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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편집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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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Nov 30. 2019

공식도 없고 정답도 없는 출판계에서 살아남는 방법

(전략)


더 큰 수확은 이렇게 매번 어려워하고 고민하는 이유가 내 자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원래 기획이, 편집이 그런 일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오늘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기획자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미천한 경험을 털어놓는다. 모쪼록 현업에 적용할 만한 팁과 작은 위로로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가깝고도 먼 단어, 트렌드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콘셉트의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 트렌드가 된다. 2019년 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도 몇 권의 책과 묶여 철학 열풍의 주역으로 손꼽혔는데, 우리는 이 책이 이렇게까지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기사를 보면서 ‘이런 책들과 묶일 수 있구나’ 하고 얼떨떨해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었다. 2015년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를 출간했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이 책은 여행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7월 말에 출간해 시기를 놓쳤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는데 며칠 차이로 분야도 다르고 타깃 독자도 다르지만 키워드가 겹치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위즈덤하우스)이 출간되면서 함께 묶여 ‘혼자’ 트렌드를 만드는 책으로 주목받았다.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카트린 지타 지음, 박성원 옮김, 걷는나무, 2015


(중략) 


나는 잘 모르는 것을 다루기를 어려워해서, 여전히 내가 잘 아는 것 또는 내 문제로부터 아이템을 찾는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실용 인문학’에 대한 갈증에서 출발했고,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내가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해서 계약한 책이었다. 외서 뉴스레터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도 1인 가구, 혼족을 겨냥한 대박 아이템을 찾았다는 생각보다는 “같이 여행 갈 친구가 없어?”라는 질문에 구구절절 변명

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접근했다(물론 아이템의 시장성을 알아봐 주고, 3년 차가 짜 놓은 엉성한 구성을 쫀쫀하게 만들어준 것은 전적으로 선배들의 능력이었다).


『90일 완성 돈 버는 평생 습관』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의 카피에서 말하는 ‘경제를 모르고 숫자에 약한’ 이가 바로 나였다. 평생 아끼며 살 자신은 없어서 단기간에, 아주 쉬운 방법으로 이 엉망진창의 소비 습관을 바로 잡고 싶었다. 이 책의 타깃독자 설명은 내 자기소개서나 다름없다.


『90일 완성 돈 버는 평생 습관』요코야마 미츠아키 지음, 정세영 옮김, 걷는나무, 2017


나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 중 한 명이니 대중의 일부가 아닐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서 그렇지 나와 비슷한 욕망을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기획단계에서 나는 이런 배짱을 자주 부린다.


(중략)


지금도 기획안을 쓸 때 계속 점검하는 조언들인데 그중 두 가지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있어 보이려고 어려운 말을 쓰지 말고 누구나 쉽고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쓸 것.

둘째, 편집자인 내가 답을 제시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독자들이 품는 질문에 어떤 답을 주고자 하는지를 목차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줄 것.


(중략)


선배들에게 들었던 말 중에 종종 생각나는 말이 있다. ‘10명의 편집자가 있으면 10권의 책이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같은 아이템이라도 누가 만드냐에 따라 다른 책이 된다는 뜻인데, 좋은 아이템도 적임자를 만나지 못하면 빛을 볼 수 없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가끔씩은 맨파워를 중요하게 여기는 업계 분위기에 숨이 막히고, 힘은 별로 없는데 책임은 큰 편집자라는 직업이 못나 보일 때가 있다. 그래도 내가 기획한 책이 내가 생각한 그림으로 내 손안에 들어왔을 때의 기쁨과 감동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욕하면서도 편집자를 계속하고 있는 이

유이기도 하고, 뭔가 반짝이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기획으로 연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차가 쌓이고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나면 어떤 확신이나 베스트셀러 공식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제는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나만의 문법을 만들어 가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됐다. 그러려면 가끔 배짱도 부리고, 남들이 등 떠밀어도 조급해하지 않고, 나와 타인을 설득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벌써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것만이 공식도 없고 정답도 없는 출판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아닐까?


- 임경진 다산북스 콘텐츠개발4팀 대리, 「확신과 불신 사이의 줄다리기,  <기획회의> 501호 '2019년 기획자 노트 릴레이 Ⅱ 24', 2019년 12월 5일 발행 예정




편집후기


재미있다, 재미있다! 임경진 다산북스 콘텐츠개발4팀 대리의 기획자 노트 「확신과 불신 사이의 줄다리기」를 편집하며 든 생각이다. 어쩜 이리 나의 속마음을 좋은 문장으로 잘 풀어 주셨을까. 지긋지긋한 이 일이 지긋지긋하게도 계속 좋은 이유와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까지, 이 한 편의 글에 잘 녹아 있다. 만나고 싶다! 그리고,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 5만 부 이상”이라는 칭찬을 듣는 임경진 대리에게 이렇게  일을 잘 가르쳐준 "능력도 출중한데 인품까지 좋은 편집장"도 궁금하다. 다음 기획자 노트 릴레이는 그 편집장님께 청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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