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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Nov 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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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냄새가나요ㅠㅠ” 「어쩌다 발견한 7월」 시즌 1의 1화가 업로드되었을 때의 베스트 댓글이다(이선해 2018-01-25 00:04:24, 추천 907). 여고생 단오가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고 사랑을 이뤄내는 본격 학원 로맨스, 라는 소개글은 평범해 보이지만 「어쩌다 발견한 7월」은 그저 그렇게 뻔한 학원 로맨스가 아니다. 만화 세계에서 작가가 그린 대로 정해진 운명을 사는 소녀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스토리인데, 순정만화와 로맨스판타지의 온갖 클리셰가 전복되는 걸 보는 게 묘하게 통쾌하다.  


「어쩌다 발견한 7월」, 다음 웹툰, 2018년 1월 18일∼2019년 9월 19일, 완결


「어쩌다 발견한 7월」의 여주인공 은단오가 사는 세계는 주인공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했지만 만화 『비밀』의 세계다. 당연히 자신이 주인공일 거라 생각했던 이 만화 속 세계엔 진짜 주인공들이 따로 있었고 심장병에 걸린 부잣집 외동딸 은단오는 ‘그 외 인물’에 불과했다. 『비밀』의 세계의 주인공은 『꽃보다 남자』(서울미디어코믹스)의 F4를 연상시키는 A4, 그중에서도 그룹의 리더 ‘오남주’다(그렇다. 이름부터 남자 주인공임이 확실하다).  


「어쩌다 발견한 7월」의 여주인공 은단오가 사는 세계는 주인공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했지만 만화 『비밀』의 세계다.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인 것도 화나는 일인데 『비밀』의 작가는 이 세계에서 일찌감치 단오의 인생을 ‘시한부’로 만들어놓아 버렸다. 전 5권인 『비밀』의 종이책은 이미 이 세계에서 완결된 상태로 존재하는데, 단오를 포함한 주인공들이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웹툰 「비밀」의 세계가 때때로 에필로그로 그려진다. 단오가 창조주인 작가가 정해놓은 본인의 설정값(실제로는 좋아하지도 않는 백경의 약혼녀, 시한부, 심장병)을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웹툰 「비밀」의 세계는 종이책 『비밀』의 세계와 달라진다.


전 5권인 『비밀』의 종이책은 이미 이 세계에서 완결된 상태로 존재하는데, 단오를 포함한 주인공들이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웹툰 「비밀」의 세계가 때때로 에필로그로 그려진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어쩌다 발견한 7월」 속 『비밀』의 세계에는 작가가 그려놓은 대로만 움직여야 하는 ‘헤드’의 세계가 있고 등장인물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테일’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아가 없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테일의 세계에서 본인들이 한 행동과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 단, 자아가 있는 등장인물들은 모든 걸 기억하고 헤드와 테일을 구분할 수도 있다. 단오 역시 자아가 생겼기 때문에 주어진 설정값대로의 인생을 거부하고 본인만의 인생을 만들어가려 한다. “창조주가 자비가 없네. 내 인생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무리 자기가 만든 캐릭터라지만 너무 굴리는 거 아닌가? 웃기지 마. 내 인생은 내 거야.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상처뿐인 이런 설정값 매겨진 사랑따위- X까라 그래! 내 인생 창조주 당신에게서 되찾고 말겠어.”


『비밀』의 세계에는 작가가 그려놓은 대로만 움직여야 하는 ‘헤드’의 세계가 있고 등장인물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테일’의 세계가 있다.


단오가 설정값에서 벗어나 테일의 세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비밀』에서 그녀가 엑스트라이기 때문이다. 책에 자주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헤드의 세계에 자주 불려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책의 ‘그 외 인물’로서 어느 정도의 비중은 있기 때문에 단오는 자신보다 더 자유롭게 설정값을 바꿀 수 있는 엑스트라, 13번을 찾는다. 너무나도 비중이 없어 이름도 없이 ‘13번’으로 불리는 아이에게 단오는 ‘하루’라는 이름을 불러주고 사랑에 빠진다.


너무나도 비중이 없어 이름도 없이 ‘13번’으로 불리는 아이에게 단오는 ‘하루’라는 이름을 불러주고 사랑에 빠진다.


이름조차 없이 번호로 불리며 존재했기에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던 하루에게 단오는 처음으로 그를 알아주고 그에게 이름을 붙여준 단 한 사람이다. 보잘것없는 엑스트라가 자신보다 더 보잘것없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를 알아주는 이야기.  그리하여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누구의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주인공은 얼마든지 달라지니까 널 중심으로 세상을 보라고, 그럼 네가 주인공이라고 속삭여주는 이야기. 특히 쾌감을 주는 것은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 은단오의 캐릭터다. 지지부진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단오의 모습은 그간 남자 주인공에 휘둘리며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여자 주인공 캐릭터와는 딴판이기 때문이다.  


이름조차 없이 번호로 불리며 존재했기에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던 하루.


더욱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  『비밀』 작가의 전작 『능소화』가 또 한 겹의 이야기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결국 「어쩌다 발견한 7월」의 구조는 전체 배경이 되는 만화 『비밀』의 세계(헤드)가 존재하며, 『비밀』 밖의 테일이 되는 세계가 있고, 그 속에서 『비밀』과 연관되는 『능소화』가 때때로 반추되며,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어쩌다 발견한 7월」의 세계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어쩌다 발견한 7월」이라는 웹툰 안에 『비밀』, 『비밀』 밖 세계(테일), 『능소화』의 세계가 모두 존재하며 이야기의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가기 때문에 이 작품을 보는 재미는 증폭될 수밖에 없다.   


『비밀』의 세계는 『꽃보다 남자』 또는 드라마 <상속자들>과 비슷한 느낌이고 『능소화』의 세계는 사극 로맨스판타지이며 「어쩌다 발견한 7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드라마 <W>와 비슷하다. 저마다 인기 있었던 소재와 구조를 끌어와 보통의 웹툰에서는 여자 주인공 친구 1 정도의 등장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클리셰를 전복시킨다.


지난 10월 2일, 「어쩌다 발견한 7월」은 <어쩌다 발견한 하루>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되었다. 이 드라마의 영어 제목은 ‘Extraordinary You’다. 드라마 속 은단오는 하루에게 자신들 같은 ‘extra’에 ‘ordinary’(보통의)를 합치면 ‘extraordinary’(놀랍다, 대단하다)가 된다며 영어를 가르친다. 이를 들은 하루는 그 단어가 마치 자신들 같다고 말한다. 엑스트라 두 명이 살고 있는 일상의 시간들이 지금 이렇게 놀랍고 대단하기 때문이라고.


지난 10월 2일, 「어쩌다 발견한 7월」은 <어쩌다 발견한 하루>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되었다.


웹툰 속 단오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시한부 엑스트라.. 내가 그토록 거부하고 싶었던 나의 설정값.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시한부가 아닐까? 그렇기에 잊으면 안 된다. 순간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걸. 사소한 하루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그 계절이 바로 내가 된다는 걸. 그리고 그 사소함들이 차마 내가 어쩌지 못하는 슬픔들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이라는걸. 오늘도 잘 있니, 하루야?”



비록 지금 우리가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인 것처럼 보여도 사실 당신 인생의 주인공은 당신 자신이다. 당신은 그 자체로 놀랍고 대단하니까(extraordinary). 그리고 잊지 않았으면 한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우리의 하루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걸. 힘센 창조주가 더 거센 운명의 판을 짜 놓고 우리를 방해한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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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미향 <기획회의> 편집팀장·에세이스트 algid10@naver.com

콘텐츠와 미디어, 트렌드에 관심이 많다. 퇴근하면 웹툰을 본다.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넥서스BOOKS)를 썼다. 한양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석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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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전문지 <기획회의> 500호 '리뷰'에 게재한 글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765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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