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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Jun 07. 2019

'절대 고전'의 왕좌를 탈환하라

현재 50대인 필자의 ‘독서의 역사’를 잠깐 소개할까 한다. 세계 명작 동화 전집으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필독서 목록으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고전이라는 이름의 책들을 소개받으며 대학을 다녔다. 누군가 거칠게 골라놓은 것을 따라 읽느라 늘 허덕였다. 책이 재미없으면 내가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이 나

이에는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는 기준은 학생은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명제만큼이나 공고했다.


시간이 흘러,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책을 골라주는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겼다. 1990년대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세계 명작’을 꼭(!) 읽어야 한다고 강요해서 이를 말렸던 기억이 있다. 그들이 그 책에 집착하는 이유는 ‘세계 명작’이라는 네이밍과 자신이 들어본, 알고 있는 제목이라는 정도였다. 2010년대에 들어선 지금도 어른들은 여전히 세계 명작의 이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아직까지도 ‘그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그들을 말리느라 바쁘다. 한 번은강의 중에 하도 답답해서 그중 어떤 책을 읽으셨냐고 물어보았다. 선뜻 어떤 책을 읽었노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한테 읽어야 한다고 누가 말했지만 읽지 않은 책, 그렇지만 아직도 유명하니 아이들은 읽었으면 하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독서모임을 만들면, 내게 읽을 책 목록을 정해달라는 요청을 하고는 한다. 처음에는 신나서 목록을 정해

주었다. 많은 모임이 정해진 목록을 다 읽기도 전에 흐지부지되었다. 이제는 스스로 목록을 만들어보기를

권하고 있다. 모임 구성원의 욕구에 따른 책들을 찾아보는 경험이 책을 읽는 경험만큼 중요한 훈련 과정임을 강조한다. 실패도 하고, 누가 이런 책을 권했냐고 서로 질책도 하는 과정에서 책 보는 눈이 생겨날 것이

다. 책 보는 눈을 스스로 키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이 출판사는 늘 좋은 책을 냈었는데, 이 작가는 늘 믿을 만했는데, 이 사람이 권하는 책은 늘 그럴듯한데, 학교에서 권하는 책인데 어련히 좋겠지, 교수님이 좋다는 책이니까. 곧이곧대로 따르려는 착한 마음을 버리자. 그 책을 읽는 나의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 3000만 명이 좋은 책이라 말해도 내게는 좋지 않을 수 있고, 3000만 명이 별로라 말해도 내게는 좋을 수 있다. 그럴 때 절대 ‘내가 잘못했나 봐, 내가 모자란가 봐’ 자책하지 마시길 바란다.


‘스테디셀러, 고전, 권장도서.’ 이런 이름을 달고 있는 책은, 독자 입장에서는 권력이다. 우리는 권력을 의심하지

않다가 잘못되었던 경험을 너무도 많이 겪었다. ‘남들 하는 대로 하면 중간은 간다’는 우민화 교육은

독서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책을 읽었더니 이상하다. 그런데 나만 그런가?’라는 걱정, ‘읽지 않았지만 남들은 다 읽은 것 같으니 나도 읽은 척하고 권해야지!’ 하는 비겁함, ‘남들 다 읽으니 고민 없이 읽어보자!’ 말하는 안일함, ‘이 책 이상하다. 그런데 그걸 말해 뭐하겠어. 나만 다시 안 읽으면 되지!’ 생각해버리는 무성의. 이런 생각들이 모여서 ‘스테디셀러, 고전, 권장도서’의 권력은 점점 더 공고해지고 있다. 30년째, 50년째 그 자리에 있는 어떤 책들. 읽는 이는 없고 권하는 이만 있는 어떤 책들에 대한 의심을 시작해야 한다.

 

- 김혜원 <기획회의> 편집위원,  「'절대 고전'의 왕좌를 탈환하라」,  <기획회의> 489호 Intro, 2019년 6월 5일 발행 예정





편집후기


489호 <기획회의> 이슈는 '스테디셀러, 문제는 없나?'다. 김혜원 편집위원께서 이 이슈에 맞춤인 인트로를 보내주셨다. 구구절절 다 맞는 말씀이라 하나도 버릴 게 없다. 명확하고 힘 있는 문장들. 이제 우리는 덮어놓고 권력을 의심해야 한다. 권력에 당하지 않을지어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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