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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May 16. 2023

책에 대한 책을 아시나요?

스승의 날이에요.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날이지요. ‘스승’은 가르쳐 이끌어 주는 사람을 뜻하는데요.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책’ 역시 우리를 가르치고,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어요. 마치 스승처럼 책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통찰력을 넓혀주지요. 스승의 날을 맞아 오늘은 우리의 스승인 ‘책’에 대한 책을 소개해요. 


이 책은 정치적·종교적으로 혼란스러웠던 15세기 유럽에서 필사본에서 인쇄본으로 변해가던 책의 역사를 담아냈어요. 피렌체의 서점과 서적 판매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지식의 여정이 어떤 방식으로 계속되었는지를 증언하고 있는 거지요. 


책은 그 자체로 ‘스승’이지만, 이 책에는 가히 ‘인류의 스승’이라고 불릴 만한 인물도 등장하는데요. 책을 만들며 피렌체에 지식을 전파해 ‘르네상스’(유럽 문명사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일어난 문예 부흥)라는 지적 발전에 기여한 베스파시아노 다 비스티치가 그 사람이에요. 15세기의 역사적 인물인 베스파시아노는 르네상스 피렌체의 저명한 서적상이었어요. 그는 작가와 학자, 독자를 연결하며 책의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교황, 왕, 귀족과 같은 권력자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고객에게 필사본을 공급했는데, 모든 책이 손으로 만들어지던 그 시절에 무려 1천 권이 넘는 책을 제작하고 판매했어요. 그의 서점은 인문주의자들의 토론과 만남의 장이 되었고요. 


《피렌체 서점 이야기》로스 킹 지음 l 최파일 옮김 l 출판사 책과함께 l 가격 3만5000원


이 책을 옮긴 이는 말해요. 


기행을 일삼는 화려한 르네상스 군주들과 실력자들, 교황들의 권력투쟁과 십자군, 엄숙한 신정정치 드라마 한가운데서도 책은 계속 쓰이고 만들어지고 읽힌다. 책 사냥꾼들은 전쟁의 불길 속에 사라질 위험에 처한 희귀 필사본을 구해내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판다. 번역가들은 좋은 소리를 듣기는커녕 오역 지적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고심해가며 고전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옮긴다. 필경사들은 부지런히 깃펜을 움직이며 보기 좋은 서체로 필사를 한다. 채식사와 세밀화가는 정성스레 금박을 붙이고 장식 그림을 그린다. 이들의 노고의 산물이 한데 합쳐져 책이 탄생하고 학문 공동체 전체가 그 지식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이 모든 것이 베스파시아노가 한 일이에요.


현재 베스파시아노의 흔적은 피렌체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해요. 그의 서점은 피자 가게가 되었고, 그의 이름은 산타 크로체 성당의 작은 명판에 새겨져 있을 뿐이래요. 베스파시아노가 만든 필사본이 유럽 전역에 널리 퍼져 있는 것과 비교하면, 그의 역할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거지요. 1788년에 출간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각주에 ‘피렌체의 베스파시안’으로 그 이름이 잠깐 등장할 뿐인데, 이처럼 각주로만 등장하던 실제 인물을 중심으로 책과 중세의 역사를 엮어낸 게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이에요. 


한편, 이 책은 점점 더 디지털화되는 세상에서 종이책을 손에 들고, 책장을 넘기고, 인쇄된 단어에 몰입하는, 독특한 경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어요. 이 책을 통해 책의 물성(물리적인 책의 유형적 특성) 역시 살펴볼 수 있으니까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책이 그저 단순한 정보 도구가 아니라 문화적·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소중한 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책은 문명의 풍요로움에 기여하는 지식이자 집단적 기억의 보고 그 자체이며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에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3년 5월 15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nie/2023/05/15/VAFKRJHBSRE7HIIMZO2FS5EIK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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