는 소년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책을 읽었기 때문에 더욱 현명하고 공감력 있는 이들을 좋아하는 것일 거라고 답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독서가 일종의 스펙이자 누군가를 가려내고 선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그 기원을 더듬어보면 공동체적으로 지혜롭게 살기 위해 발명해낸 것이 책읽기다. 장 교수는 위대한 소설가들을 예로 들며 그들에게 왜 책을 읽는가 물어보면 대개 혼자가 아님을 재확인할 수 있어서, 라는 답이 돌아온다고 했다. 비록 현실엔 그런 상황이 없을지라도 책을 읽으며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상상해보고 대비해보는 것은 오직 스토리를 통해서만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간접경험을 통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느낄 수 있는 것도 독서의 이점이라고 말했다. 


ⓒ 2018 책의 해 조직위원회 제공


이번 2018 책의 해 제8차 책 생태계 비전 포럼은 독서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며 책읽기에 대한 이점과 함께 독서가 우리를 얼마나 따뜻하게 만드는지, 얼마나 공감하게 만드는지를 과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읽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사회에서 읽기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읽는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이러한 노력이 분명 한 발 전진하는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476호(2018. 11. 20 발행)에 게재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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