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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Jun 10. 2024

편견을 강화하는  잘못된 심리학 정보의 진실

《그건 심리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만》  최승원 지음 l 출판사 책사람집 l 가격 1만6800원



버트런드 러셀은 인간 본성을 통해 행복을 정의한 자신의 책 《행복의 정복》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흥미롭다는 이유만으로 신봉되는 일이 많다. 실제로는 도움이 된다는 증거가 별로 없는데도 말이다.”


이 책은 러셀의 말처럼 흥미롭지만 실제와는 달랐던 심리학에 대한 흔한 오해를 제대로 바로잡아 줘요. 저자의 말에 따르면 최근 MBTI를 비롯해 심리학적 개념이 재미 위주로 붐을 일으키면서 종종 잘못 해석되거나 잘못 전달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예요. 특히 저자는 “평생을 바쳐 공부한 심리학자보다 자신이 인간과 세상의 심리를 더 잘 안다고 자부하는 자칭 전문가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다양한 심리적 현상과 원리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을 쓴 거지요.


저자는 혈액형의 위세가 꺾이던 시점과 맞물려 MBTI의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요. 불과 몇 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구분하기 때문에 “문제가 많은 검사라는 심리학과 교수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나와 상대방을 간단하게 규정지어주는 유형 검사의 매력은 쉽게 끊기 어려운 약물과도 같”지요. 저자는 이 검사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지는 않아요. 다만 “과학적으로 검증된 도구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해요. 저자가 이렇게 말하는 건 유형 검사의 비약과 지나친 일반화, 그리고 낮은 신뢰도 때문이에요.


MBTI는 ‘내향성’이나 ‘외향성’에 대해 언급한 칼 융의 성격 이론을 기반으로, 인간의 성격이 선호축의 양극단으로 나뉜다는 가정 하에 만들어졌어요. 그러나 실제 이 검사를 실시했을 때 많은 이들의 점수는 양극단으로 갈라지지 않고 중간 점수에 모여요. 실제 점수가 중간치라도 내향성 문제에 ‘그렇다’라고 대답한 것에 비해 외행성에 답한 점수가 단 1점만 높아도 외향성(E)의 인간이 되어 버리는 거지요.


게다가 사람의 성향을 측정하는 검사라면 그 결과가 쉽게 달라지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는 MBTI 검사를 할 때마다 유형이 다르게 나온다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이는 실제 실험에서도 드러났어요. 미국의 저명한 성격 심리학자 제리 위긴스가 MBTI 검사 유형이 유지되는 정도를 반복적으로 검증해 보았을 때, 동일한 유형이 다음 검사에서 유지되는 경우가 고작 50% 남짓이었다는 거예요. 일관적이지 않고 가변적인 검사라는 거지요. 따라서 저자는 그저 즐거움을 주는 역할로만 MBTI를 이용하되, 내가 아닌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MBTI를 사용할 때는 보다 세심하게 주의해 달라고 말해요.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찾고 관계를 친밀하게 하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특정 유형에 대해 편견을 형성하고,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린’ 심리학적 개념도 있어요. 어른이 된 후의 사회적인 성공을 어린아이일 때 예측할 수 있다고 유명해진 실험이 있어요. ‘마시멜로 실험’이지요. 실험자는 아이를 실험실에 데려와 탁자 앞에 앉힌 뒤 마시멜로 한 개를 주고 “이거 안 먹고 참고 있으면 한 개 더 먹을 수 있단다”라고 말해요. 15분 뒤 실험자가 돌아왔을 때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은 아이는 실제로 한 개를 더 먹게 되지요. 10년이 지난 뒤,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의 성장을 추적해 보니 마시멜로의 유혹을 잘 참은 아이들이 유혹을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버린 아이들보다 스트레스 대처력과 인내력이 뛰어났고, 학업 성적과 미국의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SAT 점수도 더 높았어요.


어린아이일 때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할 아이를 예측할 수 있다는 이 실험 이후 마시멜로 실험을 비판하는 다양한 근거가 제시됐어요. “세상은 심리학 실험실처럼 여러 조건이 통제되고 각종 편법과 반칙이나 행운과 우연이 배제된 비현실의 공간이 아니기에 만족 지연 능력이 뛰어난 아이가 성공한다는 단순 공식을 그대로 적용하기엔 역부족”이라고요. 또 아이들이 고작 15분 동안 마시멜로를 먹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학업에서 높은 성취를 이루는 요인이 ‘자제력’이라고 말할 수 있냐는 비판도 제기됐지요.


뉴욕대학교의 타일러 와츠 팀은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7분으로 줄이고 실험, 10년 뒤 아이들의 학업 성적을 추적한 결과, 마시멜로를 참고 기다리는 것과 학업 성취의 관련성이 절반 가까이 떨어진다는 걸 확인했어요. 성적은 그토록 간단한 개인의 특성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지능, 상대적으로 더 유복한 가정환경 등으로 결정되는 거예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먹을거리가 늘 풍부하기 때문에 눈앞의 마시멜로 하나를 먹고 싶은 열망이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적을 수 있지요.

이처럼 이 책은 단순히 흥미로운 정보만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심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고, 잘못된 믿음과 편견을 바로잡아 줘요. 더 건강한 심리적 태도를 형성하고, 자신과 타인을 더 잘 이해하는 데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4년 6월 10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6/09/20240609016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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