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오리지널 <러브 데스 로봇> 중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
어느 날, 과학자들의 실험에서 이상한 요거트가 탄생한다. 비상한 두뇌를 가진 요거트는 인류에게 풍족함을 주고 지구를 지배하게 되는데, 10여 년 뒤 인류에게 질려서 우주로 떠난다. 요거트 케이스 모양의 우주선을 타고. 인류는 이제 우린 버려졌다고 말하며 비관적으로 끝난다. 발칙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 유머러스한 내레이션을 바탕으로 6분 동안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에다 아기자기한 화풍으로 전개된다. 『노인의 전쟁』으로 존 갬벨 신인상을 수상한 존 스칼지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 존 스칼지의 원작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 전문 (↓)
https://whatever.scalzi.com/2010/10/02/when-the-yogurt-took-over-a-short-story/
현재 또는 근미래 정도로 추정되는 미국. 요거트가 오하이오주를 달라고 하자 미국의 정권 실세들은 요거트를 비웃는다. 그러나 요거트가 그럼 중국에 가겠다며, 중국에선 1개의 성을 주겠다고 했다고 말하자 마지못해 요구를 들어준다. 여기에서 미국 특유의 패권국으로서의 욕망과 불안함을 엿볼 수 있다.
요거트는 정부 부채를 1년 만에 사라지게 할 방안을 알려준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요거트가 예상한 대로(?) 요거트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 아마도 여기엔 자신들의 야욕, 사리사욕 등이 개입하지 않았을까. 역시 대단하신 분들이다. 오늘날의 정치인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오늘날 또는 근미래를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함으로써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 우리를 지배하는 게 누구라도 상관없다, 설령 요거트라도'라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등장인물 간의 대화 없이 의문의 내레이터(모리스 라마체)가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유머러스한 내레이션을 선보인다. 영화 속에 내레이터가 등장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빅 쇼트>, <바이스>가 떠오른다. 다른 점은 두 영화의 내레이터는 영화 중반부를 넘어가면 정체가 드러나지만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에선 끝까지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류 중 한 명으로 추정된다.
픽사 타입의 미학을 선보인다.
<러브 데스 로봇> 전체 에피소드의 인트로 음악과 비슷한 톤의 음악이 상황에 따라 적절히 변주되며 전개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여겨볼 것은 요거트의 캐릭터다. 외양은 귀엽다. 달콤하고 맛있을 것 같다. 그러나, 몸에 좋은 것은 쓰다는 진리를 기억하는가? 요거트의 성격은 교활하고 빈틈이 없다. 요거트가 오하이오주를 달라고 하자 정권 실세들은 요거트를 비웃는다. 요거트가 그럼 중국에 가겠다며, 중국에선 1개의 성을 주겠다고 했다고 말하자 그들은 마지못해 요구를 들어준다. 이후 요거트는 오하이오주에 자체적인 처리 능력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인 커들 통들로 가득 찬 공장을 건설해 진화하고, 미국의 국가채무를 1년 내에 없애는 방법을 고안한다. 요거트는 그 안을 미국 대통령에게 주면서, 만약 한 글자라도 틀리게 진행하면 경제적 재앙이 찾아올 것이라 경고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요거트의 말대로 하지 않았고 결국 1년도 안 되어 세게 경제는 붕괴한다. 요거트의 지배를 받는 오하이오 주만 제외하고.
이후 자연스레 요거트는 지구를 지배하게 된다. 사회는 안정적이고 인간들의 삶은 쾌적해졌다. 그러나 요거트는 우주로 떠나 버린다. "국가채무를 한 번에 청산할 정도로 고도의 지능을 가진 요거트가 과연 인류가 자존심과 자만으로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라는 내레이션을 통해 작품은 요거트가 지구의 통제권을 손에 넣고 우주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이런 일들을 다 꾸몄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자, 그렇다면 요거트는 인간의 속성을 들추는 장치는 아니었을까? 요거트는 우리에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묻는다. 우리는 우리를 구하기 위해 정말 자유의지를 버려야만 했던 걸까? 박테리아가 우리에게 연민을 느껴 우리가 살아남았다면, 우리는 이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일찍이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물은 적이 있다. 천사 미하일은 곧 죽을 걸 모르고 구두를 만들어달라는 귀족을 보며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자신의 육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임을 자각하는 것"임을 알았다.
톨스토이에 따르면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각하지 못하는 인류가 "자본주의 체제를 계속 홍보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적절히 보살피는" 권력자 요거트에게 우리의 자치권을 넘겨주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바이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지도자들과 요거트는 무엇이 다른가. 요거트는 급진적인 변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지배적인 위계질서를 더욱 엄격하게 집행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이 디스토피아는 요거트의 문화 독점에 따라 진행된다. 요거트는 인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어쩌면 요거트는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생존 그 자체를 원할지도 모른다. 인류를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고, 그를 통해 통제하는 것은 요거트의 생존을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요거트는 실상 우리를 돕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우주로 떠나기 위한 요거트의 계획을 위해 인류가 이용됐을지도 모른다. 결국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는 우리는 착취당하기 쉬운 존재들이며 따라서 스스로의 자유를 잃는 것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가 <러브 데스 로봇>의 한 에피소드라는 점을 고려하면, 요거트를 AI로 치환해 생각하는 것도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요거트는 외양만 귀여울 뿐, 실상 <캡틴 마블>의 수프림 인텔리전스나 <시간여행자>의 AI 지도자 디렉터일 수 있다. 그렇다면 지능이 출중해 인류의 지도자로 부상한 AI가 인류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의문을 품게 된다. 인류를 지배하는 것보다 포기하는 쪽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인공기술을 개발해 지각이 생긴다면 우리에게 최고의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AI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올지도 모른다는 상상 말이다(레이 커즈와일, 『특이점이 온다』, 2007). 그때에 모든 결정은 AI의 손에 달려 있으므로 우리는 결코 일을 하거나 스스로 선택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요거트의 지배 하에 행복한 인간들처럼.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요거트, 혹은 AI는 어쩌면 이해할 수 없으므로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그 무엇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유발 하라리의 미래 예측대로(기술과 권력의 관계을 천착한 뒤 그가 매린 결론은 파시즘의 귀환이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알고리즘이 실행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구글, 넷플릭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가치 있는 정보를 제안하고 있다.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가 던지는 질문들이 오싹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요거트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문화적 은유다. 본질에 가장 닮아 있는 은유.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진리를 설명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모방'을 이야기했다. 모방은 형이상학적 사유가 생산해내는 진리에 대한 담론이 구체화되는 하나의 방식이자 동시에 그 담론이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낯설어지는 것을 조정해주는 일종의 수사적 방식이다. 데리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모방'을 형이상학적 사유의 원리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은유'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로 문학 외적인 담론들을 다루는 수사적인 효과의 수단으로써 말이다. 전반적으로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의 현실 풍자는 '터무니 있다'! 유쾌한 감성 뒤로 곱씹게 되는 풍자는 알싸하고, 던지는 질문들마다 충분히 생각해봄직하다. 기이한 유머로 가득 찬 6분가량의 짧은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이렇게 큰 철학적 의문을 제기하는지 놀랍다.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을 노렸던 연구원이 요거트를 빼돌려 냉장고에서 숙성시키는 바람에 초지능 요거트가 탄생했다. 그렇다면 또다시 우연이 겹쳐 또 다른 요거트를 만들어내는 방식도 가능하지 않을까? 요거트의 빈자리는 누가 채울 수 있을까? <인터스텔라>의 키피(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는 아직도 유효한가?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맞이해야 할 것인가?「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러브 데스 로봇>의 18편을 모두 보았다. 목적성 없이 지나치게 선정적인 에피소드들도 있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으나 즉물적인 이미지들이 영화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점쳐보는 재미를 주었다. 전반적으로는 실존적이고 묵직한 질문이 가득했다. 시리즈 중 가장 짧은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마저 철학 코스 요리를 선보인다. 이런 류의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 <러브 데스 로봇>의 18편에서 보이는 인간들은, 그들의 현재와 미래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1885년, 톨스토이가 던진 세 가지 질문을 다시 던지고 답해야 한다. 134년 전 미하일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고, 사람에게는 자신의 육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임을 자각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했다. 2019년의 현대인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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