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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Jun 06. 2023

시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보물상자

《가기 전에 쓰는 글들》허수경 지음 l 출판사 난다 l 가격 1만6000원


이 책은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등의 시집을 낸 허수경 시인의 유고집(遺稿集)이에요 유고집이란 죽은 사람이 생전에 써서 남긴 원고를 엮어 사후에 출판한 책을 말하지요.


이 책은 시인이 쓴 시작 메모, 미처 시집으로 묶이지 않았던 열세 편의 시, 그리고 시인의 작품론과 시론 이렇게 3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모두가 버릴 것 없는 문장들이지만 특히 1부와 3부가 흥미로워요.


1부는 시인이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쓴 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7년 동안 시인은 초반엔 거의 매일같이 일기를 썼으며 훗날엔 드문드문 기록을 남겼다고 해요. 대단하죠? 그러나 빠짐없이 썼든 그렇지 않든 그 메모들은 시보다 더 시적으로 다가올 거예요. 이 1부와 3부를 통해서 시인이 생각하는 시란 어떤 모양인지, 시인이 어떠한 태도로 시 쓰기에 임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책 속 문장들을 통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게요. “어제 한 메모. 그 가운데 시라는 것은 사물과 세계를 온전히 해석할 수 없음의 불가능에 대한 운문이다." 이런 문장에서 시인이 생각하는 ‘시’란 과연 무엇인지 알 수 있고요.


“시가 널널해져야 한다. 실험의 시간은 지나가고 언어와 언어가 표현해내는 세계와의 관계를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벼려야 한다. 이제 언어와 대결하는 일, 세계를 사랑하는 일만 남았다"는 2011년 5월 14일의 일기에서는 시인이 어떠한 태도로 시 쓰기에 임했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또 2011년 5월 23일의 일기에 있는 “언젠가 어느 시인의 시집 해설을 쓰면서 삶은 삶에 먹히고 결국 남는 것은 시라고 했더니 정말 그렇다”는 문장을 통해. 기록의 중요성과 함께 시인이 예술가로서 어떠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고요.


마지막으로, “다만 삶에 대한 절박함인데 그 절박함을 인식하는 주체가 말을 통해서만 자신을 형성했다고 착각을 하는 동안 언어 예술의 긴장은 유지된다. 거의 죽음에 맞먹는 긴장 속에서 생겨난 말과 리듬만이 남고 한 인간이 죽음으로 들어갈 때"라는 문장 속에서 죽음을 앞둔 상황 속에서도 시인이 어떻게 삶을 사랑하고 견뎌내며 살아왔는지를 엿볼 수 있어요.  


3부는 시인의 작품론과 시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허수경 시인이 어떻게 시를 만들어 나갔는지를 알 수 있어요. 목차대로 읽어도 좋지만 1부와 3부를 바탕으로 2부에 실린 시들을 읽으면, 한결 새롭게, 허수경 시인의 작품을 읽어낼 수 있을 거예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3년 6월 5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6/05/20230605000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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