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증인> 리뷰
영화 <증인>은 정우성의 최근 행보와 연관된 이미지를 차용한다. 사회적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던 그의 실제 모습이 광화문 거리를 활보하고 민변의 일원으로 피켓 시위를 하는 영화 속 순호의 모습과 그대로 오버랩된다. 영화의 도입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광화문에서 시작해 광화문에서 끝나는 <증인>의 오프닝은 이 영화가 단지 법정드라마에 그치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심어준다. 그리고 그 기대처럼 <증인>은 미스터리의 외피를 차츰 벗어버리고 다름을 이해하고 넘어서는 소통이란 무엇인지를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사실 <증인>에 있어 미스터리는 그리 중요치 않다. 영화의 전반부에서부터 이미 관객은 범인이 누구인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다만 감독이 공을 많이 들인 듯한 법정 신은 중요하다. 고지능 자폐소녀를 바라보는 배심원의 눈이 곧 관객의 눈이 되기 때문이다. <증인>에서 자폐라는 '다름'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자폐로 표상되는 그 '다름'은 실상 내가 아닌 타인에게서 우리가 쉽사리 느낄 수 있는 다름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호와 지우(김향기)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숭고하다. 순호와 지우가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하고 순수한 눈빛에서, 그들이 점점 서로를 이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기적이나 다름 없다는 걸, 보통 날의 어느 순간 평범한 우리는 문득 깨닫게 된다.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가서 그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광화문은 우리에게 뜨거운 촛불의 공간이다. 광화문이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소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상징성을 지닌 장소다. 정감 있게 쌓아올린 순호와 지우의 이야기 사이사이, 시나리오는 촘촘한 질문을 군데군데 배치해놓았다. 그래서 극 초반에는 아리송했던 의문들이 점차 확실한 답으로 변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지우는 자폐 때문에 자신이 끝내 변호사가 될 수 없으리란 사실을 안다. 지우가 일종의 메타포로서 국민을 뜻한다면 어쩌면 우리도 사회의 증인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이 사회에 끝내 등을 돌리지 않는다면, 인식하지 못한 차별 아닌 차별들의 실체를 다시 본다면,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순호는 지우의 생일을 축하하러 간다. 앞으로 순호는 매년 지우의 생일을 축하해줄까? 보통의 영화였다면 아니라고 답했을 거다. 그런데 <증인>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 어쩌면 순호는 매년 지우의 생일을 축하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만의 보이지 않는 연대가 일종의 유사가족을 이루지 않을까, 기대됐다. 친밀하게 쌓아올린 유대감은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고, 지속적이고 제대로 된 관계는 한 사람의 두 발이 굳건히 땅을 딛고 서 있을 수 있게 만드니까.
지우는 순호에게 묻는다. 엄마는 늘 화난 얼굴이지만 날 사랑하고, 친구는 늘 웃는 얼굴이지만 날 이용하는데 아저씨도 날 이용할 거냐고, 당신은 좋은 사람이냐고. '좋은 사람'의 정의는 각자 다를 테지만 <증인>의 좋은 사람이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하여 또한 나를 포함,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전작 <영주>와 마찬가지로 나이는 어리지만 배우로서의 존재감과 깊이는 확고한 김향기의 연기가 돋보이며 정우성과의 케미가 의외로 잘 맞는 영화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등의 작품으로 착하고 단단한 영화를 만들어온 이한 감독의 작품이다. <증인>의 시나리오는 제5회 롯데 시나리오 공모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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