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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Sep 23. 2019

성공한 웹툰, 그렇게 드라마가 된다

- 「타인은 지옥이다」

두 명의 흉악범이 합작 범죄를 저질렀을 때에는 전혀 다른 행동 양태가 나타났다. 우리는 그 행동 양태에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듀엣 중 한 흉악범은 좀더 주도적이고 다른 하나는 순종적인 형태를 보인다. 또 한 명은 조직적 사고를 가진 반면 다른 한 명은 비조직적이다. 연쇄 살인범은 본질적으로 사회 적응이 되지 않는 타입이다. 이런 범인 둘이 힘을 합쳤을 때에는 더욱 가공할 만한 범죄 행각이 벌어진다. 
- 『마인드 헌터』 p. 251




성공한 웹툰의 기준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주요한 기준은 해당 웹툰이 영화화 또는 드라마화가 되었냐는 것이다. 성공한 웹툰이 반드시 좋은 웹툰이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여기에서 말하는 ‘성공한 웹툰’이 대중의 사랑을 받은 웹툰, 그러니까 대중성 면에 있어서는 확실히 보장된 웹툰을 뜻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사실 웹툰시장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웹툰산업은 광고산업, 방송산업, 영화산업, 출판산업, 음악산업 더 나아가 그 끝판왕인 자본시장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공한 웹툰은 파도에 휩쓸리듯 자연히 더 큰 자본시장으로 나아가게 된다.


올 하반기에도 방송산업으로 진출한 웹툰이 여럿 있다. 먼저 9월 20일부터 tvN에서 방영되는 <쌉니다 천리마마트>가 기대된다. 이 드라마는 누적 조회수 11억 뷰를 자랑하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김규삼 작가가 네이버에서 2010년 8월 13일부터 약 3년여간 연재한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좌천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천리마마트를 망하게 하려는 주인공 정복동이 하는 행동이 경영혁신으로 이어진다는 큰 줄기의 내용을 담고 있다. 드라마는 <막돼먹은 영애씨>의 백승룡 감독이 연출을 맡아 화제가 되고 있는 중이다.  


9월 30일부터 KBS2에서 방영될 <조선로코 녹두전>도 기대된다. 2014년부터 시작해 약 3년여간 연재되며 네이버 웹툰 최고 평정을 받은 웹툰 <녹두전>을 원작으로 한다. 과부촌에 숨어든 여장 남자 전녹두와 기생이 되기 싫은 선머슴 같은 여인 동동주의 이야기를 그렸다. 여자보다 예쁜 배우 장동윤의 스틸컷이 화제가 됐다. 게다가 <쌈, 마이웨이>로 여심을 저격한 김동휘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는 소식에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연일 홍보하는 <좋아하면 울리는>도 빼놓을 수 없다. 8월 22일부터 방영된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어져 190개국에 소개됐다. 천계영 작가의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안에 들어오면 알람이 울리는 ‘좋알람’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된 세계에 사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웹툰 연재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리뷰할 <타인은 지옥이다>가 있다. OCN에서 8월 31일부터 방영된 이 드라마는 김용키 작가의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서울의 낡고 허름한 고시원에서 타인이 만들어 낸 지옥을 경험하는 이 미스터리물은 네이버웹툰에서 2018년 3월 10일부터 2019년 1월 9일까지 연재됐다. 현재는 드라마 방영으로 2019년 8월 19일부터 웹툰 전체가 다시 업로드됐으며 일부 유료로 연재 중이다. 8억 뷰의 조회수를 자랑하는 원작은 그 잔혹함에 소리를 내지르면서도 기어이 모니터 앞에 다가가 웹툰을 보게 할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다. 결말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는 편인데 이를 드라마가 어찌 각색할지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타인은 지옥이다」, 네이버 웹툰, 2018년 3월 10일∼2019년 1월 9일, 완결


이 글을 쓰는 현재 3회까지 방영된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를 보면서 흥미로운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원작 웹툰과의 놀라울 정도의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배우들과 미장센이다. 이름은 ‘에덴’(Eden, 「구약 성경」에 나오는 지상 낙원)이지만 실상 지옥 같은 고시원의 분위기는 기묘하고 기괴하다. 사슴 눈망울을 자랑하는 고시원 주인 엄복순은 영화 <기생충>의 히로인인 배우 이정은이, 점차 망가지고 파괴되어가는 주인공 윤종우 역은 흡사한 외모의 임시완이 맡았다.


두 번째는 원작과 비슷한 듯 다른 캐릭터 서문조(이동욱 분)다. 이 캐릭터는 원작의 203호 왕눈이 캐릭터의 변형이다. 드라마에서는 왕눈이 캐릭터 외에 추가로 등장한 인물이나 3회까지 드라마를 봤을 때는 기존 왕눈이 캐릭터의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았을 뿐, 원작의 203호와 뚜렷한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다만 치과의사 서문조 캐릭터를 부각하는 방식으로 기존에 등장했던 인물을 죽이는 것을 택한 것이 원작과는 다른 점이었다. 그러나 향후 드라마의 성공 여하는 이 서문조 캐릭터에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줄거리 및 캐릭터 각색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드라마 종영 후 좀더 깊이 있게 풀어갈 기회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점은 영화 같은 드라마 연출이었다. 이미 <나쁜 녀석들> 시리즈의 흥행과 영화화로 이 방면에 탁월함을 보여준 OCN은 영화 <사라진 밤>의 이창희 감독에게 메가폰을 잡게 하고 <인랑> <신과 함께>에서 기이한 공간을 연출한 바 있는 박재현 감독에게 미술을 맡겼다. <타인은 지옥이다>, 이 장르물은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 사이에서 제작됐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주요 크레디트에서 <옥자> <인랑>의 김우상 프로듀서, <안시성>의 남동근 촬영감독 등 영화 스태프들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드라마화된 웹툰이라 드라마와의 비교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가 드라마화된 건 원작이 가지고 있는 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원작 <타인은 지옥이다>는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웹툰이다. 아직도 웹툰은 스낵컬처라며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 있을까. 웹툰은 스낵컬처이지만 짧고 강력한 콘텐츠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장르웹툰 안에는 우리 사회의 온갖 문제들이 기묘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빈부격차의 문제(애초에 주인공 윤종우가 가진 돈이 많았다면 에덴 고시원으로 입주할 이유도 없었다), 현대인의 의사소통 단절의 문제(주인공 윤종우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와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통을 했다고 여겨지는 인물은 없다), 자신이 정상이라고 믿고 있는 연쇄살인범들과 군대에서 일어나는 폭력 문제, 이러한 일련의 상황 속에서 흡사 분노조절장애가 아닐까 의심되는 주인공과 결국 평범한 사람들을 불안과 망상 속으로 밀어 넣어 피폐하게 만드는 현실까지, 김용키 작가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완벽한 제목의 웹툰을 통해 꼬집고 있다.  


웹툰을 보는 재미는 무엇보다 댓글 읽기와 쓰기를 통한 인터랙션에 있다. 2018년 4월 25일 <타인은 지옥이다>에 ‘카카파’라는 닉네임으로 댓글을 단 jang****님의 문장들은 인터랙티브 콘텐츠로서 웹툰이 보여주는 가장 빛나는 지점과 <타인은 지옥이다>의 성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거 제가 보기에는 주인공만 분노조절장애고 나머지는 다 정상인게 아니라, 나머지도 다 각자 비정상들인데 주인공조차 분노조절장애인 것 같아요. 결국 우리에게는 타인인 주인공조차 비정상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비정상은 자신이 정상이라고 믿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타인은 지옥일 수 있음을,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에겐 지옥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작품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지금, 나는, 우리는 누군가에게 지옥이지 않은가’ 자문하며 7회를 남겨둔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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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미향 <기획회의> 편집팀장·에세이스트 algid10@naver.com

콘텐츠와 미디어, 트렌드에 관심이 많다. 퇴근하면 웹툰을 본다.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넥서스BOOKS)를 썼다. 한양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석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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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전문지 <기획회의> 496호 '리뷰'에 게재한 글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8322907


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비하인드 스토리 

자기서사로 어떻게 글을 쓸지 궁금하신 분들 9월 25일 늦은 8시 30분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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