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내염과 임파선염과 편도염이 동시에 찾아왔다. 입안이 퉁퉁 부었고 목과 편도도 퉁퉁 부어 온몸에서 열이 났다. 몸은 천근만근이라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했다. 회사에는 반차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스타벅스 유리창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후배들을 보았다. 주상복합인 우리 아파트 1층에 있는 스타벅스였다. 그들이 바라보는 대상은 회사의 대표. 대표는 스타벅스에서 얼음을 가득 넣은 유리잔에 콜라를 넣어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와 동생은 이불을 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와 동생과 와이파이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했는데 엄마가 에그를 가지고 싶다고 했다. 그냥 데이터 쓰면 되는데 왜 에그를 사고 싶냐고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가지고 다니는데 나만 없으니까 뭔가 작아져서…"
끝내 말을 잇지 못하는 엄마를 보니 2만 원짜리 에그가 뭐라고 우리 엄마가 저렇게 위축돼야 하나 싶어서 사주겠다고 했다. 엄마가 뛸 듯이 기뻐했다.
그 순간, 팀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내가 다시 회사로 왔으면 한단다. 정말 몸이 너무 아파서 움직이기조차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했다.
'엄마한테 에그 사 주기로 했는데…'
결국 엄마한텐 에그를 사 주지 못했고 일하러 가야 하니 동생에게 나 대신 엄마와 함께 가 에그를 고르라 했다. 일하러 가는 길에 돈을 입금하겠다고.
회사를 가려면 서울로 가야 했는데 우리 집은 평창이었다. 아까 회사 사람들은 어떻게 우리 집 1층 스타벅스에 모여 있었던 거지? 의문이었다.
서울행 버스를 타려고 평창 터미널로 가는데 바깥은 이미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한 걸음 떼기도 힘든 몸 상태로 나는 안간힘을 써 가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다. 오늘은 16일, 인쇄소에 데이터를 넘겨야 한다. 오늘 CTP를 넘기지 못하면 발행일을 맞출 수 없다. 그러나 시각은 오후 네 시였고 버스는 오지 않았고 설사 지금 회사로 버스를 타고 간다 해도 가는 데만 두 시간이 넘게 걸릴 것이었으며 회사에 도착해선 밤을 새워 마감해도 데이터를 넘길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오늘 꼭 넘겨야 하는데….'
그러나 이렇게 힘들고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고 버스도 오지 않을 거였다면 차라리 집에서 노트북으로 CTP를 보는 게 훨씬 나았던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심지어 이번 호는 페이지도 잡지가 아니라 단행본급이다. 207쪽을 언제 편집한단 말인가. 나는 집에 두고 온 엄마와 동생이 걱정되었다. 그 둘이 보고 싶었다.
꿈에서 깨고 보니 모든 게 그날과 비슷하다. 내 삶은 늘 제자리다. 폭우 속에서 애써 한 걸음 한걸음 내디뎌 보지만 결국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꿈속 나의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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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