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간 웹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뭉치 May 26. 2019

혼자 놀기를 즐기는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 리뷰

재미의 시대다. 포스트모던의 패러다임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며 이제 우리는 감성과 함께 재미를 추구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근대에 이르러 ‘일’이 삶의 중심이 되면서 생산이 결여된 놀이는 무가치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결국 18세기 이후 문화에서 놀이적 요소는 점차 소멸하고 놀이 욕구의 억압은 곧 도덕적 자부심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관에 대해 “축제와 환상을 저해하는 인간관”이라고 지적했던 하비 콕스의 말대로 오늘날의 사람들은 다시 놀이에 열광하고 있다.


효율성이 중시되는 현대사회에서 놀이가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무목적의 합목적성”을 이야기한 칸트의 미적 경험론이 떠오른다. 사회에서 우리의 행위는 모두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반면 놀이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는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인 놀이의 이러한 특성은 공동체의 놀이에서 비롯된 예술의 기원과 맞닿아 있다. 또한 효율이 우상화되고, 인간의 존엄성과 참된 놀이를 위한 자유와 창조성의 여지가 소멸될 때에 인간 본질이 훼손된다는 호이징하의 주장도 떠오른다. “인간은 놀이하는 한에서만 완전히 인간”이라는 쉴러의 말도 생각난다.


특히 현대에 이르러 ‘게임’은 놀이의 소비자가 곧 놀이의 참여자가 되는 대표적인 장르로서 그 의미가 있다. 플레이어들은 자발적으로 게임하며 그동안은 현실의 시간이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느낌을 받는다. 게임에는 장소의 격리성과 시간의 한계성이 있기 때문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지만 플레이어들은 무엇인가를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완전한 자유를 맛본다. 어쩌면 이 완전한 자유의 경지는 우리네 삶이 추구해야 할 궁극의 지향점일지 모른다. 호이징하도 놀이하는 인간을 ‘호모루덴스’로 명명하며 놀이가 인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천명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게임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웹툰을 즐기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효율성이 지배하는 현실의 구속적 시간을 잠시 벗어나 놀이에 의해 인간성을 회복하는 자유로운 환상의 시간을 맛보는 것이다. 놀이를 회복하는 일은 곧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나는 위대한 과제를 대하는 방법으로 놀이보다 더 좋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했던 니체나 “인간의 삶은 본능적 생존이나 이성적 계산 이상의 무엇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놀이며 예술”이라는 가다머의 말은 그 방증이다.


오늘 살펴볼 현대판타지 장르 게임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 은 이러한 맥락 하에서 볼 때 더욱 재미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무협과 판타지, 게임 룰 등이 뒤섞이며 현실과 게임이 접목된 가상의 세계관을 자랑한다. 이미 완결된 추공의 동명의 웹소설이 원작이다. 웹소설계에서 인기 있는 ‘먼치킨물’이다. 먼치킨munchkin이라는 단어는 소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난쟁이 ‘먼치킨’에서 유래되었다. TRPG 게임이나 웹소설 등에서는 ‘룰을 이용해 다른 캐릭터와 협력을 하지 않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며 게임 진행을 방해하는 게이머’로 통한다. 거의 신급으로 모든 걸 ‘혼자’ 해결하는 『나 혼자만 레벨업』의 주인공 성진우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짜릿함을 안겼다. 또한 주인공이 계속해서 성장하므로 독자 역시 함께 성장하는 느낌을 주며 뭉클함을 안겼다. 그 외에도 수많은 복선과 죽음 등의 요소가 이 작품에 매력을 더했다.


『나 혼자만 레벨업』, 추공 지음,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2016


「나 혼자만 레벨업」 웹툰은 현재 카카오페이지 최고의 인기 작품 중 하나다. “100만 명 이상이 감상했거나 100만 달러 이상을 기록한 믿고 보는 대세 작품”을 카카오페이지는 ‘밀리언페이지’라고 명명하는데, 「나 혼자만 레벨업」은 이 밀리언페이지 작품들 중 하나다. 첫 편부터 5편 무료이며 기다리면 3일마다 무료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원작 웹소설 역시 상당히 인기가 있었고 파피루스에서 종이책도 출간되었다. 웹툰은 이 웹소설의 인기를 등에 업고 성황리에 연재 중이며 많은 독자들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를 염원할 정도로 수준 높은 작화를 자랑한다.


「나 혼자만 레벨업」, 장성락 만화, 추공 원작, 기소령 각색, 카카오페이지, 2017∼, 메주 목요일 연재


하나의 장르에서 팬덤이 만들어지면 팬들은 콘텐츠가 또 다른 장르에서 재탄생할 때에도 그를 따라 함께 이동한다. 또한 기존 팬덤 외에 그 장르의 팬들이 추가되며 팬덤은 더욱 커진다. 「나 혼자만 레벨업」 웹툰의 이러한 사례는 성공적인 원 소스 멀티유즈(OSMU)의 예를 보여준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지난 3월부터 일본의 웹툰 서비스 앱 ‘픽코마’에서도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지난 3월부터 일본의 웹툰 서비스 앱 ‘픽코마’에서도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웹툰의 주인공 성진우는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사연 있는’ 캐릭터다. 저급 던전에서조차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하는 만년 E급의 헌터 성진우는 다른 차원과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인 게이트 너머, 던전에서 마물을 사냥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인류 최약의 병기’이지만 어머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선 헌터를 그만둘 수 없는, 눈물 나는 사연의 주인공이다. 그런 성진우는 기이한 던전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다. 그러나 그날 이후 성진우의 눈에만 보이는 퀘스트 창이 뜨기 시작한다. 퀘스트를 따라 수련하고 몬스터를 사냥하면 레벨이 오르는 것. 그래서 제목이 ‘나 혼자만 레벨업’이다.


ⓒ 카카오페이지


성진우가 최약체 헌터에서 최강 S급 헌터로 각성할 거라는 줄거리는 사실 프롤로그만 봐도 다 알 수 있다. 그 정도로 전개가 빠르다. 게다가 웹소설이나 종이책을 본 독자라면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을 거다. 그럼에도 이 웹툰이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카카오페이지


일단 앞서도 말했든 수준 높은 작화가 가장 큰 이유다. 매화 펼쳐지는 멋진 연출을 보다 보면 가슴이 떨릴 정도로 감각적이다. 또한 「나 혼자만 레벨업」 웹툰이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를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도 인기 요인 중 하나다. 거기에 더해 소설 당시에는 흘러가듯 언급된 송치열, 이주희 같은 인물도 웹툰을 통해 잘 알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고 친절하다. 마치 이주희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소설 팬들을 위로하는 것 같다.



또한 이 웹툰은 소설을 읽으며 스토리를 이미지로 상상했던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대개 원작소설이 웹툰, 영화 등으로 이미지화, 영상화되는 경우에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 향유자들의 상상 속 이미지와 얼마나 일치하느냐 하는 문제다. 그러나 이 웹툰은 거의 대부분의 원작 독자들이 상상 그대로라고 칭찬하며 열광하고 있다. 시원시원한 액션을 보는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오늘, 효율성이 지배하는 현실의 구속적 시간을 잠시 벗어나 「나 혼자만 레벨업」을 보며 자유로운 환상의 시간을 맛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로 「나 혼자만 레벨업」 측으로부터 아무런 사례謝禮도 받지 않았음을 밝힌다. 그저 “인간은 놀이하는 한에서만 완전히 인간”이라는 쉴러의 말이 떠올라서 하는 추천이다.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488호(2019. 05. 20 발행) '리뷰' 코너에 게재한 글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2115181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hl=ko


매거진의 이전글 탈서사의 시대, 웹툰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