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른다

- feat. 연예인 꿈, 죽은 엄마 꿈, 버스 꿈

by 김뭉치

이른 12시 40분에 나는 버스를 타기로 되어 있었다. 버스대합실에 앉아 있는데 낯익은 남자가 반갑게 웃으며 다가온다. 성제 오빠는 본인이 군인이던 시절, 버스대합실 물품보관함에 무언가를 맡길 때마다 마치 작전처럼 얼굴을 보곤 했던 걸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기억난다고, 그땐 늘 우리 엄마도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나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의 모습이 선연했다.


오빠는 그때부터 주위에서 나와 연애하라는 말을 곧잘 하곤 했다고 웃었다. 엄마 생각을 하던 나는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아 멍해졌다. 그...랬구나? 응, 하고 대답하며 오빠는 그래서 말인데, 로 시작하는 고백을 꺼내 들었다. 당황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상하게 딴생각에 잠겼다. 내 머릿속에선 석양이 내리고 있었고 방둑에 서 있는 남녀의 뒷모습이 실루엣처럼 그려졌다. 대답 안 해줄 거야? 오빠는 말했다.


그 순간 다른 지역에서 고속버스를 먼저 타고 온 동생이 "빨리 타, 빨리"라고 소리쳤다. 나는 오빠를 바라보며 "오빠 나 지금 가야 돼, 버스 타야 하는데 돈이 한 푼도 없네. 돈 좀 빌려줘" 하고 말했다. 오빠는 당황해서 지갑을 통째로 줬고 나 역시 당황한 나머지 그 지갑을 그대로 들고 탔다. 동생이 내가 버스를 못 탈까 봐 십년감수했다고 말했다. 시각을 보니 40분이었다. 내가 버스를 타려던 시각이 12시 40분이었나, 1시 40분이었나. 나는 헷갈렸다. 손안에 쥐어진 오빠의 지갑을 보고도 망연자실해졌다. 돈도 없이 오빠는 어떻게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며 나와 동생, 오빠 모두 휴대전화가 없는데 어떻게 연락해 다시 지갑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 순간 나와 동생의 곁으로 오빠가 휘적휘적 걸어왔다. 오빠, 어떻게...? 아. 잘됐다. 지갑 가져가. 오빠는 비어 있는 오른쪽 줄 좌석에 털썩 주저앉으며 웃었다.


우리는 동생이 잡아놓은 숙소로 향했다. 복층 구조의 커다랗고 낡은 집이었다. 1층에도 커다란 침대가 둘, 복층에도 커다란 침대가 둘 있었다. 1층에서 다 같이 누워 잠들기 전에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러다 내가 잠깐 복층 구경을 하러 다녀온 사이 집안은 시끌시끌해졌다. 동생이 파티를 연 것이다. 동생의 친구들이 모두 모여 집안을 가득 메웠다. 나는 마당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 더듬더듬 풀들을 두드렸다. 초록은 무심했다.



꿈에서 깬 것은 새벽 세 시였다. 나는 성제 오빠라는 사람을 모른다. 오늘 적은 모든 일들이 내게 일어났던 적이 없다. 나는 얼굴을 씻고 의자에 앉아 페터 한트케의 「왼손잡이 여인」을 읽었다. 새벽 네 시 사십 분엔 어렴풋하게 아침이 밝았고 새들이 울었다.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hl=ko


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http://bitly.kr/PH2QwV

http://bitly.kr/tU8tzB


『엄행다』 북토크가 7월 25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성산동 골목서점 조은이책에서 열려요.

신청은 chouni.chaeg@gmail.com으로 메일 주시거나 070-7617-6949로 전화 또는 문자 주시면 됩니다.

저만의 이야기보다는 우리들의 엄마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저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댓글로 남겨주시길요.

뵐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엄행다』 북토크 신청 : 성산동 골목서점 조은이책 https://www.instagram.com/p/BzflCz2lnTc/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잃어버린 엄마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