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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Sep 30. 2023

엄마는 왜 빈 일기를 남겼을까?

- 《빈 일기》

1. 오늘 소개할 책은?

오늘은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의 《빈 일기》를 소개한다. 여성의 목소리의 힘, 그리고 자연 세계의 비의(秘義)를 담고 있는 이 논픽션 회고록은 청취자 여러분들께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도록 격려하고 영감을 선사함과 동시에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이기도 하다. 어머니와 가족, 자연과의 관계, 여성과 환경 운동, 그리고 창작과 예술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다루고 있다. 이 에세이는 저자가 어머니의 빈 일기장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암 투병 중 돌아가신 어머니는 유언으로 매년 간직해 온 일기를 저자에게 주겠다고 말한다. “네게 내 일기장을 모두 남길게. 하지만 약속해야 해. 내가 가기 전까지는 일기장을 보지 않겠다고.” 저자는 그 약속을 지켰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의 일기를 읽을 시간이 왔을 때,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한다. 수십 권의 일기장이 모조리 비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어머니가 왜 수십 권의 빈 일기를 간직하고 또 죽기 직전 저자에게 남겼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이며 저자인 윌리엄스가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발견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2.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걸 넘어서 미스터리하기까지 하다. 대체 어머니의 ‘빈 일기’는 무슨 의미인가?

맞다. 대체 무슨 의미일까 궁금해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어머니의 ‘빈 일기’는 여러 의미를 지니더라. 일기장이 채워지지 않고 빈 페이지로 있는 것은 어머니의 ‘침묵’을 의미한다. 이는 어머니가 살던 당시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억압받았던 시대적인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또한 빈 페이지는 저자가 "우리가 아직 말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말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빈 페이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는 데 사용된다. ‘가능성의 공간’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침묵으로 채워진 어머니의 일기장 위에 자신의 목소리를 입힘으로써 빈 지면을 또 다른 가능성의 공간으로 탈바꿈해 낸다. 어머니가 죽음의 순간에 저자에게 물려준 ‘빈 일기’는 풍부한 은유와 흥미로운 역설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더불어 침묵에 이야기를 부여할 때 혼자만의 일기는 모두의 것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3. 듣고 보니 이 책에서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침묵’도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은데?

맞다. 저자는 르완다에서는 한 사람의 침묵이 사자의 으르렁거림으로 들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어머니의 빈 일기장 페이지를 바라보며 저자는 말한다. “어머니는 살아 있을 때도, 죽어 있을 때도, 자신의 목소리를 억누름으로써 내게 목소리를 주었다. 어머니는 대체로 조용하고 우아한 제스처를 통해 말했다. 편지 한 통. 밥 한 끼. 함께하는 산책.” 저자는 어머니의 침묵은 어머니가 그녀만의 방법으로 말하는 것이며 어머니는 당신 자신의 침묵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침묵이 어떤 경우에는 그 자체로도 중요한 표현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책은 여성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경험을 존중하면서도, 그들이 어떻게 침묵과 고요함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4. 그렇다면 목소리를 내는 것, 말하는 힘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

저자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그 목소리를 사용하며,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들리게 함으로써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윌리엄스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드러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실상 여성의 목소리와 말하는 힘은 여성들의 개인적인 경험, 가족, 사회, 정치 등의 여러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드러내는 것이 그녀들 스스로와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할머니인 ‘미미’를 사례로 들며 이야기하고 있다. 어머니가 침묵의 힘을 보여주었다면 할머니는 직접적으로, 정직하게 말하는 목소리를 주었다. 저자가 어릴 때부터 새를 좋아하여 여덟 살 때 탐조인으로서 동네 지부에 새 발견을 알리자 회장은 저자의 나이 때문에 “신뢰할 만한 목격”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그때 할머니는 저자에게 “넌 네가 뭘 봤는지 알잖아. 그 새는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어. 물론 너도 마찬가지고.”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할머니 덕분에 윌리엄스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느끼면서 새를 관찰하고 평생 생태주의자로 살아갈 수 있었다.


5. 마지막으로,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

이 책은 여성의 목소리와 자연, 가족, 정치 등에 대한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점이 얽혀있는 독특한 회고록이다. 따라서 환경과 여성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청취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강화하고자 하는 사람, 가족과의 관계와 여성성에 대한 고민을 가진 청취자,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자 하는 청취자에게 추천할 만하다. 또한 저자의 문장력이 굉장히 시적이고 미묘하며 아름답기 때문에 서정적인 스타일의 책을 좋아하는 청취자에게도 추천한다.



김미향 콘텐츠 미디어 랩 에디튜드 대표·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3년 4월 6일(목) KBS 라디오 <생방송 오늘 원주입니다> '책과 함께 떠나는 산책' 코너 진행 원고입니다

생방송오늘 원주입니다 | 디지털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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