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라는 시선

- 넷플릭스 <페르소나> 중 '러브 세트'

by 김뭉치

<페르소나>는 4편 모두 스토리가 단순해 허무할 지경이다. 이 옴니버스 단편영화는 오늘날 탈서사의 경향을 충실히 따르며 그렇기에 각 영화의 스토리는 사실상 중요치 않다. 영화들은 전반적으로 이미지와 분위기 중심이다. 각각의 작품들은 아이유의 기존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배반한다.


Point. 차이와 변주

여성 감독인 이경미, 전고운, 그리고 남성 감독인 임필성, 김종관의 작품 세계는 대구를 이룬다. 영화에서 여성들이 마음껏 뛰어놀길 바랐다는 이경미 감독의 <러브세트>는 경쾌하고 에너제틱하다. 임필성 감독의 <썩지 않게 아주 오래>는 장르적 상상력을 자랑한다. 전고운 감독의 <키스가 죄>는 귀엽고 <밤을 걷다>는 차분하다. 이 배치는 향유자가 가볍게 영화를 즐기기 시작해 응시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게 한다.



아이유의 노래 <잼잼>이 모티프라는 <썩지 않게 아주 오래>의 스토리텔링 전략은 '표현'이다. 미스테리한 분위기, 자극적인 이미지가 주가 된다. 또한 그로테스크 판타지 호러 멜로라는 장르를 통해 국민여동생 아이유의 이미지를 원하고 바라는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는 듯하다. <키스가 죄>는 '어른, 남성, 권위와 폭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코미디의 장르로 가볍게 풀어낸다. 아이유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벗겨내 자연인 이지은의 모습을 끌어내려 한 듯하다. <밤을 걷다>의 김종관 감독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아이유의 어둡고 무거운 정서를 가져왔다. 이 영화의 스토리텔링 전략은 '감성'이다. 흑백, 롱테이크, 롱쇼트 등 인물의 실루엣만 보여주는 형식을 통해 <나의 아저씨> 속 지안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특유의 감성을 짧은 화면에 마치 사진집처럼 담아냈다.



실제로는 <밤을 걷다>, <썩지 않게 아주 오래>, <키스가 죄>, <러브 세트> 순으로 촬영했다는데 그래서인지 <러브 세트>에서의 아이유의 모습이 가장 눈에 띈다. 마지막 촬영이라 혼신의 힘을 다한 걸까.


<러브 세트>


이 영화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자두, 빨간색, 치마, 하얀색, 네트, 라켓 등의 선명한 이미지들이 떠오를 거다. 이렇게 영화의 스토리를 떠올리려다 보면 반사적으로 감각적인 이미지들이 떠오르게 만들어진 작품이 <러브 세트>다.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교차편집하고 연결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나가 서브 임팩트를 넣는 신 뒤 아이유가 자두를 깨물어 먹는 신이 나오는데, 그 사이는 거의 신음소리에 가까운 기합 소리가 메운다. 그러고선 땀 흘리는 아이유의 턱 밑, 피 흘리는 아이유의 다리를 슬로우모션으로 처리하며 시각적, 청각적인 자극을 향유자에게 전한다.


Point. 묘사&이미지

<러브 세트>의 스토리텔링 전략은 묘사와 이미지다. 두나가 이길지, 아이유가 이길지는 중요치 않다. 누가 봐도 기량 차이가 월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 이기느냐에 대한 긴장감은 전혀 없다. 자연히 극이 어떻게 전개될지, 인물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지에 집중해 영화를 보게 된다.



표면적 시나리오는 두나를 이기면 그녀가 아빠와 결혼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나 그 이면엔 두나에 대한 아이유의 동경이 자리 잡고 있다. 동경이라는 단어에는 질투도 함께 녹아 있다. 특히 18살 소녀는 자기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런 복잡미묘한 상태를 감독은 선명한 이미지와 사운드로 보여준다. 여기에서 향유자들은 생동감과 에너지를 느끼게 되며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게 된다.


Point. 제목이 던지는 메시지

'러브'에는 사랑이라는 뜻도 있지만 테니스에서 한 점의 점수도 얻지 못하는 걸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 속 두나와 아이유의 테니스 대결이 '러브 세트'다. 점수는 6:0. 아이유는 두나와의 테니스 대결에서 패한다. 그러나 작품 전체를 게임으로 본다면 결국 이긴 건 누구인가?



Point. 다양한 해석

<러브 세트>의 스토리텔링은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1. 동성애 코드

성숙한 여인으로서의 두나를 동경하는 아이유는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게 느끼지 못했지만 두나와 테니스 경기를 하며 질투 외의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서로 공을 주고 받던 중 아이유는 넘어지고 무릎에서 피가 흐른다. 이 작품을 성적인 코드로 본다면 그것은 첫경험을 상징하는 피이자, 둘의 테니스 경기는 성행위가 된다. "난 안 할 거야"라는 두나의 대사 뒤 퀴어의 상징인 무지개가 뜬다. 그 후 아마도 아이유의 서브일 것으로 생각되는 시원하고 경쾌한 사운드가 들리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2. 롤리타 심볼로서의 아이유를 소비하는 것은 누구인가


키워드 1) 자두

아이유는 끊임없이 자두를 먹고 카메라는 자두를 먹는 아이유의 모습을 클로즈업하는데, 자두에 함유된 '보론'이라는 성분은 여성 호르몬 중 하나인 에스트로겐을 엄청나게 상승시킨다고 한다. 두나 같은 성숙한 여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유의 바람을 상징하는 걸 수 있다.



한편 『라면을 끓이며』에서 김훈은 자두에 대해 "동물적 에로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자두를 손으로 만져보면 덜 자란 동물의 살과 같다. 이것을 깨물어 먹으려면 늘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고 한 적이 있다. 이 때의 자두는 연약한 소녀와 같다.


키워드 2) 피

이 해석에서의 '피'는 성숙한 여인으로서의 상징인 첫 생리다. 피를 흘리기 전 아이유는 질투에 사로잡힌 '소녀'였지만 피를 흘리고 난 뒤의 아이유는 두나와의 대결을 통해 점차 성장하는 '여성'이 된다. 신음 소리 같았던 기합 소리도 두 사람의 게임이 이어질수록 보통의 호흡 소리로 바뀐다.



키워드 3) 네트

카메라가 네트 뒤편에 넘어져 있는 아이유를 잡을 땐 네트가 가지고 있는 그물 이미지를 살려 마치 그물에 갇힌 물고기를 찍듯 촬영했다. 성인 여성에 대한 동경과 좌절을 직접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듯하다. 이후 두나가 아이유에게 공을 건네주면서 클로즈업하는데, 이 때 두나가 네트를 넘어온다.



키워드 4) 18세 아이유

아이유의 극중 이름은 아이유이며 18세 소녀로 설정되어 있다.



결국 아이유가 동경하거나 연대하거나 또는 연정을 느낀 것은 아빠가 아니라 두나라고 본다면 아이유를 롤리타 심볼로 소비하는 것은 아이유 자체가 아니라 바라보는 쪽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3. 엘렉트라 콤플렉스 : 질투하는 어린 소녀에서 어른으로의 성장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베이스는 근친 욕구다. 이렇게 본다면 '자두'는 선악과로 보이기도 한다. <러브 세트>에서 아이유가 아빠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잡는 앵글을 보면, 아빠에게 업혀 질질 끌려가는 그녀의 다리를 클로즈업 한다. 어쩌면 아이유가 아빠에게 성적인 애착을 느끼고 있다고 보인다.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장면은 아빠한테로 갈 때 아이유가 네트(선)를 넘는다는 점이다. 아빠에 대한 소유욕일 수도 있지만 성적인 코드, 금기를 넘음을 표현한 걸 수도 있다. 두나를 따라 하는 아이유의 신음 소리 같은 기합 소리를 듣고 아빠는 "다른 남자 앞에서는 그런 소리 내지 마"라고 말한다. 대사에 직접적으로 성적인 의미를 부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테니스 경기를 섹스로 본다면 아빠와 두나의 기합 소리는 신음 소리로 느껴지며 이를 아이유가 못마땅하게 지켜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이유와 두나가 본격적으로 대결할 때에 신음 소리에 가까운 기합 소리는 운동 경기 중의 호흡 소리로 바뀐다.


극중 두나가 양보하듯 "난 안 해"라고 말하자 아이유는 나지막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이후 아이유의 힘찬 서브 소리와 함께 영화는 마무리된다. 초반에 서툴던 테니스 소리와는 전혀 다르다. 서툴던 테니스에 점차 능숙해지는 걸 성숙으로 표현했다고 본다면,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하던 아이가 이를 극복하며 성숙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4. 여성 성 상품화 비판

아마도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나풀거리는 스커트에서부터 여성들의 하체로, 땀에 젖은 운동복 사이로 드러나는 몸매로 향할 듯하다. 카메라는 마치 훔쳐보듯 여성의 신체 부위를 근접해 보여주는 관음적 화면을 구사하며 여성의 성적 이미지를 강조한다. 하지만, 테니스 시합이 진행될수록 그 의미는 다르게 변한다.



작품 초반의 아이유는 어리광을 부리며 아빠의 관심을 유도하고, 남자친구를 조종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존적 여성성의 단면을 보이지만, 시합이 진행되면서 점차 아빠의 관심도 바라지 않고, 피가 흘러도 아파하는 내색조차 하지 않으며, 땀인지 눈물인지 구분되지 않는 얼굴을 하면서도 오로지 두나만을 향한 시선 처리를 보여준다. 그때부터 카메라는 땀에 젖은 몸이 아니라 땀 자체, 땀의 본질을 담기 시작하고, 남자들의 시선 역시 여성이 아닌 코트를 오고 가는 테니스 공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여성들의 대결을 아무 말 못하고 지켜보고 있는 남성들의 모습에서 이 영화의 주도권이 여성들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러브 세트>가 외부의 시선이라는 형태로 보여지는 선정성만으로 오해하기 쉬운 의존적 여성성과 주체성의 본질을 보여주려 함을 알 수 있다. 결국 시합이 끝난 후의 테니스 공은 배두나와 아이유, 두 여성을 이어주는 연대의 매개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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