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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Jul 17. 2023

초여름 정취처럼 싱그러운 에세이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백수린 지음 l 출판사 창비 l 가격 1만4000원



소설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입니다. 살고 있는 동네와 집을 중심으로 작가의 일상을 조곤조곤 펼치고 있어요. 또 저자가 소설가이니만큼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인용하고 있어 이 에세이에 언급된 다른 책들을 계속해서 읽어 나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로, 독서 경험 자체를 확장시킬 수 있지요.


이 책을 쓴 백수린 작가는 소설도 쓰고 번역도 합니다. 지난 10월 이 지면을 통해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를 소개했는데요. 백수린 작가는 아니 에르노의 소설 《여자아이 기억》을 번역하기도 했어요. 번역 외에 소설로도 이 책의 저자는 한국 문학계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여름의 빌라》 등 한 번쯤 시간 내어 읽으면 좋을 소설들을 썼어요. 현대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젊은작가상 등 다수의 문학상도 수상했지요. 


이 책의 1부는 작가가 살고 있는 동네와 집에 관한 이야기로, 2부는 산책을 하며 느낀 단상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은 3부 ‘멀리, 조금 더 멀리’입니다. 성장하는 내내 자신만의 목소리를 갖지 못했던 저자는 리베카 솔닛이라는 미국 작가의 책을 읽으며 자신에게도 새로운 서사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느끼게 됐다고 해요, 리베카 솔닛과 그의 작품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어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 책의 저자뿐만 아니라 리베카 솔닛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요. 


동네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과 교류할 때 자신이 그에게 우월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털어놓는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을 사물화할 수밖에 없는 ‘소설 쓰기’의 한계와 그에 대한 백수린 소설가의 고민까지 살펴볼 수 있어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희망이에요. ‘작가의 말’을 보면 “시간이 많은 것들을 사라지게 하더라도” 저자에게는 글이 있어 “잃었던 것과 몇 번이고 다시 함께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문장을 살펴볼 수 있어요. 예전의 저자라면 “애써 노력해봤자, 소중한 것은 우리가 돌보길 그치는 순간 얼마나 쉽게 상해버리고 망가지고 마는지. 없애야 할 것들은 반면 얼마나 끈질기고 집요한 생명력을 지녔는지. 마치 비관적인 생각이나 낙담으로 기우는 마음, 미움과 오해, 깊은 곳에 숨겨둔 열등감처럼” 시들어버린 것들에 집중했을 거라면 “이제는 살아 있는 것들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는 거지요. “제한된 돌봄의 능력 바깥에서 태어나 세상의 빛을 본 것들. 내가 멈춘 그 순간에 뜻밖의 선물처럼 주어진 생명들”에 시선을 주는 작가의 문장들이 다정하게 느껴지고요. 더 이상 “‘내’가 전부이지 않은 세상”을 꿈꾸며 “내가 심지 않은 것들이 피어날 땅을 남겨두며 살고 싶다”는 작가의 문장들에서 ‘나’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희망하게 돼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3년 7월 17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nie/2023/07/17/S4NFYIBMDVHQFHGPNF7JO5YE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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