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채식영화제를 다녀와서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채식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못한다고 하는 게 정확할지도 모르겠다(오늘도 비겁한 변명인가). 그런 면에서 9월 29일(토) 상영한 논쟁적인 다큐멘터리 <고기를 원한다면>은 나처럼 머리로는 지구를 위한 길이 뭔지 알지만 막상 실천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이었다.
감독이자 주인공인 마리엔은 채식 가정에서 태어나 날 때부터 채식을 했지만 다섯 살 때부터 고기맛에 흠뻑 빠진다. 뇌스캔 결과 섹스보다 고기를 더 좋아할 정도였다. 마리엔에게 육식은 탐미적이고 관능적이고 섹시한 모든 것의 총합이다. 그는 자라나는 자신의 아이 살리에게 고기를 먹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 직접 소를 총살하는 도축의 전 과정을 체험한다. 그가 도축을 하기 전후로는 마리엔이 잘 시즈닝된 스테이크에 탐닉하고, 노릇노릇한 통닭구이를 한 입 베어무는 등 고기를 즐기는 그의 모습이 등장한다. 방금 전까지 사랑스러운 눈으로 관객을 쳐다보던 소를 도축하는 과정에서 무자비함을 느끼다가도, 마리엔이 도취돼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면 그 맛이 떠올라 괴로워진다. 그리고 다시 도축 화면이 이어지면 방금 전까지 맛있겠다, 고 입맛을 다셨던 내 자신이 역겨워진다. 서울극장 바로 옆에는 하남돼지집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나는 더 이상 고기를 못 먹을지도 모르겠다, 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이 소주와 삼겹살을 먹는 모습을 지나치며 침을 삼켰고 또 다시 자괴감을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고기를 원한다면>이 노린 효과는 이런 것일까?
(아래 한 문단은 <고기를 원한다면>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고기를 평소보다 덜 먹자는 마리엔의 결론은 흔들리는 나 같은 비기너들에게 조금의 용기를 주기도 한다. 한편 이 다큐를 비틀어보자면 육식=성욕=욕망, 욕구의 도식이 들어맞는 터라 채식=수도승=욕망 없음의 도식으로 비춰질 우려도 있어 보였다.
GV에서는 전례 없이 훌륭한 감상과 질문들이 쏟아졌는데 5년간 채식을 한 중년 여성분에게서 채식인으로서 명절에 친인척들, 특히 시어머니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겪었고 이 다큐멘터리의 결론으로 더욱 가치관의 혼란을 느꼈다는 감상을 들을 수 있었다. 자취를 하는 분께서는 육식이 채식보다 식재료가 저렴한 사실을 지적하시며 자취인이 좀 더 저렴하게 채식을 하는 법은 무엇인지 물으셨다. 감자탕집을 경영하시는 사장님께서는 본인은 고기를 좋아하시지 않으나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고기를 섭취하게 되는 어려움을 토로하셔 인상 깊었다.
한편 9월 30일(일) 관람하게 된 또 다른 다큐멘터리 <나의 언덕이 푸르러질 때>는 프랑스의 한 지역에서 사회적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는데, 푸르른 자연경관과 흙을 통해 삶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평안함을 느꼈다. 그들은 가급적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농축업을 하고 있었으며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는 방식으로 조합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제 본 <고기를 원한다면>은 영화적 작법을 구사하며 작위적, 자극적으로 느껴졌던 반면 올리버 디킨슨의 <나의 언덕이 푸르러질 때>는 일반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리얼한 다큐멘터리의 모습 그대로라 소박함을 느꼈다.
방목하며 돼지를 키우는 돼지 아저씨는 돼지들 곁에 누워 한가로이 책을 읽고 풀을 씹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시인 같았다. 역시 유기농 방식으로 감자를 경작하는 감자 아저씨는 외계인과의 소통을 꿈꿀만큼 순박하고 귀여웠다. 그밖에 양배추 아주머니, 빵 아저씨 등이 등장했는데 다큐멘터리 속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사람도 풍광도 넉넉한 프랑스의 그 마을로 여행을 떠나고픈 마음이 들었다.
내가 못 본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을 텐데 이틀 동안만 영화제가 꾸려진다는 점이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상영 영화 리스트를 보며 채식영화제는 환경영화제와 무엇이 다른지 그 차이가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채식이라는 것이 환경을 보호하는 마음 안에 속한 것이라 그런 걸까?
지구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32년간 막 살아 왔으니 이젠 반성하고 성찰한 뒤 나도 무엇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주최측의 섬세한 배려 덕에 영화가 끝난 직후엔 항상 선물이 함께했다. 나는 비건마요네즈와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비건 코스메틱 브렌드 닥터 브로너스의 솝을 받았다.
고양이 말리의 카펫처럼 부드러운 털과 오르락내리락 하는 숨을 생각해본다. 말리가 없었다면 내가 이런 영화들에까지 관심을 가졌을까 싶다. 생명이 내게 주는 경이로움이 참으로 크기에, 나는 우리 곁의 생명들을 지켜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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