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신발을 찾는 나의 여정

by 김뭉치

어릴 때 나는 양발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열한 살의 어느 날, 나는 학교 선생님이 문집 만들기를 도와달라고 하셔서 주말에 학교로 향했다. 선생님이 소집한 몇 명의 아이들과 문집 제작을 돕고 나니 출출했다. 선생님은 숙직실에서 컵라면을 먹자고 하셨다. 숙직실엔 냉온정수기가 없어 버너에 물을 가득 넣은 큰 주전자를 올려두었다. 선생님은 물이 끓는지 잘 보라고 하셨다. 나는 버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물이 끓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지나가다 그 주전자를 쳤고 막 끓는점에 도달하기 직전인 주전자 속의 뜨거운 물이 왈칵 내 양발로 쏟아졌다.


나는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갔다. 발 표면의 살갗을 벗겨내고 거의 15일 동안 끙끙 앓았다(15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당시 통지표에 내가 15일 동안 결석했다고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더 오래 앓았을 수도 있겠다). 매일 밤 미간을 찌푸렸다. 표피가 벗겨진 발은 불에 덴 것처럼 뜨겁고 아렸다.


가만히 누워 있었는데도 그 정도였으니 걷는 건 아예 상상할 수가 없었다. 또래보다 한 뼘은 컸던 나를 엄마는 업고 다녔다. 엄마는 운전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병원에 갈 때도, 학교에 갈 때도 늘 나를 업은 채였다. 어쩌면 그때 다 큰 나를 하도 업고 다녀서 후에 엄마가 척추협착증과 디스크를 앓았던 건지도 모른다. 이 광경을 떠올리면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그래서다. 나는 엄마에게 참 많은 걸 받고 살았다. 엄마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모유를 받아먹고 엄마의 허리 위에 업혀 당신의 척추를 짓누르며 그렇게 나는 살을 찌운 것이다.


어쨌든 초등학교 4학년의 그날 얻은 화상 후유증 때문인지 나는 같은 신발을 이틀 이상 신지 못한다. 아무리 편한 신발이라도 이틀 신으면 이내 발이 아프다. 다른 사람들보다 얇은 피부 표면 때문인지 살갗은 늘 벗겨지기 일쑤다. 그래서 늘 신발에 정착하지 못하고 새 신발을 사 신곤 하는데, 오죽했으면 고등학생 시절 사귄 남자 친구는 우리 집이 신발가게를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신발 유목민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올여름은 특히 가혹한데 어떤 샌들을 신어도 발이 아픈 것이다. 그것도 다 제각각의 이유로. 모코블링의 슬링백은 발 옆이 아파 못 신는다. 딱 두 번 신었는데 발 옆에 흉이 졌고 없어지지 않고 있다. 나이키 샌들은 발뒤꿈치가 아파 힘들다. 위드윤의 브라운 샌들은 스트랩이 발등을 압박해 오래 못 신겠고, 카렌 화이트의 수제화 샌들은 엄지발가락 옆을 아프게 한다. 미쏘의 옐로 슬링백은 발가락이 아팠다. 카렌 화이트의 앙증맞은 레드 플랫 슈즈는 가죽이 발목에서 발로 내려가는 부분의 살갗을 까이게 한다. 버켄스탁은 밑창이 딱딱해 하루 이상 신으면 밤에 종아리 전체가 저리기 일쑤다.


엄마의 따스한 등이 생각난다. 그 편안하고 폭신한 등에 업혔을 때 나는 맨발이었지만 그 어떤 때보다 편안했다. 엄마에게 짐이 됐다는 죄책감만 빼면.


편안한 신발을 찾는 나의 여정은 오늘도 계속된다. 그리고, 오늘도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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