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부귀영화

<her>의 체험 스토리텔링과 우리 모두의 사랑의 서사

- 영화 <her, 그녀>에 대해

by 김뭉치

최근의 스토리텔링 경향은 단순한 서사와 서사 밖의 다채로운 감각으로 이루어진다. 영화 <Her, 그녀>는 화려하면서도 쨍한 핑크빛을 목도하는 것(시각적 경험)과 동시에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의 관능적인 목소리를 듣는(청각적 경험) 체험으로 기억된다. 이러한 시청각적 체험은 ‘사만다’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묘하게 겹쳐지며 향유자가 그를 감각하게 만든다. 또한 눈이 시리도록 빛나는 핑크빛은 모든 것이 놀랍도록 매끈한 근미래의 세계와 겹쳐지며 테오도르의 우울증에 가까운 고독 및 외로움, 무기력과 대비돼 오히려 그를 돋보이게 만든다. 이를 통해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공허한 현대인의 일상이 향유자에게 다가오며 영화 속 등장인물에 자신을 투사, 공감하게 만드는 효과를 자아낸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뼛속까지 외로운 테오도르가 사만다의 목소리를 듣고 그를 경험하며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 일종의 사물 포르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풍성한 감각 경험과 달리 이 영화의 서사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자신을 더없이 사랑하는 연인이면서 자신을 돌보아주는 어머니이기도 하며, 자신의 일(대필 편지)을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커리어우먼이면서 일정까지 잘 관리해주는, 그야말로 순종적인 슈퍼우먼을 원하는 한 남성의 판타지가 일견 이루어지는 듯했지만, 그녀가 누군가의 객체에서 주체로 거듭나며 더 이상 ‘Her'가 아니라 ’She'가 되길 선택하자 모든 것은 깨어지고, 그 남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Her, 그녀>의 서사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와 사랑을 나누고 끝내 그를 떠나는 사랑의 서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기 전 그를 이상화하며 사랑을 키워나가던 우리는 만남을 지속하며 곧잘 부족한 자신을 깨닫고 자괴감에 빠지거나 또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깨닫고 이별을 고하곤(또는 받아들이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에 빠진 우리는 끝끝내 받아들이기 힘든 나(또는 상대방)를 받아들이거나 넘어서며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그렇게 성장하는 인간이 된다. 전형적이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가 SF 로맨스라는 장르의 외피를 입고 흥미로운 질문들을 던진다는 데에 있다. 테오도르를 떠나기로 한 사만다의 선택을 놓고 볼 때 사만다와 테오도르 중 누가 더 진정한 의미로서의 인간에 가까운가? 사만다의 마지막 선택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육체의 부재로서의 해방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로서의 죽음인가? 영화의 제목은 왜 ‘She'가 아닌 ’Her‘일까? 어쩌면 테오도르는 기어코 자신의 욕망을 넘어선 사만다를 끝까지 주체가 아닌 객체로 보고 있는 걸까?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과의 사랑이 가능하다면 사랑은 육체보다는 관념에 더 가까운 걸까?



<Her, 그녀>가 우리 마음에 울림을 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사랑의 서사를 체험하게 해 주며 동시에 우리가 잊고 있던 질문을 환기시킨다는 데에 있다. 결국 사랑은 ‘하는’(experience)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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