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동해가 참 좋다. 예전에는 그 작은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 안달했었다. 영화를 볼 곳도, 미술품을 넋 놓고 감상할 곳도, 연극을 관람할 곳도 없는 게 답답했다. 그래서일까? 고3 시절 수시를 준비할 때 인서울이 아닌 대학에는 원서조차 내지 않았었다.
부모님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셨다. 지방국립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수 있는데 뭐 하러 먼 서울까지 가냐는 거였다. 아무래도 품안에 자식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못내 아쉬우셨을 테고, 어쩌면 고단할 큰딸의 서울살이를 미리 짐작하신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렸던 나는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랬다고 바락바락 우기며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서울에 안착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엄마 납골당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아파트가 여러 채 지어지고 있었다. 도로에도, 시내에도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데 온갖 브랜드의 아파트가 동해에 계속 지어지는 이유는 뭘까. 카오디오에선 코 끝 시린 겨울 공기를 닮은 인디음악이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
납골당에는 '정숙'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그 표지판을 볼 때마다 나는 코끝이 매워진다. 엄마 이름이다. 표지판을 똑바로 보고 걷다 그 표지판이 등 뒤로 사라지면 매화실이 나온다. 오늘은 누군가 불을 켜 두고 갔다. 고인들께는 어두운 곳이 좋을까, 불빛 환한 곳이 좋을까.
셋째 이모한테 인사를 하고 엄마한테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 있는 곳은 너무 춥지 않은지, 요즘은 왜 꿈에 잘 안 나오는지 묻고 오늘 서울 잘 올라가겠다고, 가서도 건강히 잘 있겠다고 인사를 했다. 꽁꽁 추운 겨울이니 천국에서도 립밤 두둑이 얹어두라고 속삭였다. 때로 엄마 생각이 너무 깊어질 때면 주위 사람들에게 립밤을 선물하곤 한다. 엄마가 좋아했던 니베아 벚꽃 립밤은 일본에서만 구할 수 있어서 니베아 라인의 립밤을 따로 챙겼다. 아마 사람들은 내가 왜 그들에게 립밤을 선물하는지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엄마를 추억한다. 엄마가 좋아하던 것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는, 나만의 방식으로.
까페묵호당에 갈랬는데 오늘도 휴무였다. 생딸기 오믈렛이 정말 먹고 싶었지만 어쩌다어달로 향했다. 새파란 어달리 바다가 통째로 보이는 카페에서 이슬아 수필집을 읽었다. 부드러운 카페의 원목 테이블과 히비스커스를 베이스로 뭉근하게 끓인 딸기차의 달짝지근한 상큼함은 어쩐지 그 책과 잘 어울렸다.
너무 말이 많다고 뭐라 했더니 삐쳐서 침묵시위를 하던 아빠와 화해했다. 정말 말이 없는데 술기운이 용기가 되어 입을 여는 아빠는 종종 본인만 기분 좋은 장난을 친다. 나는 아빠 장난을 잘 받아쳐서 대개는 괜찮은데, 때로 그 장난이 밉살스러울 때가 있다. 이러니 엄마가 화딱지가 났지, 하며 새삼 엄마를 이해한다. 조금 구겨진 마음을 잘 개키고 다진마늘과 미역을 들기름에 달달 볶아 깔끔하게 미역국을 끓였다. 아빠는 술기운에 농담 반 진담 반, 우리 부부가 서울 안 가고 동해서 같이 살면 좋겠다 한다. 정말 행복했다고, 주말만 있다 가지 않고 평일까지 있다 가 줘서 더 좋았다고, 이제 쓸쓸할 시간들을 혼자서 잘 정돈하겠다 한다. 사실 아빠는 계속 동해에 오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 아빠였는데 말로만 그랬지, 진짜 마음은 무척 보고 싶었던 거라고, 어젯밤에 불현듯 속마음을 고백했다. 아빠는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바람을 맞는다.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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