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땐 몰랐을까요. 늘 죽음을 보면서도 왜 원장님껜 늘 미루기만 했을까요. 내일, 다음, 오늘이 아니어도 언제든."
드라마 <라이프> 10회에 나오는 예진우의 내레이션이다. 대학병원의 응급의학과 의사 예진우는 아버지 같은 원장이 죽자 슬픔에 겨워 늘 미루던 삶을 반성한다. 진우처럼, 이 진리를 미처 내가 깨닫기 전, 나의 엄마는 떠났다. 늘 가구처럼 내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죽음은 충분히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생텍쥐페리의 표현대로라면 "두 번째로 탯줄이 끊어진 셈이었다. 두 번째로 매듭이 풀어진 것이다. 한 세대와 다음 세대를 잇는 매듭 말이다." 엄마가 없는 나는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했다. 그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건 온 세계를 다시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돌아보면 세상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하고 자상하게 보살핀다고 생각했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던 건 애거사 크리스티의 말마따나 '다정한 무심함'이었던 것 같다. 나는 딱 적당한 온기로 엄마를 대했던 것이다. 부끄럽게도 엄마가 돌아가시자 슬픔과 함께 해방감도 밀려왔다. 나는 엄마에게 의존하고 있었지만 엄마도 내게 의존하고 있다고 여겼고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와 "긴 병에 효자 없다"며 간병살인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엄마와 나, 우리 가족은 죽음도, 삶도 모두 두려웠다. 그러나 엄마에게 있어 아픈 몸으로 사는 것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가 돌아가신 뒤, 겉으로는 멀쩡하게 웃으며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을 살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아픔을 표현할 수 없었던 나의 속은 곪고 있었다. 죽은 시간의 더께가 머리 위에 쌓이고 자책의 무게가 어깨 위에 얹어졌다. 그래서일까. 꿈을 꾸었다. 꿈속에선 엄마를 만날 수 있었고 엄마가 있던 꿈에서 헤어 나오면 다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곤 했다.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삶이었지만 그래도 꿈이 있어 매일의 하루를 제정신으로 여밀 수 있었다. 출근길 버스에서, 아득하게 멀어지는 꿈들을 붙잡아 스마트폰으로 기록했다. 이리저리 부유하는 꿈속 엄마의 기억들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매거진은 그렇게 휘발되기 직전 남겨진 엄마의 꿈들로부터 탄생했다.
꿈을 쓰며 '노란 우비'에 대해 생각했다. 코넬대학교의 인간발달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매튜 벨몬테는 ‘노란 우비’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나를 감싸고 덮어준 우비는 내 의지를 꺾고 그것을 입힌 어머니의 승리를 의미했다. 우비는 내가 어머니에게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끝없이 상기시켜주었다. 우비는 의식적으로는 자각할 수 없는 본질적인 방식으로 어머니를 상징하게 되었고, 내가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했듯이, 나는 우비 또한 사랑하고 미워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숨 막히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저절로 부모에게서 멀어진다. 그러나 삶에 대한 두려움, 무관심한 세상에서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시금 부모의 보호를 갈구한다. 우비에는 이러한 죽음과 삶의 모순이 있었다.”
존재 자체가 삶과 죽음이었던 엄마. 엄마는 나에게 삶만 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바로 서는 법, 씩씩하게 걷는 법, 편히 눕는 법을 나에게 알려 주었다. 피를 돌게 하고 살을 찌우는 음식들을 만들어 먹였고, 사랑스러운 말을, 깊이 있는 지식을 가르쳐 내면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엄마는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나를 환영해준 손길이었다. 그녀의 커다란 따뜻함과 다정함은 32년 동안 나의 세계를 촘촘히 채워주었다. 무엇보다 엄마는 여성으로서 세상에 지배당하지 않고 늘 당당한 나 자신으로 살길 당부했다. 그 말에 힘입어 나는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실은 그 빛나는 32년이 엄마의 희생에 빚지고 있었음을,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야 아프게 깨달았다.
죽음은 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감히 푸코처럼 나는 "사람들이 늘 보고 있으면서도 그 실태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 혹은 놓치고 있는 것을 약간 시점을 비틀어서, 그렇게 함으로써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생의 우울과 폭력, 나이 듦과 병듦, 장애와 학대, 냉대와 모멸, 지척에 있는 죽음과 그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는 남겨진 이들의 삶, 그리고 누군가의 딸이자 누이이자 아내이자 엄마이자 여성이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 존재 그 자체인, 우리 곁의 가장 소중한 누군가를.
그래서 나를 비롯해 엄마 곁의 사람들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퇴근 후 조용한 내 방에서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쓰는 일은 쉽지 않았으나 그 글을 쓸 때만큼은 엄마가 곁에 있는 듯했다. 그리고 엄마가 엄마이기 이전의 시절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엄마의 세계는 엄마가 살아 계실 때 들은 걸 바탕으로 최대한 사실적으로 구성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역시 그 자리에 실재하지 않았기에 메워야 할 수밖에 없는 간극은 상상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쓰는 동안 많은 이들의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그중 한 분은 엄마가 남겨놓은 사랑이 있으니 곁에 없어도 늘 함께하는 거라는 이야길 해 주셨다. 나와 동생의 엄마였고 아빠의 아내였고 이모들과 외삼촌들의 누이였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막내딸이었던, 최 여사 정숙 씨. 엄마는 죽었지만 영원히 살 것이다.
이제 이 매거진을 읽는 여러분이 당신들의 엄마에 대해 기록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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